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6.8 규모 강진… 사망자 2000명 넘어
북아프리카 모로코 남서부를 강타한 지진으로 숨진 희생자가 2000명을 넘어섰다. 맨손으로까지 잔해를 뒤지는 처절한 구조·수색 작업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인 관련 인명 피해는 아직 보고되지 않고 있다. 제10회 세계지질공원 총회 참석차 현지에 머물고 있는 대표단은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AP·로이터·AFP 통신 등에 따르면 모로코 내무부는 10일(현지시간) 현재까지 이번 강진으로 숨진 이들의 수가 2012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부상자도 2059명까지 늘었으며, 이가운데 중상자들은 1404명으로 집계됐다.
역사 도시 마라케시부터 수도 라바트까지 곳곳에서 건물이 흔들리거나 파괴됐으며, 구조대의 접근이 어려운 산간 지역에서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진앙에서 가까운 알 하우자와 타루단트 지역의 피해가 특히 큰 것으로 전해진다. 우아르자자테, 치차우아, 아질랄, 유수피아 주와 마라케시, 아가디르, 카사블랑카 지역에서도 사상자가 나왔다.
지질 총회에 참석한 고정군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한라산연구부장은 "항공편을 통해 모로코를 빠져나가려는 관광객 등 방문객이 많아 혼란스럽다"며 "항공권을 새로 구하기 어려워 조기 귀국은 불가능한 상황이나 다행히 제주 대표팀은 늦어도 12일 새벽에는 모로코를 떠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제주와 청송, 진안군청 등 지질 총회에 참가한 한국인 77명은 모두 안전한 상태이며, 총회가 마무리되면서 순차적으로 출국 중"이라고 전했다.
이번 지진은 지난 8일 오후 11시 11분께 모로코 마라케시 서남쪽 약 71㎞지점에서 발생했다. 규모가 6.8로 강력한 데다가 진원의 깊이도 10㎞ 정도로 얕아 지표에서 받는 충격이 컸다.
많은 사람이 잠든 심야에 지진이 일어난 점도 인명피해를 키우는 요인이 됐다. 내진설계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낡은 벽돌 건물이 대거 무너지면서 인명 피해가 속출했다. 진앙 인근에 사는 몬타시르 이트리는 "인근의 집이 모두 부서졌다. 우리 이웃들이 무너진 건물 잔해에 묻혀 있다"고 말했다.
재난당국 요원과 주민들로 구성된 구조대는 진앙 근처 지역에서 팬케익처럼 무너져 내린 주택 잔해를 맨손으로 뒤지며 생존자를 수색하고 있다. 모로코 당국은 군까지 동원해 실종자 구조·수색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피해가 집중된 아틀라스산맥 지역 고지대에서는 도로가 끊기거나 산사태로 막혀 구급차 통행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현지 매체들이 전했다. 진앙 근처 마을인 아미즈미즈에서는 붕괴한 건물 탓에 교통이 지체되는 가운데 일부 병원 앞에 시신 10여구가 목격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강진에 놀란 데다가 여진 공포에 질려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노숙했다. 전통시장과 식당, 카페 등이 모여있는 마라케시 명소 제마 엘프나 광장은 현지 주민들의 피난처가 됐다.
모로코군은 소셜미디어 X(옛 트위터)를 통해 "여진 위험이 있으니 주의하고 안전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민들에게 권고했다.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의 지진 전문가인 펠리페 베르낭은 여진은 반드시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여진이 덜 강력하더라도 이미 강진으로 취약해진 건물이 무너질 수 있다"며 최근 튀르키예처럼 연쇄 강진이 닥치는 이례적 재난 사례도 있는 만큼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주민뿐만 아니라 모로코를 대표하는 문화유산도 강진 피해를 본 것으로 전해졌다.
중세 고도(古都) 마라케시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옛 시가지 메디나의 문화유산의 손상이 목격됐다. 특히 가장 유명한 랜드마크 중 하나로 '마라케시의 지붕'으로 불리는 쿠투비아 모스크의 첨탑(미나렛)도 일부 손상된 것으로 전해졌다.
고대 도시의 건물과 벽은 지진을 견디도록 설계되지 않은 까닭에 모로코에서는 전례가 드문 강력한 진동에 속수무책 손상됐다.
AP통신은 규모 6.8의 지진은 120년 만에 모로코를 강타한 가장 강력한 지진이라는 전문가 의견을 전했다. 미국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이번 지진은 1960년 아가디르 근처에서 발생해 수천 명의 인명을 앗아간 규모 5.8 지진 이후 가장 강력하다. 이번 지진은 동쪽으로 모로코와 국경을 접한 알제리는 물론 지중해와 대서양 건너 스페인, 포르투갈에서도 감지될 정도였다.
국제사회에서는 모로코 강진 피해에 대한 애도와 지원 의사 표명이 이어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물론 전쟁 중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상도 나란히 모로코에 대한 연대 의사를 표명했다. 약 7개월 전 5만 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도 애도 행렬에 동참했다. 모로코와 국교를 단절한 알제리와 이란 정부도 애도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쏟아지는 지원 제의에도 모로코 정부는 외국 구조대의 배치를 위해 필요한 공식 지원 요청을 아직 하지 않고 있다. 모로코 정부는 모하메드 6세 주재로 재난 대책 회의를 연 뒤 사흘간의 국가 애도 기간을 선포했다. 아울러 성명에서 "국왕은 이 비상한 상황에 애도와 연대, 지원 의사를 표명한 모든 형제·우호 국가들에 사의를 전했다"고 덧붙였다.
강현철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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