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만 열병식 세번째…“전민 무장화” 외치는 북한[뉴스분석]

8일 ‘정권 75주년’ 민방위 무력 열병식 개최
정규군과 민간 모두 “전민 항전 철저히 준비”
김정은 부녀 둘러앉은 군부···정권 수호 의지
시진핑·푸틴 축전···북·중·러 연대 강화 확인

북한 정권수립 75주년 기념 민방위 무력 열병식이 지난 8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이 정권 수립 75주년 기념 열병식을 열며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시기 처음으로 한해 열병식을 세번 개최했다. 전국 직장별 민방위 부대를 중심으로 “전민 무장화”를 외치며 김 위원장이 최근 강조하는 전쟁 준비 역량을 과시했다. 중국과 러시아 정상은 축전을 보내 북·중·러 연대 강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북한 정권 수립 75주년 기념 ‘민방위 무력 열병식’이 지난 8일 밤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 당·정·군 주요 간부들, 류궈중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 당·정부 대표단, 알렉산드로프 러시아군 아카데미협주단, 북한 주재 중국·러시아 대사 등이 열병식을 지켜봤다.

열병식에서는 북한 전국 각지의 직장에 편성된 노농적위군(한국의 예비군·민방위 개념) 부대들이 재래식 무기를 갖추고 행진했다. 컨테이너 내에 방사포를 장착한 트럭, 시멘트를 적재한 것으로 위장해 방사포를 갖춘 덤프트럭, ‘반탱크미사일’ 발사대를 견인하는 트랙터, 오토바이 부대 등 노농적위군 기계화종대가 등장했다.

북한 정권수립 75주년 기념 민방위 무력 열병식이 지난 8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정권 수립 75주년 열병식은 지난 2월 건군절 75주년과 지난 7월 전승절(한국전쟁 정전협정 체결일) 70주년에 이어 올해 세 번째 열병식이다. 2012년 김 위원장이 집권한 이후 주요 계기마다 열병식이 개최됐지만 한해 세 번 열린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 7월 전승절 열병식 이후 한 달 보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개최한 것도 특징이다.

잇따른 열병식 개최는 김 위원장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전쟁 준비 태세”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번 열병식에서는 정규군뿐 아니라 민간 예비군·민방위도 전쟁 수행력을 갖추고 있다며 “전민 무장화”를 강조했다. 민방위 부대가 “인민군대와 함께 공화국 무력의 2대 기둥이 되여 전민 항전의 철저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전민 무장화, 전민 방위체계의 거대한 생활력과 위력한 실체를 세계 앞에 과시”했다고 통신은 소개했다.

홍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10일 기자와 통화에서 “각 지역과 직장 단위에서 활용할 수 있는 차량을 동원해 언제든지 전쟁 준비에 참여할 수 있다고 연출한 것이 핵심”이라며 “전쟁 임박설을 강조해 주민들에게 긴장감을 부여하고, 최근 (강화된) 한·미·일 안보협력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심리적 압박감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북한 정권수립 75주년 기념 민방위 무력 열병식이 지난 8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이번 열병식은 체제 결속에 초점을 맞춘 내부용 행사로 분석된다. 김 위원장이나 당·정·군 간부들의 공개 연설이 없었고, 열병식마다 선보인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대남·대미용 핵·미사일을 선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열병식 개최 당일 공식매체 보도를 통해 전술핵잠수함 건조·진수 사실을 공개하며 군사적 성과를 미리 과시한 측면을 고려했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열병식 주석단 전면에 위치하지 않은 모습도 이러한 평가에 힘을 싣는다. 김 위원장은 주석단 전면의 테라스에 서서 행렬을 바라본 기존 열병식들과 달리 테라스 뒤편의 특별석에 앉았다. 지난 7월 전승절 70주년 열병식 때는 주석단 전면에 중국·러시아 대표단과 나란히 서며 대외 메시지를 발신했지만, 이번에는 중국 당·정부 대표단이 참석했음에도 함께 서 있지 않았다. 대신 김덕훈 내각 총리와 조용원 노동당 비서,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등 당·정 관료들이 전면에 섰다.

김 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앉은 주석단 특별석에는 리병철·박정천 북한군 원수, 리영길 군 총참모장, 강순남 국방상, 정경택 군 총정치국장, 김정식 노동당 군수공업부 부부장이 둘러앉았다. 군부 핵심 간부들이 김 위원장 부녀를 수호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주민들에게 김 위원장 일가 ‘백두혈통’과 김정은 정권 보위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정천 원수가 한쪽 무릎을 꿇고 김주애에게 귓속말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북한 정권수립 75주년 기념 민방위 무력 열병식이 지난 8일 저녁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가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중국과 러시아 정상은 김 위원장에게 정권 수립 75주년 축전을 보내 북·중·러 연대 강화를 재확인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친서에서 “백년 이래 있어 본 적이 없는 대변화가 급속히 일어나고 있는 속에서 국제 및 지역 정세가 어떻게 변하든 전통적인 중·조(북·중) 친선협조 관계를 훌륭히 수호하고 훌륭히 공고히 하며 훌륭히 발전시키는 것은 시종일관 중국 당과 정부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 8일 중국 당·정부 대표단을 접견하며 “습근평(시진핑) 동지와 중국 당과 정부가 조·중 관계의 특수성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느꼈다”며 사의를 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축전에서 “모든 방면에서의 쌍무적 연계를 계획적으로 확대해나가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며 “조선반도(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전과 안정을 보장하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