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생활지도 고시가 교사를 지킬 수 있을까 [김유나의 풀어쓰는 교육 키워드]
지난해 초등학교 고학년 남학생이 학교에서 목공용 양날톱을 휘두른 사건을 취재한 적 있습니다. 당시 가해 학생은 자신을 말리는 교사를 보며 “내가 이렇게 해도 선생님은 할 수 있는 게 없잖아”라고 비웃었다고 합니다. 현장에 있던 교사 2명 중 1명은 젊은 남성이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힘으로 아이를 제압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학생의 말대로 그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고 털어놨습니다. 섣불리 손을 댔다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흥분한 학생을 말로 달래 진정시키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는 그는 “무력감에 처참했다”고 토로했습니다.
과거 ‘스승의 그림자도 밟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었지만 최근 학교에선 ‘학생의 옷깃도 스쳐선 안 된다’는 말이 통용됩니다. 이유를 막론하고 학생 몸에 손을 댔다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할 수 있어서입니다. 실체 없는 괴담은 아닙니다. 실제 교권 취재과정에서 “수업시간에 돌아다니는 아이의 팔을 잡았다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했다”는 식의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습니다. 20여년 전만 해도 정도를 넘어선 교사의 체벌이 문제였는데, 이제는 교사들이 정도를 넘어선 학생·학부모의 횡포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고시안이 공개되자 일각에선 의아하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학교에서 교사가 수업 방해 학생에게 주의를 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법 개정은 이 당연한 문구들이 더이상 현장에선 당연하지 않다는 방증이겠죠. 교원단체는 “이전 법은 ‘교사는 학생을 교육한다’고만 해 생활지도가 교사의 권한인지 명확하지 않았고, 학생을 훈계했다가 아동학대로 신고당하는 교사들의 고통이 컸다”며 “과거에는 이런 규정이 없어도 문제가 없었지만 이제는 법으로 보호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고시는 이달부터 시행됐습니다. 하지만 학교에선 아직 변화를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입니다. 시행 초기라 그런 것도 있지만, 가장 큰 문제는 고시의 상당 부분은 법 개정이 전제되지 않으면 적용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고시대로 수업 방해 학생을 교실 밖으로 내보냈을 경우, 학생이 정서학대로 신고한다면 현재는 아무리 ‘고시에서 보장된 권한’이어도 교사는 조사를 피할 수 없습니다. 학생이 ‘교실 밖으로 내보낼 정도로 수업 방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교사는 ‘어느 정도가’ 수업 방해인지를 두고 지난한 법적 다툼을 벌여야 할 것입니다. 고시만 믿고 학생을 제지했다가 더 괴로워질 수 있는 상황인 셈입니다.
결국 고시가 효력을 발휘하려면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에 아동학대 면책권을 주는 등 법적 근거가 보완돼야 합니다. 지난 두 달간 교사들이 매주 대규모 집회를 열고 주장했던 내용이기도 합니다. 교사들은 “법 개정 없는 고시안은 팥소 없는 붕어빵”이라며 “법이 개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서울 서초구 사망 교사의 49재인 지난 4일 교사 수만 명은 교권 관련 법 개정과 보다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왔습니다. 그간 교사들의 분노가 커진 데에는 교육부뿐만 아니라 법 개정에 소홀했던 정치권도 책임이 있습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5일 교사들을 만나 관련 입법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의 약속대로 정부와 국회가 합심해 관련 법 개정이 이른 시일 안에 해결되고, 학생생활지도 고시가 현장에서 교사를 지켜주는 우산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교사들의 분노는 또다시 들끓을 수 있습니다.
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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