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측 우위 방심위라면, 어떤 방송이 제재 대상 될까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여야 구도가 바뀌었다.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지난 8일 취임하며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적 존재’가 된 내외부의 가짜뉴스 척결을 위해 위원회가 가진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라고 밝혔다.
여권 측 위원들이 우위가 된 방심위는 어떤 일들을 하게 될까. 제5기 방심위 회의록을 통해 여권 측 위원들이 ‘객관성’을 문제 삼았던 방송 보도, 프로그램 내용을 톺아봤다. 사례들은 향후 여권 우위 방심위가 어떤 방송 내용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지 예상하는 지표가 된다.
‘통념’ 고려한다고는 하지만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은 방송이 공정성, 공공성을 유지하고 있는지 여부를 심의하는 경우에 적용된다. 위원회는 심의의 기본 원칙으로 방송매체의 자율성, 독립성 등을 존중하고, 규정을 해석·적용할 때 사회 통념을 존중해야 한다고 정한다. 심의 기준은 진실을 왜곡하지 않고, 첨예한 대립 사안을 다룰 때 관련 당사자의 의견을 균형있게 반영하는 ‘공정성’, 사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불명확한 내용을 사실인 것으로 방송하지 않는 ‘객관성’ 등이 있다.
지난 5일 5기 방심위에서 방송소위는 ‘여권 우위’가 된 첫 회의에서 지난해 12월 방송된 <KBS 뉴스9>의 <‘하루 12시간 과로 막자’ 도입 안전운임제…효과는?> 기사에 대해 법정 제재를 전제로 하는 ‘의견 진술’을 받도록 했다. 방심위는 행정지도인 권고 등과 책임자 징계·경고 등이 가능한 법정 제재 조치를 할 수있다. 법정 제재를 받게 되면 방송 재허가·재승인 절차에서 감점 요인이 된다.
해당 기사는 ‘안전운임제’ 효과에 대해 화물연대와 정부의 입장 차가 있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보도 내용 중 ‘안전 운임제’ 효과에 대해 국토부의 의뢰로 작성됐던 연구용역 보고서 내용을 소개하며 ‘교통안전’ 부문에서 일부 개선 효과가 있고, 연구의 한계를 언급하고 있다. 정부 측의 입장도 반영돼 있다. 틀린 사실은 없다.
이날 여권측 방심위원인 허연회 위원, 황성욱 상임위원은 보고서를 인용할 때 ‘취사 선택’을 했기 때문에 ‘객관성’이 문제라고 봤다. 황 위원은 “한 쪽은 왜 정확한 수치를 보도하고, 다른 쪽은 간략하게 보도하는지 모르겠다”라며 “팩트 취사 선택은 동일한 비중을 둬서 시청자가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야권측 김유진 위원은 “인용된 부분이 특정 단체에 유리하다는 주장으로 객관성 위반 제재는 부적절하다”라며 “정부 자료는 정부에 유리한 자료가 많을텐데, 이런 자료를 인용 보도할 때 정부와 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쪽이 정부에서 유리한 인용이라고 민원을 제기하면 모두 제재할 것이냐”라고 물었다.
이날 지난해 12월 19일 방송됐던 문화방송(MBC) <김종배의 시선 집중>은 행정지도인 ‘의견제시’ 조치가 됐다. 진행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대선 득표율 아래로 내려가서 회복이 되지 않고 있지 않습니까. 최근 2~3주 사이에 반등이 있었지만 그래도 30%대 초반이라는 거 아니겠어요. 각종 여론조사를 종합을 해보면”이라고 말한 게 ‘객관적이지 않다’는 이유다.
당시 방송 시점 기준 윤 대통령 지지율은 한국 갤럽 36%, NBS 34%, 리얼미터 41% 수준이었다. 방송일 한 주 전 대통령 지지율은 한국갤럽 33%, 같은달 초 NBS 조사에서는 32% 등이었다. 허연회 위원은 진행자에 대해 “악의적”이라고 평가했다.
과거 회의록도 살펴보니
2023년 제23차 방송심의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지난해 10월 26일 KBS <주진우 라이브>에서 진행자가 “박정희 대통령이 비석에 ‘민족정기’를 쓸 때 정신 정(精)자를 써야 되는데 바를 정(正)자를 썼다. 오타가 났다”라고 언급한 부분에 대해 두 한자 모두 사용한다는 취지의 민원이 제기됐다. 여권 측 위원들은 법정 제재가 필요하다고 봤고, 야권 측 위원들은 ‘문제없음’ 의견을 냈다. 합의가 되지 않으면서 전체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한 뒤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다.
여권 측 김우석 위원은 “온라인 사전을 찾아보니 두번째에 나온다”라며 “의도가 있지 않으면 확인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대통령 서거까지 연결하는 것은 명확한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권 측 위원들은 “대부분 정신 정자를 쓰고 바를 정자를 거의 안쓴다”, “이 정도 발언을 문제 삼아서 제재하는 것은 굉장한 과잉심의”라고 주장했다.
2022년 제10차 방심위 전체회의 회의록을 보면 <JTBC 뉴스룸>의 지난해 3월 25일 방송분 <이준석, 장애인 시위에 “서울시민 아침 볼모로 잡나”> 보도에도 여권 위원들은 ‘객관성’ 위반으로 법정 제재를 전제로 하는 ‘의견 진술’를 냈다. 당시 보도에는 “서울시는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으나, 21개의 지하철 역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았다. 그 사이 매년 장애인들은 지하철 리프트에서 떨어져 숨지고 있다”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대해 황성욱 상임위원은 “왜 굳이 과장, 사실과 동떨어진 내용을 보도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라며 의견진술을 냈고, 윤성옥 위원은 “‘매년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에도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냐”라며 “정확하게 하는 게 좋지만, 추세를 나타내는 말로 ‘매년 장애인이 사망한다’는 표현은 허용된다고 판단한다”라며 맞섰다.
전문가 “과잉 심의” PD들 “위축”
언론법을 전공한 한 교수는 앞선 사례들에 대해 “과잉심의”라며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공정성, 객관성도 매체 특성과 방송 프로그램의 특성을 고려하도록 돼 있고, 법원은 일부 사소한 내용이 다르더라도 진실하지 않다고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경력이 10년 이상인 한 방송사 PD는 “‘중립적, 객관적, 균형 잡힌이라는 말로 마음에 안 드는 보도를 때려잡겠다는 것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라며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자기 검열 심화, 취재 위축은 물론이고 관리자들의 과잉 대응으로 인해 제작자율성 침해가 생길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라고 말했다.
공영방송 사장이 바뀐다면, 이른바 ‘과잉심의’에 대해 법정 대응에 나서는 것에 소극적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20년 이상 PD로 일한 방송계 관계자는 “여권 위원들이 우위를 바탕으로 정치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고 불리한 보도를 탄압하려는 검열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며 “방심위 제재를 받으면 회사 징계로 이어지고, PD 개인의 신분에도 심대한 불이익이 되어 ‘위축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판단을 돕기 위해, 기사 원문과 라디오 방송 유튜브 링크를 첨부합니다. <김종배의 시선집중>은 11분 50초쯤, <주진우라이브>는 58분 40초쯤부터입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619633
https://www.youtube.com/watch?v=FGtPxsCPP88
https://www.youtube.com/watch?v=x7hqgVG7yVg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52501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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