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지티브” 당부하던 김기현의 더 거칠어진 ‘네거티브’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연일 “사형” “단식 쇼” “대한민국 자격도 없다” 등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불과 열흘 전 “긍정적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고 당 의원들에게 당부하더니 정작 본인 입이 거칠어진 모습이다. 강조해야 한다던 경제, 민생 이슈는 본인 발언 중에서도 일부에 그쳤다. 당 지지도에 도움이 안되는 ‘네거티브’ 전략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대표는 10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사전에도 없는 출퇴근 단식 쇼, 당당한 꼼수, 망신스런 혁신, 부정부패하는 민주화 등등 언어유희의 극치를 보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 대표의 전날 검찰 출석이 ‘꼼수 조사’에 그쳤다며 비난한 것이다.
김 대표는 최근 이 대표, 윤미향 무소속 의원 등에 대한 강경 발언을 지속해 왔다. 지난 4일 단식 중인 이 대표를 향해 “밤낮 유튜브 라방(라이브방송) 즐기는 이 대표 모습에서 야당 수장 모습보다는 관심받고파 하는 관종 DNA만 엿보인다”고 조롱했다. 또 “반국가단체에 동조한 윤미향은 국회의원직은 물론 대한민국 국민 자격도 없다. 북한 조선노동당 간부에 더 적합한 인물일 것”이라며 일본에서 열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주최 행사에 참석한 윤 의원을 비난했다.
지난 7일엔 뉴스타파의 ‘대장동 허위 인터뷰’ 의혹과 관련해 “쿠데타 기도” “사형에 처해야 할 국가반역죄”라고 극단 발언해 주목받았다. 다음날인 8일엔 허위 인터뷰 의혹에 대한 반발 움직임을 두고 “가짜 언론인과 공생관계인 민주당의 뻔뻔함은 후안무치 그 자체다. 강도질하다 들킨 강도범위 왜 강도 단속하냐는 꼴”이라고 비유했다.
김 대표 자신이 대략 열흘 전 국민의힘 연찬회에서 한 발언과는 결이 다른 모습이다. 그는 지난달 29일 인천 중구 인천국제공항공사 인재개발원에서 1박2일 연찬회를 마무리하며 당 의원들을 향해 “부정적, 네거티브 형태의 백보드보다는 긍정적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다음 총선까지 경제, 민생을 살릴 것이라는 비전을 제시하도록 적극적, 긍정적, 포지티브(positive)하게 이슈 선점을 주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다짐을 허물어트린 건 김 대표 본인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경기도의회 현장정책 특강 현장에서 “민주당 요즘에 보면 참 부도덕하다. 거짓말을 밥먹듯하다, 부정부패, 비리 냄새가 온 동네에 풀풀난다”고 했다.
김 대표가 전국 곳곳을 누비며 한 민생 발언은 주목받지 못했다. 그는 경기도의회에서 경기도-서울 관계, 교통 및 주택 문제를 언급한 데 이어 다음날인 지난달 30일 전남 순천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열며 호남 민심 공략에 나섰다. 지난 4일엔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임금체불 문제를 다뤘고 7일엔 부산 현장 최고위에서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강조했다. 하지만 이들 행보 및 발언의 무게감은 김 대표 본인의 강성 발언에 매번 밀렸다.
총선을 앞둔 여당 대표의 행보로 전략적이지 못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신을 향한 반대 여론을 줄이는 한편 상대 지지층 결집을 막는 것이 선거전략의 기본인데 반대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 대표의 전략 스펙트럼이 윤석열 대통령 영향으로 제한된다는 분석도 있다. 김 대표는 마냥 강경 기조이길 원치 않으나, 윤 대통령의 강경 대응 기조에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최근 연일 “반국가 세력” 등 발언을 앞세우며 ‘이념 전쟁’에 앞장서고 국무위원들에게 “싸우라고 그 자리에 계신 것”이라고 독려하고 있다. 당 지도부가 공식 인정한 적은 없지만 김태우 강서구청장 공천 여부,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 등을 두고 용산 대통령실과 김 대표 사이에 엇박자와 불편한 분위기가 읽히기도 했다.
김 대표의 네거티브 강화는 당 지지율에 도움이 안된 것으로 최근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다. 한국갤럽이 지난 8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 지지도는 일주일 전 조사와 같은 34%였던 반면 민주당 지지도는 7%포인트 상승해 동률을 이뤘다. 내년 총선에서 ‘현 정부를 견제하기 위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응답이 50%로 ‘현 정부를 지원하기 위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37%)보다 높았다. 특히 수도권에서 야당 승리 여론이 높아 여당의 ‘수도권 위기론’이 실체화됐다. 인천·경기 지역에서 윤 대통령 지지율은 26%였다.
이번 조사는 지난 5~7일 전국 만18세 이상 1000명에게 100%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진행됐다. 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은 14.6%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나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조문희 기자 moon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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