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사별자의 나라][한겨레21×한국심리학회 공동기획] 자조모임 만들고, 그래도 안녕을 말하는 자살사별자들
“꼭 누군가의 죽음이 아니어도 뭔가를 같이 나누며 떠나보내고, 그래도 우리가 옆에 같이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가 소중한 것 같아요. 그걸 너무 하고 싶어서 만든 영화이기도 하고요. 다른 분들한테 이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삶이 너무 외롭고 혼자가 된 것 같은 힘든 날에 이 영화가… (내가) 이럴 줄 알고 휴지도 가져왔어.”
겉옷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휴지를 꺼내는 영화감독 김현수(30)씨의 모습에 일순간 관객은 웃고 말았다. 2022년 11월26일, 서울 영등포구 경계없는예술센터에서는 단편영화 <아빠가 자꾸 살아 돌아와> 상영회와 관객과의 대화(GV) 행사가 열렸다. 마무리 발언을 하던 김씨는 순간 북받치는 감정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휴지를 꺼내자 코를 훌쩍이거나 눈물을 훔치던 관객 40여 명 사이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김씨는 “혼자인 것 같은 순간에 이 영화가 여러분을 좀 따뜻하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마저 말을 이었다.
죽은 사람이 자꾸만 살아 돌아온다면
단편영화 <아빠가 자꾸 살아 돌아와>는 7년 전 자살한 아버지 ‘조만수’가 기일을 앞두고 자녀의 눈에 보이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다. 만수의 쌍둥이 자녀 중 한 명인 ‘김조은’은 제사상을 차리고, 만수에게 성수를 뿌리거나 팥죽을 먹이지만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다. 은의 모습은 다른 쌍둥이 ‘김조영’의 눈에 이상하게만 보인다. 죽은 아버지를 원망하고 잊으려 한 영에겐 만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2023년 전주가족영화제, 인천여성영화제, 목포국도1호선독립영화제,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의 상영작으로 선정됐다.
<아빠가 자꾸 살아돌아와>는 2015년 아버지를 떠나보낸 김씨의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사별자들에겐 고인이 팝업창처럼 갑자기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을 ‘살아 돌아온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써보고 싶었다.” 고인이 떠난 뒤 남은 이들은 일상에서 사라진 존재를 계속 맞닥뜨리게 된다. 김씨도 예외가 아니었다.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다가도 ‘예전에 아빠랑 했던 건데’ ‘아빠랑 같이 술 엄청 먹고 숙취 때문에 엄마한테 혼났는데’ ‘그때 그런 말은 왜 했던 걸까?’라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김씨는 “내가 죽은 사람을 잊지도 못하고 계속 생각하면서 사는 거라면, (고인이) 살아 있는 사람과 뭐가 다른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화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지만 우연히 영화를 만들게 됐다. 2021년 힘든 시기를 보내며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를 보며 큰 위로를 받은 김씨는 자신이 영화를 통해 받은 힘을 다른 사람에게도 나눠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친구에게 “난 아빠가 자살한 이야기를 써볼까?”라고 반쯤 농담처럼 던진 말이 스스로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이상했는지, 어떤 때는 울었지만 어떤 때는 웃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내왔는지 너무 심각하지 않게” 표현해보고 싶었다.
언젠가 영화를 만들 생각으로 2022년 초 한국방송통신대 미디어영상학과에 편입했다. 그해 5월 영화 제작·배급사 ‘매치박스’가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진행하는 ‘내 손으로 만든 퀴어영화 2022’ 워크숍에 선정됐다. 이후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 후원과 비온뒤무지개재단의 이반시티퀴어문화기금사업을 통해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영화를 만드는 동안 제일 기다렸던 날”인 첫 단독 상영회에서 관객은 웃고 울고 다시 웃었다. 이날 상영회에 온 김씨의 동료 한 명은 질문에 앞서 그에게 “무한한 연대와 지지, 사랑의 마음을 보낸다”고 운을 뗐다.
‘그냥 얘도 사는구나’ 했으면 해서
<한겨레21>이 만난 자살사별자들은 글·만화·영화 등 어떤 방식이든 자신이 겪은 사별과 그 이후의 경험을 공개했다. 박희진(23·가명), 고희인(32·가명)씨는 각각 2022년 12월과 2023년 5월 친구를 자살로 잃었다. 모든 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지만 주변 사람과 이 아픔을 이야기하고 온라인 플랫폼에도 글을 썼다. 이는 박씨에게 “친구의 죽음과 내 고통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었고, 고씨에겐 “보고 싶은 친구와의 추억을 표현하고 정리할 수 있는” 애도 방식이었다.
