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공동성명에서 러시아 규탄 자제… 실망한 우크라이나
막판까지 조율, 러 향한 "강력 규탄" 문구 빠져
中은 2026년 G20 의장국 美 순번에 이의제기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진통 끝에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규탄 수위를 두고 회원국 간 의견이 대립하면서 G20 출범 이후 최초로 공동성명이 불발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지만, 의장국인 인도의 주도 아래 수위를 낮추는 쪽으로 타협이 이뤄졌다. 우크라이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블룸버그 등 외신에 따르면 G20 정상들은 9일(현지시간) 'G20 뉴델리 정상 선언'이란 제목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83개 항목 가운데 많은 부분은 지난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린 G20 공동성명을 반복한 것이었다. 하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표현은 한층 순화됐다.
이번 성명에선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한 전쟁(the war against Ukraine)"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내 전쟁(the war in Ukraine)"으로 적시됐다. 또 "강력히 규탄한다"는 내용이 빠지고 "유엔 헌장에 따라 모든 국가는 다른 국가의 영토 보전과 주권, 정치적인 독립에 반해 영토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무력 사용이나 위협을 자제해야만 한다"는 내용이 들어갔다.
또 "핵무기 사용이나 위협은 용납할 수 없다"는 내용과 모디 총리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반복해서 썼던 "오늘날의 시대에 전쟁이 있어선 안 된다"는 문구도 포함됐다.
G20 참가국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했다. 인도 측은 "만장일치로 나온 성명"이라면서 "모디 총리와 인도가 모든 개도국과 선진국, 중국, 러시아 등 전 세계 모든 나라를 한 테이블에 앉혀 합의를 이끌어 낼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했다.
미국과 유럽도 영토 획득을 위한 무력 사용이나 핵무기 사용에 반대하는 등 핵심 포인트에서 전반적인 지지가 확인됐다며 타협을 통해 성명이 도출됐다는 점을 높게 샀다. 러시아 측 협상 대표인 스베트라나 루카시 역시 우크라이나와 관련된 문구는 "균형이 잡혔다"면서 협상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실망한 건 우크라이나다. 올레그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페이스북을 통해 "보다 분명한 표현을 원했다"며 "(G20은) 자랑스러울 게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크라이나가 이번 회의에 참석했다면 참석자들이 상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고 아쉬워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발리 G20 정상회의에 초대받아 화상 연설을 통해 러시아를 규탄하고 지지를 호소한 바 있다.
올해 G20 공동성명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대신 글로벌 경제부터 기후변화까지 전세계가 직면한 과제가 훨씬 많이 언급됐다. 성명은 "연쇄적 위기"가 장기 경제 성장에 도전이 되고 있고, 세계 경제를 뒷받침하기 위해 조정된 거시경제 정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 경제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고 경제 하방 위험이 더 크다고 경고했다.
기후 변화에 대해선 "전 세계적으로 재생가능한 에너지 용량을 3배로 늘리기 위한 노력을 추구하고 장려한다"는 약속이 포함됐다. 다만 중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반대로 화석연료를 단계적으로 폐지하는 데드라인은 적시되지 않았다.
공동성명엔 오는 2026년 미국이 G20 의장국을 맡는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2008년 미국은 첫 G20 정상회의를 개최했으며 2025년까지 나머지 회원국을 한 바퀴 다 돌아 2026년 미국이 다시 개최할 차례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중국은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이의를 제기한 뒤 기록으로 남겨둘 것을 요청했다고 블룸버그는 보도했다. 의장국 차례가 번복될 가능성은 없지만 대만 문제부터 수출 통제까지 미·중 대결이 이어지는 가운데 중국의 불편한 심기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G20 정상회의 개최 첫날 아프리카연합(AU)의 신규 가입이 이뤄졌다. 55개 국가가 회원국인 AU는 G20 내 유일한 지역블록인 유럽연합(EU)과 같은 정회원 지위를 갖게 됐다.
윤세미 기자 spring3@mt.co.kr 김희정 기자 dontsigh@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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