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커 전 남친이 내 동생 죽였다” 피해자 사진 공개한 유족

김태원 기자 2023. 9. 10.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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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7일 전 남자친구에게 스토킹을 당하다 흉기에 찔려 숨진 고 이은총(왼쪽)씨가 가해자의 폭행으로 팔에 멍이 든 모습.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서울경제]

인천에서 예전 남자친구에게 스토킹을 당하다 흉기에 찔려 숨진 여성의 유족이 피해자의 이름과 사진을 공개했다. 유족은 가해자가 법원의 접근금지 명령을 어기고 범행을 저질렀다며 엄벌을 촉구했다.

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피해자의 유족 A씨가 '스토킹에 시달리다가 제 동생이 죽었습니다'란 제목으로 글을 게재했다. A씨는 "지난 7월17일 오전6시께 제 동생 이은총이 칼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고 말문을 열었다.

A씨에 따르면 가해자는 이씨의 전 남자친구였다. 우연히 테니스 동호회에서 만나 연인이 됐고 이씨 소개로 같은 직장까지 다니게 됐다. 그러다가 가해자는 결혼에 실패한 경험이 있던 피해자 이씨에게 계속해서 원치 않는 결혼을 종용했고 점점 집착과 다툼이 심해져 이씨는 결국 이별을 고하게 됐다. 이때부터 스토킹이 시작됐다.

하지만 가해자는 지속적인 연락으로 이씨를 괴롭혔고 차로 뒤를 쫓기도 했다. 이씨는 직장에서 가해자와 계속 마주쳐야 했으므로 가급적 좋게 해결하려고 했으나 이씨는 팔에 새까만 멍이 들 때까지 가해자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이에 결국 이씨는 지난 5월18일 경찰에 스토킹 피해 신고를 했다.

이씨와 가해자가 나눈 카카오톡 대화 내용.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그러나 가해자의 스토킹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6월1일, 여전히 이씨와 같은 회사를 다니던 가해자는 연애 때 찍었던 두 사람의 사진을 메신저 프로필에 올렸다.

이씨는 제발 사진을 내려달라고 부탁했으나 가해자는 사진을 내리지 않았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똑같은 사진을 올렸다. 다음날 가해자는 또 다시 이씨의 차 뒤를 위협적으로 따라붙었다.

지친 이씨는 "사진을 내려주고 부서를 옮기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말했고 가해자에게 각서를 받아 고소를 취하해 줬다.

그렇지만 6월9일 가해자는 또 이씨의 집 앞에 찾아왔다. 이씨는 두려움을 느껴 경찰에 신고했고 가해자는 접근금지 명령을 받은 뒤 4시간 만에 풀려났다.

이씨는 그렇게 수차례에 걸쳐 스토킹 위협을 받자 스마트워치를 차고 있었다. 그러나 6월29일 경찰은 "가해자와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면 스마트워치를 반납해달라"고 안내했고 이씨는 스마트워치를 반납했다.

이씨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가해자를 말리다가 이씨의 어머니도 부상을 당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A씨는 "동생이 세상을 떠난 이후 알게 된 건 7월13일부터 17일까지 가해자가 접근금지 명령을 어긴 채 집 앞에서 은총이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며 "그렇게 7월17일 오전 6시께 출근하려고 나갔던 성실한 우리 은총이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에서 가해자의 칼에 찔려 죽었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살려달라는 은총이의 목소리를 듣고 바로 뛰쳐나온 엄마는 가해자를 말리다가 칼에 찔렸고 손녀가 나오려고 하자 손녀를 보호하는 사이 은총이가 칼에 찔렸다"고 피해자가 변을 당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A씨는 "은총이가 칼에 맞아 쓰러지자 가해자는 자신도 옆에 누워 배를 찌르곤 나란히 누워있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소름 끼친다. 엘리베이터 앞이 흥건할 정도로 피를 흘린 은총이는 과다출혈로 죽었다"며 분개했다.

그는 또 스토킹 피해자 보호조치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A씨는 "수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지금 9월 첫 재판을 앞두고 보복살인이 아니라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스토킹 신고로 인해 화가 나서 죽였다는 동기가 파악되지 않아서'라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이유에서 가해자는 제 동생을 죽인 거냐"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7월17일 '스토킹 살인'이 벌어진 인천 남동구 논현동 한 아파트 복도.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아울러 “은총이가 죽은 7월에서야 스토킹 범죄는 반의사불벌죄가 폐지 됐다. 그럼 이제는 안전해지는 걸까”라며 "접근금지 명령도 형식에 불과했다. 연락이나 SNS를 안 한다고 끝날 문제인 거냐. 스마트워치는 재고가 부족하고 심지어 사고가 일어나야만 쓸모가 있다. 모든 상황이 끝나고 경찰이 출동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반문했다.

A씨는 "죽은 은총이의 휴대폰에는 스토킹과 관련된 검색 기록이 가득했다. 얼마나 불안했을지 되돌아보는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 가해자를 말리며 생겼던 상처 자국을 보며 엄마는 은총이가 생각난다며 매일 슬픔에 허덕이고 6살 은총이의 딸은 엄마 없이 세상을 살아가게 됐다"며 가슴 아픈 현실을 돌아봤다.

끝으로 A씨는 "제발 부디 은총이의 딸이라도 안전할 수 있게 도와주시고 스토킹 범죄와 관련해 많은 피해자분들이 안전해질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 주셨으면 좋겠다"며 네티즌들에게 탄원서 작성을 부탁했다.

9일 인천 논현경찰서에 따르면 가해자는 30대 남성으로 지난 7월17일 오전 5시53분께 인천시 남동구 논현동의 한 아파트에서 전 여자친구였던 30대 여성 이씨를 스토킹 끝에 살해했다.

가해자는 범행 직후 자해를 시도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다만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가해자는 지난 2월19일 경기 하남시에서도 이씨 폭행 등의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다. 이씨는 경찰에 6월2일 스토킹처벌법 위반 등의 혐의로 남성에 대해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같은 달 5일 고소를 취하했지만 같은 달 9일 남성은 또 다시 이씨의 주거지 인근을 배회했다가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다.

남성은 같은 날 조사를 받은 뒤 풀려났으나 경찰은 구속영장을 신청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에 잠정조치 신청을 했고 남성은 6월10일~8월9일 접근금지와 통신제한 결정을 받았다.

김태원 기자 reviv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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