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문대 가을축제서 드러난 지방캠퍼스 차별·혐오 민낯
"내가 더 노력했는데 같은 대우받는 건 '불공정' 생각"
(서울=연합뉴스) 안정훈 최원정 기자 = 대표적인 대학가 가을 축제인 고연전(연고전) 과정에서 해묵은 '본교·분교'간 차별·혐오가 다시 한번 드러나 축제의 의미를 퇴색시켰다는 지적이 나온다.
8∼9일 열린 고연전을 앞두고 두 사학명문의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 교류행사에 참여하는 '자격'을 두고 지방캠퍼스 소속 학생에 대한 멸시와 차별이 재현되면서다.
대학생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의 자유게시판에는 지난 7일 연세대 서울 신촌캠퍼스 재학생으로 추정되는 누리꾼이 '원세대 조려대'라는 제목으로 두 학교의 분교생을 깎아내리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 표현은 각각 연세대와 고려대의 지방캠퍼스를 부르는 오래된 멸칭으로, 원주시에 있는 연세대 미래캠퍼스와 세종시 조치원읍에 있는 고려대 세종캠퍼스를 뜻한다.
이 글 작성자는 "연고전 와서 사진 찍고 인스타 올리면 니가 정품 되는 거 같지?"라며 "니넨 그냥 짝퉁이야 저능아들"이라고 조롱했다.
고려대 재학생과 졸업생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의 익명게시판에서도 5일 '세종(세종캠퍼스 학생)은 왜 멸시받으면서 꾸역꾸역 기차나 버스 타고 서울 와서 고연전 참석하려는 거임?'이라는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일부 학생의 짤막한 글이지만 이를 보는 당사자로선 큰 모멸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상당히 노골적인 수위다.
지난 4일에는 고려대 서울캠퍼스 학생들의 노골적 차별에 분개한 세종캠퍼스 총학생회가 대자보를 두 캠퍼스에 붙였다.
세종캠퍼스 총학은 이 대자보에서 지난 5월 고려대 응원제인 '입실렌티'를 준비하면서 서울캠퍼스 총학생회장이 세종캠퍼스 재학생을 '학우'가 아닌 '입장객'으로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세종캠퍼스 총학은 이 '입장객'이라는 표현을 두고 "세종캠퍼스 학생을 학우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긴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방캠퍼스를 향한 이같은 본교생의 우월적 태도는 익명 게시판에 그치지 않고 '오프라인의 인식'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고려대 서울캠퍼스 4학년생 구모(24)씨는 10일 "입학 성적도 매우 다르고 각 학교의 구성원의 학업 성취도 역시 매우 다르기 때문에 우리 학교의 일부라기보다는 아예 다른 학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신촌캠퍼스 공학계열 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27)씨는 "이름만 같고 아예 다른 학교인데 왜 본교의 이점을 취하려고 드는지 잘 모르겠다. 자신들의 수능 점수를 까먹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입학 성적이 차이나기 때문에 '명문대생', '명문대 출신'이라는 사회적 타이틀을 함께 누리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고려대 세종캠퍼스 4학년생인 허모(24) 씨는 "성적에 따라 대학과 사람의 계급을 나누는 사회 풍조가 대학 사회로 흘러들어왔다고 생각한다"며 "요즘 학우들은 매해 이런 일이 반복되니 분노를 넘어 체념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기성세대가 생각했던 '공정'보다 2030세대 젊은 계층의 기준이 더욱 엄격해졌다"며 "자신은 1시간이라도 더 공부해서 입학했는데 왜 분교생이 동등한 권리를 가져가느냐고 의문을 품고 분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학벌주의의 축소판인 '캠퍼스'의 계급화는 비단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2021년에는 고려대 세종캠퍼스 재학생 A씨가 서울캠퍼스 총학 비상대책위원회 임원으로 선임되자 온라인 커뮤니티에 A씨의 이름과 사진 등이 공개됐다. '신상털기' 사건에 결국 비상대책위는 학칙 재심의를 거쳐 A씨의 임원 임명을 무효로 했다.
졸업장, 졸업증명서에 지방캠퍼스를 따로 표기해야 한다는 일부 본교 학생의 주장은 '단골 메뉴'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고등학교 때 성적만을 능력이라고 보고 서로를 구분 짓는 건 우려스러운 착각"이라며 "수년 전에 한 번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대입 성적 대신 대학에서 기를 수 있는 개인의 다양한 능력을 보고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hu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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