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호의 침대축구]"벤투도 처음엔 욕먹었어" 실드가 클린스만에게 안 맞는 이유, 'NO 승리·신뢰'
[편집자주] 아침에 침대에서 하루를 시작할 때나, 밤에 침대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축구계 이슈를 전합니다. 너무 무겁지도 않고, 그렇다고 가볍지도 않은 소식을 침대 위에 살며시 올려놓겠습니다.
[마이데일리 = 이현호 기자] “벤투 감독도 욕 많이 먹었잖아요. 클린스만 감독도 다 지나가겠죠.”
자주는 아니지만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파울루 벤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처럼 위르겐 클린스만 현 축구대표팀 감독도 긴 터널을 지난 후 밝은 햇빛을 볼 것이라며 긍정론을 펼치는 이들이 있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비슷한 점: 내리막길에 한국으로
물론 공통점은 있다. 둘 모두 한국 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내리막길을 걷고 있던 지도자다. 이 때문에 ‘축구계 주류’ 유럽이 아닌 지구 반대편에서 보낸 러브콜을 수락했다.
벤투 감독은 겨우 40대에 자국 포르투갈 대표팀을 맡아서 2014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월드컵에 나섰으나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이후 크루제이루(브라질), 올림피아코스(그리스), 충칭 리판(중국) 감독을 하다가 2018년 8월에 한국에 부임했다.
클린스만 감독도 비슷하다. 40대 초반에 자국 독일 대표팀을 이끌고 2006 독일 월드컵에 나섰으나 대회 직후 물러났다. 독일 최고 명문 바이에른 뮌헨 감독도 맡았지만 1년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됐다. 이후 토론토FC(캐나다), 미국 대표팀, 헤르타 베를린(독일)을 거쳐 올해 초 한국 대표팀을 맡았다.
#다른 점①: 무패 vs 무승
차이점은 명확하다. 가장 먼저 ‘성적’을 빼놓을 수 없다. 벤투 감독은 부임 첫 5경기에서 2승 3무를 거뒀다. 코스타리카(2-0 승), 칠레(0-0 무), 우루과이(2-1 승), 파나마(2-2 무), 호주(1-1 무) 상대로 패하지 않았다. 벤투 감독은 자신의 빌드업 철학을 맛보기로 보여줬다.
클린스만 감독의 5경기 성적은 3무 2패. 승리가 없다. 콜롬비아(2-2 무), 우루과이(1-2 패), 페루(0-1 패), 엘살바도르(1-1 무), 웨일스(0-0 무)와 맞붙어 단 한 번도 못 이겼다. 한국 대표팀 외국인 감독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첫 승이 없는 감독이다. 이 기록은 현재 진행형이다.
참고로 벤투 감독은 한국 부임 12번째 경기였던 2019 아랍에미리트(UAE) 아시안컵 8강 카타르전(0-1 패)에서 처음 졌다. 그다음 패배는 22번째 경기였던 2019년 브라질과의 친선전 0-3 패배다. 이 경기도 UAE에서 열렸다. 홈에서는 4년 가까이 패배가 없었다. (*첫 홈 패배: 2022년 6월 브라질전 1-5 패)
#다른 점②: 선수단 신뢰도 'FULL vs 글쎄'
벤투 감독은 선수들이 전적으로 신뢰했다. 간혹 “빌드업 축구가 통하겠느냐”는 비판 여론이 일면 선수들이 앞장서서 감독을 옹호했다. 주장 손흥민은 매번 “감독님이 추구하는 스타일을 선수들이 모두 이해한다. 누구 하나 공백이 생겨도 다른 선수가 들어와서 같은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황인범, 이재성, 김영권 등 벤투호 주축 선수들도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이 답했다.
당시 대표팀에 종종 선발되던 A 선수는 “벤투 감독 훈련의 장점을 선배들한테 말로만 들었는데 직접 겪어보니 이유를 알겠다. 굉장히 체계적이다. 각 포지션마다 정해진 역할이 있다. 다음에 또 뽑혀서 더 배우고 싶다”고 기대했다.
반면 클린스만호 출범 7개월이 된 시점에서 현 선수단은 어떠할까. 손흥민은 웨일스전을 마치고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건 확실하다. 감독님도 분명한 생각이 있을 것이다. 팬들의 걱정이 공감되지만 조금 더 기다려달라”라고 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색깔이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걸 알 수 있다.
