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한국의 ‘이철수’는 누구입니까”···‘프리 철수 리’가 던지는 질문[리뷰]
1973년 차이나타운 사람들은 이철수를 ‘그 한국인 남자’로 기억했다. 중국계 이민자가 대부분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그는 유일한 한국인이었다. 어딘가 외로워 보였단 점을 빼면 특별할 것 없는 스무 살이었다. 그래서 이철수가 살인 혐의를 받았을 때, 사람들은 모두 그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이철수는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동양인 얼굴을 구분하지 못하는 백인 목격자 두 명은 그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경찰, 검찰, 배심원, 재판부 모두 그의 결백을 믿지 않았다. 이철수가 사건 며칠 전 총을 갖고 놀다 실수로 총알을 발사한 사실도 그를 중국 갱을 쏴죽인 살인자로 만들었다. ‘진짜 살인자’가 된 건 감옥에서였다. 악명 높은 감옥에서 살아남으려 친 발버둥은 사형 선고로 돌아왔다.
이제 끝인 걸까. 수감 4년 차, 절망에 빠진 이철수에게 기자 이경원이 찾아온다. 미 주류 언론의 유일한 한국인 기자였던 그는 이철수의 억울한 사연을 기사로 알린다. 한인 사회는 분노했고 거리로 나섰다. 1970년대 미국 내 한인 사회는 물론 아시아 커뮤니티 전체를 움직이게 한 ‘프리 철수 리’(이철수에게 자유를) 운동의 시작이었다. 이 운동은 1983년 이철수의 석방을 이끌어내며 ‘아시아 공동체가 함께 이룬 승리’로 기록됐다.
<프리 철수 리>는 당시 미국 사회를 흔들었던 ‘이철수 구명 운동’과 이철수의 생애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미국 선댄스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등 세계 여러 영화제에서 호평받은 이 작품이 오는 10월18일 국내 관객과 만난다.
다큐멘터리는 구명 운동에 참여했던 각계각층 인물들의 인터뷰와 법정 기록, 기사 등 관련 자료를 통해 당시 상황을 촘촘하게 재구성한다. 이민 1.5세대인 이철수가 자라 살인 누명을 쓰고, 1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한 과정은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을 드러낸다. 서로 가깝지 않았던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이철수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모습은 소수자 커뮤니티의 연대가 가진 힘을 보여주며 감동을 안긴다.
<프리 철수 리>는 그러나 이철수가 자유의 몸이 된 ‘승리의 순간’에서 이야기를 끝내지 않는다. 카메라는 승리를 만끽하는 운동 참가자들의 얼굴을 지나 이철수의 얼굴을 비춘다. 평범한 청년이었던 그는 10년 사이 인종차별과 미국 사법체계의 피해자이자 아시아계 이민자 커뮤니티의 상징이 됐다. 많은 이의 도움으로 얻은 자유는 곧 높은 기대로 돌아왔다. 이철수는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두려워했다. ‘공동체에 진 빚’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그리고 또 다른 비극의 씨앗이 된다.
잘 알려지지 않은 ‘승리 뒤 이야기’는 이철수가 잃어버린 것이 감옥에서의 10년만이 아님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철수가 ‘영웅의 서사’ 안에서 소비되지 않게 해준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줄리 하, 이성민 감독은 모두 한인 2세다. 두 사람은 2014년 이철수의 장례식에서 “왜 이철수의 이야기는 잊혔나”라는 이경원 기자의 성토를 계기로 다큐멘터리 제작에 나섰다.
이성민 감독은 지난 4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저는 책이나 학교를 통해 이철수씨 사건을 배우지 못했다. 미국 사회에서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이야기는 반드시 기록돼야 하는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라며 “저의 딸과 같은 다음 세대를 위해 이 이야기를 남겨둬야 한다는 마음으로 제작에 나섰다”고 말했다.
줄리 하 감독은 <프리 철수 리>를 통해 한국 사회의 소수자가 조명받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밝혔다. “저는 모든 사회에 다른 버전의 이철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싱글맘, 입양아, 북한이탈주민, 재소자처럼 환영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죠. 오로지 한 인간을 구하고자 했던 사람들의 힘을 통해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이철수들은 누구인가 생각해볼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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