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위 2년만에 '군함도 결정문'…"日, 관련국과 대화해야"
(서울=연합뉴스) 김효정 기자 =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일본에 과거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이었던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과 관련해 한국 등 관련국들과 '지속적 대화'를 하라고 거듭 권고하는 결정문을 조만간 채택할 전망이다.
이런 내용을 담은 결정문이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10일부터 25일까지 개최되는 제45차 세계유산위 회의에 상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세계유산위 홈페이지와 외교당국에 따르면 21개국으로 구성된 세계유산위는 이번 리야드 회의에서 일본이 지난해 12월 제출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보존현황보고서를 평가하고 결정문을 채택할 예정이다.
일본이 하시마(일명 '군함도') 탄광을 비롯한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서 강제노역한 조선인 등의 역사를 제대로 알리고 있는지를 두고 세계유산위가 결정문을 채택하는 것은 2년여 만이다.
일본은 2015년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때 조선인 강제노역을 포함한 '전체 역사'(full history)를 알려 나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세계유산위 등 국제사회로부터 지적을 받아왔다.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하고서 이를 유산 현장이 아닌 도쿄에 만든 데다가, 도쿄 산업유산 정보센터 전시물에서도 조선인 차별이나 인권 침해가 있었다는 사실을 부각하지 않는 등 역사를 왜곡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2021년 7월에는 세계유산위가 조선인 강제징용자에 대한 설명 부족 등을 지적하며 일본에 이례적으로 '강력한 유감'을 표하는 결정문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세계유산위는 일본에 보존현황보고서를 낼 것도 요청했는데 이 보고서를 다시 세계유산위가 공식 평가한 결과가 이번에 결정문 형태로 나오는 것이다.
공개된 결정문 초안은 일본에 "시설의 해석 전략을 개선하기 위해 새로운 증언 검토 등 추가 연구와 자료 수집·검증뿐만 아니라 관련국들과 대화를 지속할 것을 독려(Encourage)한다"고 했다.
또 관련국과의 지속적 대화나 추가 조치에 대한 업데이트를 내년 12월 1일까지 세계유산위의 사무국 역할을 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그 자문기구에 제출해 검토받도록 했다.
결정문 초안이 언급한 '관련국'은 사실상 한국이 핵심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도 이번 결정문 문안이 나오는 협의 과정에 참여해 의견을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은 지난해 보존현황보고서에서는 조선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없었다는 등의 억지 주장을 반복해 한국 정부가 유감을 표한 바 있지만, 그 이후에 도쿄 산업유산 정보센터의 전시물을 일부 개선하는 조처도 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 측은 지난달 일본의 초청을 받고 도쿄 정보센터에 방문해 새로운 조치를 확인했다.
일본은 도쿄 정보센터에 "희생자들을 기억하기 위하여"라는 제목의 새로운 섹션을 설치하고, 2015년 유산 등재 당시 한일 정부 대표의 발언을 볼 수 있는 QR 코드 등을 전시했다고 센터는 밝혔다.
또 전시에 하시마 탄광에서 숨진 조선인 사망자 숫자 등을 기록한 전시물을 통해 당시의 가혹한 조건을 묘사하기도 했다고 센터는 전했다.
결정문 초안에 "당사국(일본)이 요구에 부응하는 일부 추가 조치를 취한 것을 감안한다"는 문구가 함께 담긴 것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서로 풀이된다.
이번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에 대한 세계유산위의 '중간평가'는 또 다른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인 일본 사도(佐渡) 광산의 세계유산 등재 절차가 추진되는 상황에서 더욱 주목된다.
국제사회가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사도광산 등재를 둘러싼 여론에도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도 일본이 유사한 배경의 사도광산을 또다시 등재 추진하기보다 메이지 산업혁명 유산 관련 스스로 약속한 후속조치를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혀 왔다.
사도광산은 현재 유네스코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 심사를 받고 있으며 최종 등재 여부는 내년 세계유산위에서 가려질 전망이다.
kimhyoj@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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