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120년만 최악의 대지진…“이례적 강진에 무방비로 당해”

손우성 기자 2023. 9. 10. 16: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얕은 진앙·산악 지대 등 피해 키운 원인
국제사회의 애도·지원 메시지 이어져
모로코 마라케시 구시자기에서 9일(현지시간) 한 여성이 지진으로 무너진 자신의 집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모로코 서남부를 뒤흔든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9일 밤(현지시간) 2000명을 넘어섰다. 120년 만에 발생한 이례적인 강진에 내진 설계가 전혀 돼 있지 않은 벽돌 건물이 속절없이 무너지면서 피해가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지난 2월 약 5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만큼의 사상자가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모로코 내무부는 지난 8일 오후 11시 11분쯤 마라케시에서 서남쪽으로 약 71㎞ 떨어진 알하우즈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지금까지 201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확인된 부상자만 2059명에 이르는 가운데 1404명은 중태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이번 지진 규모를 6.8로 발표했지만, 모로코 지질연구소는 7.2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후 10일 오전에도 USGS 기준 규모 3.9의 지진이 마라케시에서 감지되는 등 여진이 이어졌다.

USGS는 이후 보고서를 통해 인명 피해와 경제 타격 추정치 모두 적색경보로 상향 조정했다. 특히 이번 지진으로 인한 사망자가 1000~1만명 수준일 가능성을 35%로 전망하면서도 1만~10만명 21%, 10만명 이상 6%로 집계하는 등 피해 규모가 지난 2월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수준으로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강진이 흔치 않은 모로코에서 이례적인 현상이 벌어졌다고 진단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진앙인 알하우즈 지역을 중심으로 반경 500㎞ 이내에서 규모 6.0 이상의 지진이 일어난 경우는 1900년 이후 단 한 차례도 없다. 1만2000명의 사망자를 낸 1960년 해안 도시 아가디르 지진도 규모 5.8 수준이었다. 반경 500㎞ 바깥에서 발생한 지진으론 2004년 모로코 북부 알호세이마에서 관측된 규모 6.3 강진이 있으며, 당시 약 600명이 숨졌다.

뉴욕타임스(NYT)는 지질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모로코는 아프리카판과 유라시아판의 지각 충돌이 일어나는 지점에 있다”면서도 “충돌 속도가 워낙 느려 연간 4~6㎜만 부딪혀 지진이 자주 발생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NYT는 “수백만 년에 걸친 이러한 움직임은 아틀라스산맥을 융기시켰고, 지진을 일으킬 만큼 충분한 자극을 줬을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지만, 미 코넬대에서 지질학을 연구하는 주디스 허버드는 NYT에 “이러한 단층에서 지진이 발생했다는 정보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모로코 구조대원들이 9일(현지시간) 알하우즈에서 무너진 건물을 살피며 생존자 수색 작업을 펼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결국 지금까지 지진 피해를 자주 겪지 않았던 모로코가 무방비 상태에서 직격탄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BBC는 “지진에 대한 제한적인 기억과 생소함이 미흡한 대비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실제로 이번 지진으로 무너진 대부분 건물은 내진 설계가 돼 있지 않았고, 외부 충격에 취약한 벽돌 건물이었다. USGS는 “이 지역 주민 상당수는 지진에 매우 취약한 구조물에 거주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약 20㎞로 추정되는 얕은 진앙도 피해를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많은 주민이 잠자리에 들기 시작한 밤 11시를 넘겨 지진이 발생했고, 구조대가 진입하기 어려운 산악 지역에 사상자가 집중된 탓도 있었다.

모로코 내무부는 이번 지진으로 알하우즈와 가까운 타루단트 지역 피해가 비교적 컸고, 수도 라바트에서도 흔들림이 감지됐다고 밝혔다. 특히 천년고도로 불리는 마라케시의 쿠투비아 모스크 첨탑(미나렛)도 일부 손상되는 등 일부 문화유산도 피해를 봤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마라케시 구시가지 메디나엔 모스크와 궁전 등 중세 시대의 많은 유산이 보존돼 있다.

모로코 마라케시에 있는 한 모스크 첨탑(미나렛)이 9일(현지시간) 지진 영향으로 금이 가 있다. AP연합뉴스

한편 국제사회는 사망자를 추모하고 지원을 약속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미국은 모로코 국민을 위해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며 “우리의 기도가 끔찍한 고난을 겪은 모든 이들과 함께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중국 관영 CCTV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모하메드 6세 모로코 국왕에게 애도의 메시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지난 2월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부상자의 쾌유를 빈다”며 “모로코의 형제자매를 지지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2021년 서사하라 분쟁으로 모로코와 단교한 알제리도 폐쇄했던 자국 영공을 모로코에 개방하고 인도적 지원과 의료 목적의 비행을 허용하기로 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