동시에 사별자들은 자신의 경험이 다른 사별자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드러냈다. 박씨는 “저와 비슷한 일을 겪은 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저도 사니까…. 내 글을 보고 ‘용기를 얻으면 좋겠다’는 너무 거창하고, ‘그냥 얘도 사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해서 공개된 곳에 글을 썼다”고 설명했다. 2020년 함께 살던 애인이 숨진 한승현(31·가명)씨는 애인의 죽음을 소수의 성소수자 지인을 빼고 자신의 가족과 친구, 동료 등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사별 이후 맺은 관계에선 현 애인을 제외하면 이 사실을 밝힌 것은 <한겨레21>이 처음이다. 그는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이유를 “그냥 이런 경험을 한 사람도 있고, 살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런 일을 겪는다면) 다 비슷하겠지만 되게 막막하고 그 상황에서는 아무 생각이 안 들잖아요. 그 상황에서는 사실 내가 죽을 것 같고, 되게 힘들고, 극복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니까. 저도 어둡기만 했고요. 물론 지금도 전 죄책감이 있긴 한데 결국엔 나아질 수 있다? 앞으로 조금은 나아갈 수 있다? 뭔가 살아진다는 얘기를 작지만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2019년 오빠를 떠나보낸 김설(31)씨는 2022년 11월 책 <아직 이 죽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릅니다>를 펴냈다. 오빠의 자살 뒤 2년에 걸쳐 쓴 애도 기록이다. 그가 오빠와 사별했을 당시엔 지금보다 자살사별자의 삶을 다룬 에세이를 찾기 어려웠다. 김씨는 “사별 이후 어떤 현실적 장면을 마주하는지, 그런 순간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고 통과했는지”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싶었다.
“글쓰기로 존재와 존재를 연결하다”
김씨는 블로그에 자신의 경험을 적기 시작했다. 같은 자살사별자나 유가족이 조심스럽게 남긴 댓글이 그에게 조금 위로가 됐다. 그들의 존재만으로도 외로움이 덜해지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이나 아픔을 타인에게 털어놓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믿음으로” 2023년 상반기에 ‘숨숨공간’이라는 자살사별자 온라인 모임을 열었다. 이후에도 김씨는 꾸준히 블로그에 관련 책을 소개하거나 자조모임 행사 일정 등 자살사별자들이 도움을 얻을 정보를 알리고 있다.
“글쓰기로 존재와 존재를 연결하다.” 목회자이자 ‘도서출판 훈훈’의 대표인 소재웅(40)씨는 자신이 하는 글쓰기와 출판을 이 한 문장으로 설명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꾸준히 글쓰기 수업을 열며 작가로 활동해온 그는 2019년부터 출판사를 운영했다. 2021년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그가 어머니가 남기고 간 무형의 유산이 담긴 책 세 권을 차례로 장례식 직후, 그리고 매년 기일마다 출간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소씨가 생각하는 이 글쓰기의 역할은 “다시 한번 엄마에 대해 쓰고, 엄마가 남겨놓은 유산을 간직하면서 나와 엄마가 다시 연결되고, 엄마와 엄마를 사랑했던 다른 존재들과 연결되고, 더 나아가선 유족과 유족, 유족과 이 사회가 연결되는 것”이다. 2023년 6월 기독교 자살예방센터 라이프호프와 함께 ‘자살유가족과 함께하는 훈훈한 글쓰기’ 수업을 시작했다. 이와 별도로 자살 유족이 참여하는 온라인 글쓰기 모임도 8월 시작했다. 소씨는 “조각난 퍼즐이 다른 모양의 퍼즐과 만나면서 온전한 형태가 되는 것처럼, 자살이라는 사건으로 내 삶이 훼손됐지만 다른 훼손된 이야기와 만나 회복될 수 있고 아물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어머니의 자살을 공개하는 데 두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살유가족으로서 가진 아픔을 진솔하고 정확하고 따뜻한 언어로, 겸손한 언어로 표현한다면 웬만한 사람은 위로할 것”이라고 여겼다. 실제로 주변 사람들은 그의 아픔에 함께했고, 다른 교회의 한 목회자는 자신이 교회에 있는 자살사별자들을 어떻게 위할 수 있을지를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당신이 떠난 뒤 남은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자살 이후 직업을 바꾼 이들도 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던 심소영(44)씨는 아버지의 자살이 자신의 사회생활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에 상담과 관련한 공부를 시작했다. 자살유족 자조모임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운영진이 된 시기와 맞물리면서 박사과정까지 밟게 됐다. 심씨는 자살유족이 경험하는 사회적 낙인 등 관련 연구를 하는 한편, 다양한 곳에서 자살예방 교육과 인식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시작은 사별자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고, 과거에 나도 저렇게 힘들었기 때문에 누군가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됐다.
