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고통에 관하여'

이은정 2023. 9. 10. 1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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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각자 다르게 감각하는 그 고통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 단체는 "고통은 곧 영혼이자 인간의 정수이고, 고통의 근절은 영혼의 멸절이자 신에 대한 거부"라며 고통을 극복하는 자가 구원에 가까워진다고 설교한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중략)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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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작가가 4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소설
정보라 작가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인간의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각자 다르게 감각하는 그 고통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고통이 사라진 삶은 구원받는 길일까.

'고통에 관하여'는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고통'이란 주제에 관해 탐색하는 소설이다. SF(과학소설) 스릴러란 틀 안에 고통의 실체를 추적하는 작가의 내밀한 해부와 탐구가 담겨있다.

이 소설은 '저주토끼'로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최종 후보에 올랐던 정보라 작가가 '붉은 칼' 이후 4년 만에 펴낸 신작 장편이다. 서늘한 문체로 호러와 환상 문학에 천착했던 작가가 처음 집필한 스릴러란 점에서 '정보라 월드'의 변곡점에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은 통증을 무력화하는 완벽한 진통제가 등장한 미지의 세상이다. 내성 없이 안정적인 진통제를 개발한 제약회사에 폭탄 테러가 일어나고, 그 배후에는 고통만이 구원받는 길이라고 설파하는 종교 단체가 있다. 이 단체는 "고통은 곧 영혼이자 인간의 정수이고, 고통의 근절은 영혼의 멸절이자 신에 대한 거부"라며 고통을 극복하는 자가 구원에 가까워진다고 설교한다.

12년 뒤 이 종교 단체 지도자들이 시신으로 발견되고, 경찰은 수감 중이던 폭탄 테러의 범인을 다시 불러내 살인 사건을 파헤친다.

정보라 신작 '고통에 관하여' 표지

작가는 고통에 대한 깨달음을 여러 인물을 통해 이야기한다.

"그 어떤 환희나 쾌락도 오로지 감각하는 사람 자신만의 것이며 고통과 괴로움도 마찬가지다. (중략)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자신의 신체 안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쁨도, 환희도, 초월도, 아마 구원조차도, 인간이 이해하고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없을 때는 모두 고통이었다."

작가는 2018년 미국 새너제이에서 열린 SF 행사에 참가했을 때 통증과 진통제에 관한 대담을 들은 뒤 이 작품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여기에 사이비종교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탐사보도 프로그램에 대한 평소의 관심이 더해졌다.

미지의 세상에 우리 삶과의 접점을 촘촘히 설계하는 작가 특유의 필력은 이번에도 살아났다.

아동 학대, 가정 폭력, 종교적 세뇌, 동성 결혼 등 인물들이 맞닥뜨린 문제는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작가는 고통을 한마디로 정의하지 않지만, 인간은 고통받는 거친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아야 한다'는 명쾌한 메시지를 전한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의미 없는 고통은 거부해야 한다. 힘들고 괴로운 일이 모두 다 가치 있는 일은 아니다"라면서 괴로운 상황을 탈출할 삶의 선택지가 늘어나 잘 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산책방. 340쪽.

mimi@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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