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병들어가는 세상에선 그 어떤 학생·학부모도 잘 살아갈 수 없다 [김동진의 다른 시선]
“더 이상 동료를 잃을 수 없다”는 교사들 외침, 우리 모두의 생존 갈구하는 것
(시사저널=김동진 페페연구소 대표)
7월18일 서이초등학교 교사 사망 이후 지금까지 역대 최고 기온임에도 교사들이 매주 거리에 나오고 있다. 9월2일 여의도에서 열린 7차 교사 집회에는 전국에서 30만 명(주최 측 추산)의 교사가 모였다. 서이초 교사의 49재인 9월4일 교사들이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자, 해당일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하는 학교장과 병가나 연가를 쓰는 교사들을 징계하겠다는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경고성 발언이 있었다. 그러나 전국의 30여 개 학교는 재량휴업을 결정했고, 여의도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는 4만 명이 모였으며, 전남도청·대구시교육청·경북도교육청 등 전국 곳곳에서 열린 추모 집회에도 수만 명의 교사 및 시민이 모였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그보다 더 뜨거운 분노를 토해 내고 있는 교사들은 '더 이상 한 명의 동료도 잃을 수 없다'고 말한다. 최근 며칠 사이에 서울 양천구, 전북 군산, 경기도 용인에서 3명의 교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사망한 양천구의 40세 여성 교사는 '통제불능'인 6학년 담임이었고, 역시 6학년 담임이었던 군산의 30대 초등학교 교사는 업무 폭탄 외에 학교장과의 갈등을 호소했으며, 정년을 1년 앞두었던 용인의 60대 고등학교 교사는 두 달 전 한 학부모로부터 형사고소를 당하고 괴로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 교육 프로그램, 면밀한 재검토 필요
교사들의 집회를 계기로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으나 계속 존재했던 교사 및 학교 관리자들의 갑질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교사들이 평소에 경험해 오던 일이기에, 연이은 동료의 자살 소식에 교사들의 절망감은 더 커져가는 듯하다. 교육부는 당초의 징계 방침을 철회했다. 수만 명의 교사를 모두 징계한들 그 빈자리가 너무도 커서 학생들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해 교사들의 부재를 메울 방도가 마땅치 않을 것이기에, 애초에 그 수많은 교사에 대한 징계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혼란 가운데 한편에서는 일부 초등학생 학부모가 자녀에게 특정 앱을 다운받게 한 후, 학교 수업을 실시간으로 듣고 녹음해 단체 채팅방에 공유하며 교사에 대한 험담을 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또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감은 서이초 교사 추모활동에 참여했던 교사에게 학부모들에게 사과하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이 정도면 학생들의 지적·신체적·정서적 성장을 함께 도모하고 바른 길로 교육해야 하는 교육공동체의 주체인 교사·학부모 및 학교 관리자(교장·교감) 모두의 총체적 난국이 아닐까.
그동안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교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이번 일로 드러나게 된 것을 계기로 법제도의 개선도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필자는 대학생 및 성인학습자를 가르치는 교육자로서 교육에 관해 논하고자 한다. 아동청소년이 하루 중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인 학교를 둘러싼 교육 주체인 교사, 학교 관리자, 학부모 모두가 공통으로 바라는 것은 아동청소년의 올바른 성장일 것이다. 부모가 바라는 것은 자녀가 행복하게, 사회에서 제 역할을 다하며 살아가는 일일 것이다.
그런데 부모가 되는 삶의 사건 앞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부모가 되고 싶은지, 어떤 방식으로 자녀를 돌보고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인지를 숙고해 보는 것이다. 부모로서 자신의 육아 및 교육 철학을 정립할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자녀 양육의 철학을 확립한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자녀로서의 자신의 삶, 즉 부모/양육자와 상호작용하며 살아가던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돌아보는 일이다.
나는 집안에서 어떤 아이였는지, 나의 부모/양육자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지금 성인이 된 나는 나의 부모/양육자의 양육 방식 및 철학이 적절하고 좋았다고 생각하는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내가 보고 자라서 무의식중에 몸에 배어있는 자녀 양육 방식 및 철학의 어떤 부분을 어떻게 바꿔나가고 싶은지. 이런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고 스스로의 답을 찾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 각종 지자체 및 다양한 평생교육기관에서 행해지고 있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이 과연 부모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며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교육인지는 면밀히 살펴봐야 하는 문제다. 만일 그렇지 않고 단편적인 육아 정보나 특정한 육아 스킬(skill)만 주입하는 교육이라면, 그런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어떤 교육에서든 학습자가 스스로 자기 삶을 성찰하는 가운데 새로운 배움을 얻어 그 배움을 다시 자기 일상 행동의 실천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고, 그것이 교육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는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 학교 관리자·교사·학부모가 각각 어떤 방식으로 책임을 질 것인가에 대한 교육 역시 필요하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 이후 교육부에서는 학교에 전화할 때 통화연결음으로 "폭언이나 욕설은 삼가주시고, 통화내용이 녹음될 수 있다"는 등의 문구를 학교가 자율적으로 넣도록 몇 가지 문구를 배포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통화연결음이 아니라, 학부모/양육자가 교사에게 폭언과 욕설을 했을 경우 법적으로 처벌하고, 필요한 교육을 하는 일이다.
학교 관리자들도 진정한 리더십 보여야
최근 연이은 교사 집회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 각종 교권 침해 사례 중 하나는 폭력적이거나 과잉행동 등 문제 행동을 하는 아동의 학부모에게 전문기관에서 상담받을 것을 담임교사가 요청했으나, 학부모가 이를 '거부'했다는 사례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아동은 문제 행동을 반복했고, 교사의 수업 중 상당 부분은 교사가 홀로 해당 아동의 문제 행동을 저지하는 데 쓰여야 했다면, 상담을 거부한 학부모는 같은 교실에 있는 다른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한 셈이다.
이 경우 문제 행동을 보이는 아동은 즉시 교실에서 분리돼 전문 상담교사, 특수교사 혹은 교감·교장과 상담하되, 해당 아동의 부모 역시 함께 상담을 받기 전에는 아동이 교실로 복귀하지 못하게 하는 절차가 필요하다. 또한 이 과정에서도 학부모에게 왜 상담을 받는 것이 중요한지,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로 학급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있는지 등을 인식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할 것이다.
이에 더해 학교 관리자 역시 자신이 할 일이 학교장이라는 위치에서 오는 권력으로, 교사를 보호하고 아동의 전인적인 성장을 도모하며 학부모와 협력 및 협상을 잘 해내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지금껏 교감·교장이 되는 과정에서 그와 관련한 교육이 없었다면 이 역시, 학교 관리자들 자신이 경험한 학교 현장을 돌아보며 스스로 생각하는 가운데,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 스스로 정의하게 하는 그런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더 이상 한 명의 동료도 잃을 수 없다'는 교사들의 외침이 필자에게는 우리 모두의 생존을 갈구하는 외침으로 다가온다. 교사가 병들고 죽어가는 세상에서는 그 어떤 학생도 학부모도 잘 살아갈 수 없다. 부디 교사들은 살아남아서 연대하는 동료 시민들과 함께 이 사회를 바꾸어갈 수 있기를, 그래서 지금 우리의 행동이 훗날 돌이켜볼 때 변화를 일구어낸 역사의 흔적으로 남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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