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스크 평전 “아버지가 때릴때마다 영웅 상상... 훗날 사업 자산 됐다”
세계 최고 부자, 테크의 제왕(Techno King), 천재 기업인, 기행의 달인. 테슬라, 스페이스X, X(옛 트위터) 등 6개 기업을 통솔하는 일론 머스크(52)를 수식하는 단어들이다. 막강한 기술 권력을 쥐고 나라 간 전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실판 ‘아이언맨’인 동시에, 철부지처럼 소셜 미디어에 끝없이 ‘망언’을 쏟아내는 그의 진짜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특이한 성격은 어떻게 형성됐고, 매일 누구와 어떤 대화를 하며 살까. 전기 전문 작가 월터 아이작슨이 지난 2년간 머스크를 근거리에서 관찰하며 집필한 최신 평전 ‘일론 머스크’가 그 답을 알려줄 것 같다. 아이작슨의 책은 12일(현지 시각) 미국과 한국 등에서 동시에 발매된다.
◇불우한 유년, ‘영웅 놀이’ 집착하게 만들어
아이작슨은 머스크를 변덕스러운 ‘다 큰 아이(Man-child)’라고 묘사했다.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어 ‘사회적인 신호를 포착하지 못하는’ 공감성 결여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머스크는 자신과 세 자녀를 가진 캐나다 가수 그라임스가 지난 2020년 5월 아들 X를 출산하는 적나라한 장면을 찍어 친구와 가족들에게 공유했다. 겁에 질려 사진을 삭제하려고 시도했던 그라임스는 추후 아이작슨에게 “그는 내가 왜 화를 내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이 책에서는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그라임스와의 세 번째 자녀인 ‘테크노 메카니쿠스’의 존재도 처음 드러났다. 머스크는 세 여성과의 사이에서 자녀를 10명 둔 아버지가 됐다.
아이작슨은 머스크의 성격을 형성한 트라우마의 원천으로 아버지인 에롤 머스크의 학대와 학교 폭력을 지목했다. 그는 “머스크의 머릿속 악마의 구석을 점유하는 특정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그를 자극하고 어둡게 하며 차가운 분노를 일으킨다. 그중 1위가 아버지”라고 했다. 영국계 남아프리카공화국 이민자 집안에서 태어나 남아공에서 유년을 보낸 머스크는 어린 시절 수시로 또래 아이들에게 폭행을 당했고, 한 번은 일주일간 입원해야 할 정도로 크게 다쳤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는 맞고 들어온 머스크를 되레 야단쳤다. 그 충격으로 강인한 척하지만 쉽게 상처받고, 기분이 급격하게 변하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성격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유년의 폭력은 머스크를 ‘영웅 놀이’에 집착하게 만들었다. 구타를 당할 때마다 자신을 세상을 구하는 영웅으로 상상하며 버텼고, 그 생각은 고스란히 그의 사업 아이디어가 됐다. 인류 문명을 화성으로 이주시키겠다는 아이디어로 시작된 민간 우주 기업 스페이스X가 대표적이다. 이 때문에 그는 영웅이어야 하는 자신에게 대항하는 목소리를 질색하기도 한다. 아이작슨은 머스크가 논리적인 반대 의견을 청취하는 척을 하지만, 뒤에선 자신에게 항명하는 사람을 파괴자나 바보로 조롱하는 모습을 다수 목격했다고 썼다. 책에 따르면 머스크는 지난해 10월 X를 인수한 후 내부 커뮤니케이션 기록과 직원들의 소셜 미디어를 샅샅이 뒤져 자신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는 사람 수십명을 해고했다.
그는 자신이 순수한 ‘비영리 목적’으로 창업했던 오픈AI를 돈 버는 기업체로 변모시킨 샘 올트먼에 대해서도 거친 분노를 표현했다. 챗GPT가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지난 2월 머스크는 트위터 본사로 한때 창업 동지였던 올트먼을 ‘소환’하고, “어떻게 비영리 프로젝트를 수억달러짜리 영리 목적 비즈니스로 전환할 수 있는지 설명해보라”며 다그쳤다는 것이다. 아이작슨은 “만남은 올트먼을 아주 고통스럽게 했다”고 썼다.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한 머스크
뉴욕타임스는 “이 책의 가장 큰 특종은 머스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대한 드론 공격을 멈추기 위해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서비스를 끄도록 비밀리에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머스크는 수차례 이 전쟁에서 자신은 ‘우크라이나의 편’이라고 밝혀 왔었지만, 스타링크 기술로 실현된 우크라이나의 공격이 러시아의 핵 반격을 일으킬까 두려워 긴박하게 통신을 끊었다는 것이다.
아이작슨은 당초 머스크가 지난해 2월 러시아의 공격으로 통신이 끊긴 우크라이나에 스타링크를 제공한 것도 ‘영웅 심리’의 연장선이라고 봤다. 실제로 그는 수백만달러 규모 스타링크를 무료로 설치해주며 우크라이나의 영웅이 됐다. 하지만 스타링크로 연결된 드론이 러시아를 공격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하자, 머스크는 아이작슨에게 “이 전쟁에서 나는 어떤 역할인가”라고 물었다고 한다. “스타링크는 전쟁에 참여할 의도가 없다. 그저 사람들이 넷플릭스를 보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는 평화로운 일을 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것이다. 자신 때문에 전쟁이 커질 것이라 두려워한 머스크는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 주미 러시아 대사와 통화를 하고야 마음을 놓았다고 아이작슨은 썼다.
갑작스러운 통신 중단으로 공격이 무산된 우크라이나 고위층은 머스크에게 전화와 문자로 네트워크 연결을 간청했다. 미하일로 페도로우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머스크에게 기밀 사항인 잠수함 드론의 성능을 알려주기까지 하며 네트워크 복구를 요청했다. 우크라이나와 머스크는 X에서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미하일로 포돌랴크 우크라 대통령 보좌관은 “우크라의 공격을 막은 결과 러시아의 군함이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게 됐고, 결과적으로 민간인과 어린이들이 살해당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머스크는 “러시아 함대를 공격하기 위한 네트워크 활성화 요구가 있었는데, 그 요구에 응했다면 스페이스X는 전쟁과 갈등을 더 격화시키는 데 연루됐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트위터 인수는 ‘대선 좌우하기 위한 것’
아이작슨은 머스크의 복잡한 정치적 성향에 대해서도 솔직한 묘사를 이어갔다. 지난해 440억달러에 X를 인수한 머스크는 거래가 이사회 승인을 받은 지 며칠 후, 자신의 10대 아들 네 명에게 “다음 미국 대통령 선거를 좌우하기 위해 소셜 미디어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머스크는 아이작슨에게 “2024년에 트럼프가 당선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농담조로 물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머스크가 트럼프 지지자인 것은 아니다. 아이작슨은 머스크가 정치를 단순하게 좌우로 분류하는 것을 싫어한다고 했다. 공화당 지지자로 ‘오해’를 받는 그는 아이작슨에게 “나는 트럼프의 팬이 아니다. 그는 파괴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아이작슨에 따르면 머스크는 트럼프를 사기꾼으로 보고 있으며, 깊이 경멸하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해선 “수년 전 그와 샌프란시스코에서 점심을 했는데, 한 시간 동안 웅얼거림을 반복할뿐 정말 지루한 사람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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