바이든 구애에도 러시아 무기 산다고?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

바이든 G20 일정 끝내고 베트남行… 中 견제 행보
베트남은 美제재 피해 러시아 무기대금 송금 계획
대중 제재 어부지리 불구 "러시아, 전략적 동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 이어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을 출발해 베트남으로 향하면서 에어포스원에 탑승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일정을 마치고 베트남 하노이에 손을 내밀러 간 가운데 베트남이 미국의 제재를 피해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구매하려는 계획이 알려졌다. 미국은 베트남이 중국을 견제하는 지정학적 고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러시아제 무기 의존도를 낮출 수 있게 지원하겠단 방침이다.

10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바이든 대통령은 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G20 일정을 마무리하고 곧바로 베트남 국민 방문에 나섰다. 응우옌 푸 쫑 공산당 서기장을 비롯해 베트남 지도자들과 만나 양국간 교류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전략적 파트너십 합의에 서명할 예정이다. 베트남은 중국과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는 나라이자 미국의 대중 규제로 경제적 수혜를 보는 당사자 중 하나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의 이번 베트남 방문을 두고 "사실상 중국의 뒷마당을 찾아 중국 견제 행보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며 "이번 순방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입지를 강화하고 새로운 경제 질서를 모색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계획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날 뉴욕타임스(NYT)는 베트남 정부 내부 문서를 토대로 베트남이 미국의 제재를 위반해 러시아로부터 무기고를 사들이는 계획을 비밀리에 세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지난 3월로 작성 시기가 명시된 베트남 재무부 문서를 토대로 베트남 정부가 미국의 정밀 조사를 피해 시베리아 소재 베트남-러시아 석유 합작회사인 러스비에트페트로에 무기 구매 대금을 송금하는 내용이 담겨있다고 전했다.

문서에는 베트남이 "러시아가 서방 국가들로부터 모든 면에서 금수조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와 "전략적 신뢰를 강화하는" 새로운 무기 거래를 협상 중이라고 언급돼 있고, 베트남 재무 차관의 서명이 담겨있다고 NYT는 보도했다. 문서는 또 "우리 당과 국가는 여전히 러시아를 국방과 안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동반자로 인식하고 있다"고 밝혔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안보리 부의장(사진 왼쪽)이 지난 5월 22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 반 트엉 베트남 국가주석과 회담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로이터통신

베트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 국제연합(UN)의 규탄 성명을 거부하는 등 오랜 우방국인 러시아에 대해 엄호를 제공해왔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8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안보회의에서 베트남을 러시아의 최신 무기를 이상적으로 구매하는 국가로 언급하기도 했다.

베트남은 러시아제 무기에 오랫동안 의존해왔으나, 미국이 러시아제 무기 구매를 제재한 이후 군사력 재정비에 차질을 빚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쟁 중인 러시아가 베트남의 무기 주문을 빠르게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 베트남은 이스라엘과 체코 등에도 무기 공급선을 두드리고 있다. 베트남군은 남중국해에서 중국이 베트남 해상 국경을 침범하지 못하게 억제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베트남이 러시아로부터 무기를 구매하더라도 미국이 베트남을 제재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의 파트너로서 베트남의 지정학적 가치가 높기 때문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조나단 파이너 미 백악관 국가안보 부보좌관은 베트남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미국은 베트남과의 관계를 최고 수준으로 격상시킬 것"이라며 "격상된 파트너십에는 안보 요소가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는 베트남과 발표할 무기 거래는 없다면서도베트남이 러시아의 군사 물자에서 벗어나 (무기 수급을) 다각화하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베트남 관측통들은 바이든에 이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올해 베트남을 방문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베트남으로서는 미·중 동맹 어디에도 가담하지 않고 주권국 외교를 최대한 활용하는 '대나무 외교'를 십분활용할 기회인 셈이다.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