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칼럼] 이사회 전문성, 제도보다 사람이 우선

김동환 하나벤처스 전 대표이사

기업경영에 있어 상당수 주요한 의사결정은 이사회를 통하도록 상법에 명시됐다. 몇몇 중요사안은 주주총회 결의를 거치도록 되어 있지만 기업이 커지고 주주가 많아질수록 주총을 빈번히 개최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이사회 구성과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일반적으로 법인 대표이사는 이사회에서 선임하기 때문에 이사회 구성은 회사의 지배구조를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국내 대기업 상당수는 아직까지 창업자의 가족 또는 후손에 의해 경영되고 있으나, 세대를 거쳐 몇 차례의 상속과 승계가 이어지면서 창업주 가문의 지분율이 점차 줄고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상당수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전문경영인이 맡으면서 사외이사와 이사회 역할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또한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공기업 및 금융사들은 전문경영인의 임기만료가 도래할 때마다 후임자 선정과정에서 진통이 반복되면서 CEO선정과정에서 이사회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회사가 점점 커지고 사업이 복잡해지면서 주주들이 회사의 다양한 현안을 파악하고 경영진을 감독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전문경영인의 실적에 따라 회사의 성과나 주주들의 재산상황에 큰 변화가 올 수 있다. 게다가 이런 CEO가 모든 이사진을 임명할 수 있을 경우, 그 CEO의 권한은 정말 막강해진다. 이러다 간혹 회사나 전체주주를 위한 경영보다 CEO가 자신의 이익 또는 특정 대주주를 위한 경영을 펼칠 경우 대리인 문제(Agency Problem)가 발생한다. 이러한 대리인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나온 방안이 이사회에 강력한 권한을 주고 이사회 중심으로 경영하는 방법이다.

즉, 주주들이 이사회의 이사진을 선정하고 그 이사회가 주주들을 대신해 경영진을 감시하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먼저 발전한 미국에서 출자자(LP)나 소액주주들의 힘을 모은 기관투자자들이 이사회를 통해 주주위주의 경영을 유도하면서, 점차 이사회에서 사외이사의 비중이 높아졌다. 제도적으로 사외이사들은 사내 이사에 비해 CEO의 영향을 덜 받으므로 경영진과 독립적인 의견을 조금 더 편하게 낼 수 있다.

국내 주요 상장사들의 사외이사들을 보면 대체로 전직 검찰, 행정부나 대학교수 출신이 많다. 각자 해당분야에서의 전문성은 높겠지만, 이분들이 복잡다단한 기업경영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기업의 대관 또는 대외 업무에 도움을 주는, 즉 기업경영을 견제하기 보다는 기업이나 경영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을 수 있다. 미국 대기업들만이 아니라 국내 대기업들도 이미 이사진 구성에서 사외이사의 비중이 절반을 넘는 경우가 많다. 우선 사외이사진 구성의 개선만으로도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이사회 및 지배구조가 얼마나 우수한지 가늠할 수 있는 3가지 항목을 선정한다면 대체로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 그리고 활동성으로 볼 수 있다. 우리 제도가 아직 영미권과 차이는 있지만 사외이사 요건과 활동성 등 이사회 운영에 대한 제도적 준비는 비교적 되어 있다. 다만 이사회의 독립성과 사외이사의 전문성 등에서 개선이 요구된다. 결국 이는 어떤 사람들로 이사회를 구성하는 가의 문제이다.

업종마다 필요한 각 분야의 전문성과 경험을 가진 프로페셔널들로 이사회를 구성해야 한다. 이해상충 방지와 비밀유지가 된다는 전제하에 국내외 경쟁사 출신의 전문가도 사외이사진에 영입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그들이 오랜 기간 쌓은 경험, 그리고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 등을 감안하여 그들의 무게감에 맞는 보상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아쉽지 않은 전문가들을 영입함으로써 독립성까지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김동환 전 하나벤처스 대표이사 alex.kim@hanaf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