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물 아닌 기름을 끼얹었네”…19살 고프, US오픈 정상에서 타오르다

박강수 2023. 9. 10.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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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미권에서 쓰이는 '하입'(Hype)이라는 단어가 있다.

고프는 10일(한국시각) 미국 뉴욕의 빌리진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유에스(US)오픈 테니스대회 여자 단식 챔피언에 올랐다.

고프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이고 대회 역사상 십 대 챔피언으로는 열번째, 십대 미국인 챔피언으로는 1999년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당시 17살) 이후 두번째다.

그해 고프의 다음 시험대는 유에스오픈이었고, 3라운드에서 오사카 나오미(일본)와 대결이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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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서리나 이후 첫 미국인 십 대 챔피언
코코 고프가 10일(한국시각) 미국 뉴욕의 빌리진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유에스(US)오픈 테니스대회 아리나 사발렌카와 결승전을 승리한 뒤 우승컵을 든 채 기뻐하고 있다. 뉴욕/로이터 연합뉴스

영미권에서 쓰이는 ‘하입’(Hype)이라는 단어가 있다. 실제 가격표를 웃도는 부풀려진 가치를 가리키는 말로 좋게 해석하면 시장의 기대치이고, 나쁘게 말하면 거품이다. 이른 나이에 스타덤에 오른 유망주들에게는 응당 하입이 붙기 마련이고, 그들의 현실과 사람들의 기대 사이 거리감은 부담감으로 전환돼 삶을 짓누른다. 미국의 19살 테니스 신성 코코 고프(랭킹 6위)도 마찬가지였다. 만만치 않은 하입이 어린 그를 압박했으나, 4년 만에 진가를 입증했다.

고프는 10일(한국시각) 미국 뉴욕의 빌리진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유에스(US)오픈 테니스대회 여자 단식 챔피언에 올랐다. 여자테니스협회(WTA) 랭킹 1위 등극이 확정적인 아리나 사발렌카(벨라루스·현 2위)를 상대로 첫 세트를 내주고도 끈질기고 침착한 운영으로 2-1(2:6/6:3/6:2) 역전승을 거뒀다. 고프 생애 첫 그랜드슬램 우승이고 대회 역사상 십 대 챔피언으로는 열번째, 십대 미국인 챔피언으로는 1999년 서리나 윌리엄스(미국·당시 17살) 이후 두번째다.

그의 등장은 센세이션이었다. 15살이었던 2019년 윔블던 대회 예선을 통과하며 최연소 기록을 썼고, 그의 우상 중 한 명인 비너스 윌리엄스(미국)를 꺾고 16강에 진출, ‘포스트 윌리엄스(서리나와 비너스)’를 고대해온 세계 테니스계의 이목을 휘어잡았다. 그해 고프의 다음 시험대는 유에스오픈이었고, 3라운드에서 오사카 나오미(일본)와 대결이 성사됐다. 들끓는 기대 속에 뚜껑을 열어본 경기는 단 65분 만에 오사카의 완승으로 끝났고, 고프는 코트 위에서 눈물을 흘렸다.

코코 고프가 10일 미국 뉴욕의 빌리진킹 내셔널 테니스센터에서 열린 유에스오픈 테니스대회 아리나 사발렌카와 결승전을 승리한 뒤 관중의 환호성을 들으며 코트 위에 누워 있다. 뉴욕/AFP 연합뉴스

이후 고프는 3년 만에 랭킹 10위권에 진입했다. 본격적으로 정상을 노크하기 시작했으나 결국에는 늘 패배와 마주해야 했다. 지난해 롤랑가로스(프랑스오픈)에서는 처음 메이저 대회 결승에 올랐지만 이가 시비옹테크(폴란드·1위)에게 패하며 다시 눈물을 떨궜고, 올해 윔블던에서는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충격을 겪었다. 휘청이며 코트를 떠났던 그는 당시 “열심히 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원점으로 돌아가서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들쭉날쭉했던 패배의 순간들에서 그가 배워야 했던 것은 결국 세간의 기대와 자신의 기대 사이 균형을 잡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일, 즉 정신력이었다. 고프의 새 코치진 중 한 명인 저미어 젠킨스 코치는 평소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고프의 포핸드 샷에 대해 “우승을 가르는 건 결코 기술이 아니다. 믿음, 자신감, 신념이 훨씬 중요하다”라고 했다. 그는 이제 고프가 ‘나가서 잘해야 한다’가 아니라 ‘잘하든 못하든 나는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설명한다.

고프는 윔블던 패배 이후 19경기 중 18경기를 이겼다. 그 사이 워싱턴 투어(WTA 500)와 신시내티 투어(WTA 1000)에서 우승하며 커리어하이 트로피를 차례로 들었고, 마침내 그랜드슬램도 제패했다. 고독하고 잔혹한 코트 위에서 홀로 압박감을 이겨내는 법, 경기를 즐기는 법, 자신에게 집중하는 법을 하나하나 깨우친 결과다.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코트에 드러누워 2만4000관중의 함성 속에 눈물을 글썽였던 고프는 경기 뒤 인터뷰에서 당찬 소감을 밝혔다.

유에스오픈 우승자 고프(오른쪽)와 준우승자 사발렌카. 뉴욕/AFP 연합뉴스

“한달 전 워싱턴 우승 때도, 2주 전 신시내티 우승 때도 사람들은 거기까지가 고점일 것이라고 말했다. 3주 뒤 저는 이 트로피를 들고 이 자리에 있다. 저에게 찬물을 끼얹는다고 생각했겠으나 실은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저는 지금 환하게 타오르고 있다.”

박강수 기자 turn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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