심씨는 자살예방 교육을 할 때 자신도 자살사별자라는 사실을 밝힌다. 자살사별자와 아닌 사람의 간극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 간극을 좁히기 위해서라도 더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 내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내가 어떤 고통을 경험하며 살았는지, 자살이 말할 수 있는 죽음이 되기 위해선 유가족이 사실을 밝혔을 때 어떻게 반응해줘야 하는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말과 상처가 되는 말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고 싶다.”
2017년 자녀를 사별한 이수현씨는 현재 자살예방 업무를 담당하는 정신건강전문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자녀가 세상을 떠난 뒤 심리부검을 받았다.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계됐고 자조모임에도 나가게 되면서 조금씩 기력을 회복했다. 관련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에 마음이 갔다.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1년의 수련 기간을 거쳐 정신건강 사회복지사가 됐다.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조언하기보다는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옆에서 들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자녀를 사별한 뒤 이씨의 가장 친한 친구가 ‘네게 무슨 말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을 때 이씨는 대답했다. “내가 이야기할 때 ‘그 얘기 그만해’라고 하지 말고 들어주면 되고, 내가 너한테 전화했을 때 받아주면 돼. 나는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돼.” 이씨는 “자연스럽게 주변에 고인의 이야기를 하고, 다른 사람이 들어주면서 위로하는 환경만 있어도 애도가 지연되지 않을 수 있다. 애도를 빨리 시작할 수 있게끔 돕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진 않지만
슬픔과 자책에서 완전히 벗어날 순 없었다. 김설씨는 오빠의 죽음에 대해 산업재해 신청을 하지 않은 것이 “결국 오빠를 죽음으로 내몬 것 같은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은 것 같아” 찝찝함이 남는다고 했다. “이 찝찝함과 자책이 어쩌면 평생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재웅씨는 방송이나 토론회에 초청받아 참석한 뒤에 종종 공허함을 느낀다. “내 안의 깊은 이야기를 꺼냈을 때 몰려오는 피로감과,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어머니가 살아 돌아오진 않는다는 허탈함”이다.
이수현씨도 가끔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삶의 목표를 세워서 그 목표를 이루더라도, 함께 즐거워해줄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는 상실감이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 때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마음조차 안고 가기로 했다. 김씨는 조금이라도 그런 자책을 덜어내기 위해 과로사와 관련한 사회적 활동을 한다. “나중에 오빠를 마주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뭔가를 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다. 소씨는 피로와 공허함도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했다. “마치 이 상황을 ‘극복’하고 엄청난 사명감을 가진 사람”처럼 비치지 않기 위해서다. 힘들면 힘들다고 주변에 털어놓고 일상과 균형을 잘 유지해야만 어머니를 평생 잘 애도하면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이씨는 “여기서부터 출발하자”는 이야기를 센터 회원에게도, 자신에게도 되뇐다. “현재에 집중하다보면 그게 과거가 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은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다. 그 사실이 주는 고통에 몸부림치다가도 어느 날은 웃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모두 말과 글로는 담아낼 수 없었다. 2015년 연인이 숨진 성소수자 이건영(30·가명)씨는 “너무 많은 것을 말해야 해서 제대로 말이 안 나온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중요한 건 저도 실제로 자살 시도를 했고 그 뒤에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엉망으로 생활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생명이 지속됐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정말 완벽하고, 살아오길 잘했다’고 느끼는 순간도 굉장히 많았어요. 슬픔이나 고통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만 조금씩 투명해지는 것과 비슷하게 괜찮은 순간이 있었고요.”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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