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대기] 대구고 “우리는 슬로 스타터”…2000년대 최강팀 이유 있었네
세광고와 명승부 끝에 4번째 우승
2000년대 이후 최다 우승팀 등극
손경호 감독 "겨울에 무리 안 시켜"
“슬로 스타터(Slow Starter)라서 봉황대기를 잘하는 것 같습니다.”
야구는 ‘9회말 투아웃’부터라는 격언을 현실로 만들며 역전 우승 드라마를 쓴 손경호 대구고 감독은 흐뭇한 미소로 기뻐하는 선수들을 바라보면서 문뜩 생각에 잠겼다. “우리가 2000년대 이후에만 네 차례나 ‘초록 봉황’을 품은 이유가 뭘까.”
답은 사령탑의 지도 철학에 담겨 있었다. 손 감독은 “겨울에 강도 높은 훈련으로 선수들의 몸 컨디션을 빨리 올리면 시즌 첫 대회부터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지만 우리는 날이 추울 때 무리시키지 않는다”며 “전형적인 슬로 스타터의 모습을 보이다 보니 유독 (시즌 마지막 메이저 대회) 봉황대기와 인연이 깊다”고 분석했다.
9회말 투아웃 2타점 동점 2루타, 10회말 개구리 스퀴즈 번트 끝내기
대구고는 9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막을 내린 제51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세광고와 결승전에서 대회 역사에 남을 명승부를 연출하며 통산 네 번째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08년과 2010년, 2018년 우승 이후 5년 만의 패권 탈환이다. 이로써 2000년 이후 최다 우승팀이 됐고 2000년대와 2010년대 2020년대에 모두 우승한 최초의 팀으로 이름을 올렸다. 통산 4회 우승은 북일고(5회)에 이어 공동 2위다.
올해 전국대회 16강 문턱을 넘지 못했던 대구고는 봉황대기에서 TNP베이스볼아카데미, 경민IT고, 경기고, 덕수고를 차례로 꺾었다. 최대 고비였던 경남고와 8강전에서 3시간 52분 혈투 끝에 9-8로 힘겹게 승리한 뒤 기세를 몰아 경동고와 준결승전은 13-5 완승을 거뒀다.
대망의 결승전은 야구의 묘미를 제대로 선사했다. 숨 막히는 투수전 속에 0-2로 끌려가던 대구고는 9회말 마지막 아웃카운트 1개를 남겨두고 드라마를 써 내려갔다. 사구와 안타로 무사 1·2루 기회를 잡았지만 믿었던 3, 4번 타자가 각각 파울플라이와 삼진으로 물러나며 벼랑 끝에 몰렸다. 그러나 이어진 2사 2·3루에서 5번 타자 양현종(2년)이 세광고 투수 이윤재(3년)의 초구를 노려 쳐 우중간을 가르는 극적인 2타점 동점 2루타를 쳤다.
승부를 연장까지 끌고 간 대구고는 10회초 수비에서 삼중살 플레이로 실점 없이 이닝을 마쳤고, 10회말 1사 만루에서 0볼 2스트라이크의 불리한 볼카운트인데도 이찬(3년)이 몸을 던져 공에 갖다 대는 일명 ‘개구리 스퀴즈 번트’로 끝내기 승리를 이끌었다. 손 감독은 “연장 11회까지 가더라도 우리가 유리하다는 판단에 작전을 밀어붙였다”고 설명했다.
'대타자' 양현종, MVP 영예...대회 2연패 전망도 쾌청
동점 2루타 주인공인 양현종은 대회 최우수선수(MVP) 영예를 안았다. 동시에 최다 타점상(17개)도 받았고, 타율은 5할(20타수 10안타)을 찍어 타격 3위에 올랐다. 양현종은 “주자가 앞에 있으면 유독 집중력이 생긴다"면서 “2학년 마지막 전국대회를 우승으로 장식해서 기쁘다”고 말했다.
봉황대기 4회 우승을 비롯해 2000년대 이후 8차례나 전국대회를 제패한 대구고지만 사실 올해 전력은 우승권으로 평가받지 못했다. 강력한 ‘원투 펀치’ 이로운(SSG)과 김정운(KT)이 버텼던 지난해보다 전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전국의 강호들을 잇달아 제치고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섰다.
손 감독은 “지도자 생활을 오래 했지만 선수 좋다고 우승하는 건 아니다. 잘난 선수들이 많으면 개인플레이를 한다”면서 “고교 야구는 응집력과 승리하고 싶은 마음이 강한 선수들이 많을 때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강조했다.
우승을 위해 학교의 상징인 백호가 새겨진 특별 유니폼을 입고 봉황대기 결승전 승률 100%를 이어간 대구고는 내년에 더욱 강화된 전력으로 2연패에 도전한다. 손 감독은 “청소년 대표팀에 차출된 배찬승(2년)과 결승전 마지막 투수 김민준(1년) 등 좋은 재목들이 많아 2024년에도 충분히 우승을 기대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김지섭 기자 oni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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