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선웅 연출 "'카르멘', 재조명…집착에 몰린 스토킹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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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나 너한테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내가 아는 건 죽을 때까지 널 따라다닌다는 거야."
마음이 식어버린 집시 여인 카르멘에게 사랑을 갈구하다가 이내 집착하며 광기로 돌변하는 돈 호세.
특히 그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새장 속에 가두려는 헤어진 연인 돈 호세의 광기와 집착을 부각하며 카르멘을 스토킹 피해자로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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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이젠 나 너한테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어. 내가 아는 건 죽을 때까지 널 따라다닌다는 거야."
마음이 식어버린 집시 여인 카르멘에게 사랑을 갈구하다가 이내 집착하며 광기로 돌변하는 돈 호세. 그녀에게 자신을 버리지 말아 달라며 매달리다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분노하며 비극으로 치닫는다.
한 송이 붉은 꽃처럼 매혹적인 몸짓으로 그에게 다가갔던 카르멘은 "그냥 마음이 떠났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에게 뒤돌아선 그녀는 새장을 벗어나 자유를 원한다며 자신의 길을 갈 뿐이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비제의 오페라로 잘 알려진 '카르멘'이 연극으로 재탄생했다. 서울시극단은 지난 8일 개막한 연극 '카르멘'을 오는 10월1일까지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다.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1845년 원작 소설과 30년 뒤 발표된 비제의 오페라 대본을 바탕으로 고선웅 서울시극단 단장이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고 단장은 지난 8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카르멘이라는 인물을 재조명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이번 작품에선 기존의 '카르멘'을 보는 시선을 틀었다. 카르멘을 남성 편력이 있는 '바람둥이 여자'로 보는 게 아닌, 자유로운 의지와 정신세계를 가진 인물로 그린다. 특히 그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새장 속에 가두려는 헤어진 연인 돈 호세의 광기와 집착을 부각하며 카르멘을 스토킹 피해자로 해석했다.
고 단장은 "돈 호세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그것이 이번 연극에서 말하고 싶었던 핵심 문장"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놔두어야 옳다. 그는 (옛 연인인) 미카엘라를 훌쩍 떠나더니 카르멘을 향한 집착과 광기의 깊은 수렁으로 돌진해 버린다"며 "카르멘은 잘못이 없다는 걸 관객들이 공감했으면 좋겠다. 지금 시대에 맞게 바라보며 카르멘의 명예를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또 원작에는 등장하지만 오페라 대본에는 없는 카르멘의 전 남편인 가르시아의 비중을 키웠고, 카르멘의 새로운 사랑의 상대인 투우사 루카스는 오페라 대본에 따라 에스까미오 이름으로 등장한다. 고 단장은 "연극은 캐릭터를 보는 재미"라며 "카르멘을 둘러싼 여러 유형의 남자를 보여주면서 돈 호세의 비틀린 집착을 더 선명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설명했다.
각색을 통해 대사를 손보며 시(詩)극으로 탈바꿈했다. 이 때문에 고전극의 옛스러운 느낌도 묻어난다.
고 단장은 "대사를 일반적인 말투로 했을 때 맛이 없다고 생각했다. 문장을 시처럼 표현했고, 노래와 말의 중간 단계로 시를 낭송하듯 이야기한다. 이런 연극이 더 연극적이라고 생각해 시도했다. 옛스러운 연극의 맛도 나고 문학적인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대엔 한가운데 원형 판을 설치했다. 이를 중심으로 인물들이 그 위에 서거나 주변을 맴돌며 극이 전개된다. 집시 여인들이 흥겹게 춤추는 무대가 되고, 달려드는 소에게 붉은 천을 휘날리는 투우장이 된다. 카르멘과 돈 호세의 충돌은 투우장에 마주하고 있는 투우사와 황소의 대결처럼 그리려 했다.
고 단장은 "한 인물이 중앙에 서 있으면, 그 주변을 다른 인물이 돌면서 위성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 두 사람의 관계를 투우처럼 그리며, 힘의 관계로 풀어내고자 했다"고 전했다.
카르멘 역은 서지우, 돈 호세 역은 김병희, 미카엘라 역은 최나라, 에스까미오 역은 강신구, 가르시아 역은 장재호가 맡았다.
한편 세종문화회관 산하 서울시오페라단도 지난 8일과 9일 서울 광화문광장 특설무대에서 오페라 '카르멘'을 선보이기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akang@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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