몇몇 K리거 선수들의 포지션을 봐도 의문이 든다. 전북 현대에서 공격적인 풀백으로 뛰던 안현범은 A매치 데뷔전에서 최후방 수비수를 맡았다. 광주FC에서 수비형 미드필더 혹은 중앙 수비수로 뛰던 이순민도 A매치 데뷔전에서 공격형 미드필더에 자리했다. 둘 모두 평생 입지 않은 옷을 갑자기 입은 것처럼 어색했다.
#다른 점③: 현장 체크 '多 vs 少'
벤투 감독과 코치진은 조를 나눠 K리그 현장을 자주 찾았다. 대표팀 선수가 많은 빅클럽이나 K리그1 경기만 본 것도 아니다. K리그2 경기장에도 자주 등장했다. 전국을 다 돌았다. 상암·수원·인천·안산·목동·성남·춘천·강릉·울산·대구·전주·상주·김천 등에서 벤투 감독이 목격됐다.
K리그2의 B구단 관계자는 “같은 날 수도권에서 K리그1 경기가 열렸는데도 우리 홈구장에 오셔서 깜짝 놀랐다. 당시 우리 경기는 빅매치도 아니었고, 대표팀급 선수도 없었다. 벤투 감독은 90분 동안 집중해서 선수들을 지켜보고 조용히 가셨다”고 회상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K리그나 국내축구 현장에서 마주치기 힘들다. 저 멀리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K리그를 관전하기 때문. 클린스만 감독은 재임 기간 중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보냈다. K리그를 제때 챙겨보는지 확인할 수도 없다. 선수 선발 신뢰도가 낮은 이유다.
종종 코치진과 함께 유럽파 순회를 한다. 반드시 감독이 함께 갈 필요는 없는 일정이다. 클린스만 감독이 취임 기자회견에서 직접 한 말도 있다. 과거 재택근무 논란이 불거진 점에 대해 “감독인 나는 한국에 상주하고, 유럽에 있는 코치들이 유럽파 선수들을 직접 보러 다닐 것”이라며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다른 점④: 감독 선임 과정 '투명 vs 불투명'
벤투 감독은 김판곤 전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 직접 불러왔다. 당시 김판곤 위원장은 “협회가 책정한 예산이 전보다 높아서 감독 선임 자신감이 있었다. 우리와 철학이 맞는 감독을 물색했다. 하지만 후보자들을 직접 면담하고 거절당한 적이 많다. 협회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을 요구한 후보도 있다. 벤투 감독이 가장 현실적인 감독이었다”고 직접 설명했다.
반면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은 감독 선임 주체가 누구인지 묻자 “클린스만 감독이 한국을 여러 번 와봐서 한국을 좋아하더라. 다른 후보자보다 동기부여가 컸다”는 말을 반복했다. 또한 클린스만 감독 계약서에 한국 상주 조건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는 바 없다”고 답했다.
#다른 점⑤: 기자회견 '성실히 vs 굳이 왜?'
질의응답을 대하는 태도도 다르다. 벤투 감독은 메이저 대회든, 친선 경기든 대표팀 명단을 발표할 때마다 꼬박꼬박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의 질문에 성실히 답했다. 선수 부상 현황도 이 자리에서 체크할 수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퍼졌을 땐 화상 기자회견으로 대답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에 없기 때문에’ 기자회견을 축소했다. 이번 9월 명단을 발표할 때는 미리 예상 답변을 만들어 보도자료로 배포했다. “이강인 부상으로 차질이 생겨 곤란하다”, “대표팀에 처음 뽑힌 김준홍·김지수는 즉시전력감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뽑았다”는 답변도 취재진이 질문하기 전에 미리 텍스트로 적은 것들이다.
#아시안컵 개막 D-135
클린스만 감독은 자신의 목표를 두고 “아시안컵 우승”이라고 공언했다. 카타르 아시안컵은 내년 1월에 개막한다. 겨우 4개월밖에 남지 않았다. 최종 엔트리 발표 시점을 고려하면 100일보다 조금 더 남은 셈. 클린스만 감독이 100일 안에 반전을 보여줄 수 있을까. 기대보다는 걱정만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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