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가리고 아웅 금지’…국민의 알 권리 손 들어준 법원
최근 대통령실, 법무부, 검찰 등을 대상으로 한 정보공개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국민 알 권리’를 인정해 정보 공개 판결하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다. 한겨레가 최근 행정법원에서 나온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 주요 판결문을 분석해보니 법원은 ‘국익 침해’, ‘사생활 침해’ 등 추상적인 사유로 비공개 처분을 내려선 안 된다고 보고 있다.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① 정보가 없으면 없다는 걸 증명하라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서울시 청담동의 고급 식당에서 저녁 한 끼에 수백만원을 썼다는 의혹이 불거진 뒤 한국납세자연맹은 해당 일자 윤 대통령의 저녁식사 비용 등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대통령실은 ‘국방 등 국익 침해’, ‘사생활 침해’ 등을 들며 비공개 처분했고 행정소송까지 이어졌다.
법원은 이런 방식의 답변이 사실상 ‘정보 유무에 대한 묵비’라고 보고, 이러한 권리가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애초 피고가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면 이를 그대로 밝히면 될 것이지, 불투명하고 모호하게 답변을 회피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침해가 될 수 있고, 나아가 예산지출을 감시받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이후 대통령실은 “해당 정보를 보유하고 있지 않다”고 주장을 바꿨으나 법원은 인정하지 않았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1일 “외부 식당에서의 저녁식사 사실 자체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당연히 식사비용이 지출되었을 것인데, 이제 와서 비용지출과 관련한 정보가 없다는 피고의 주장은 납득할 수 없다”며 일부 공개 판결을 내렸다.
② 비공개 사유를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대라
시민단체 ‘세금도둑 잡아라’의 하승수 대표가 윤 대통령의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시절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업무추진비를 공개하라며 낸 소송에서도 법원은 구체적 수사정보를 제외한 나머지를 공개하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수사 정보라는 이유를 들어 하 대표의 정보공개청구를 사실상 ‘통으로’ 거부했는데, 법원은 구체적 기준을 들어 공개할 부분과 가릴 부분을 발라냈다.
특정업무경비도 어떤 수사에 사용됐는지 구체적으로 기재된 ‘수사활동비 지출내역’은 비공개하되 집행일자, 집행장소, 집행금액은 공개하라고 했다. 이 판결은 지난 4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수사 정보’라는 간단한 답변으로 정보공개청구를 일축했던 검찰은 소송에서 ‘사생활 침해’ ‘경영상 비밀’ 등 각종 사유를 추가로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주지 않았다. 이는 앞서 납세자연맹이 2019년 문재인 대통령의 특수활동비와 대통령 부부에 대한 의전비용 등 공개를 청구하며 낸 소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③ 추상적 국익보다 국민의 알 권리…예외는 없다
법원은 “국민의 알 권리 보장을 위해 공공기관이 보유·관리하는 정보는 적극적으로 공개해야 함이 원칙”이라고 못 박고 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1일 참여연대와 뉴스타파가 대통령실 직원 명단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행정안전부, 법무부 등 상당수 정부 조직뿐 아니라 감사원, 국세청 등 사정기관도 소속 직원의 성명, 직위, 직급 등을 공개하는데, 대통령실 소속 직원을 다르게 취급해야 할 특별한 이유는 없다”며 “대통령실 직원 명단 공개는 감시와 통제를 가능하게 해 공익에 크게 이바지한다”고 밝혔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달 24일 하 대표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지난해 미국 출장비 내역을 공개하라며 낸 소송에서도 원고승소 판결을 내리며 “법무부를 비롯한 중앙행정기관은 국외출장을 수행하는 경우 사전에 공무국외출장계획서를 작성하고 사후에는 출장결과보고서를 작성해 공개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법무부의 경우에만 정보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써 보호할 수 있는 업무수행의 공정성 등 공익이 특별히 더 크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하승수 대표(변호사)는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법원이 일관되게 판결해왔지만 대통령비서실이나 검찰 등 권력기관은 ‘비밀주의’에 휩싸여 있다”고 비판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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