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 밤새 그걸 깎고 또 깎는 오보에 연주자의 비밀, 목수인가 음악가인가
1986년작 영화 '미션'에 나오는 '가브리엘의 오보에' 들어보신 분 많을 겁니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의 작품이죠. '가브리엘의 오보에' 멜로디에 가사를 붙인 성악곡 '넬라 판타지아'도 유명합니다. 아마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오보에를 위해 쓰인 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곡일 거예요.
[ https://www.youtube.com/watch?v=OA8AAFt0Gjg ]
영화 '미션'은 1750년대 스페인 식민지였던 남미 파라나강 유역에서 원주민 대상으로 포교했던 예수교 선교사들의 이야기인데요, 선교사 가브리엘이 폭포를 거슬러 올라 천신만고 끝에 원주민들이 사는 지역에 도착하고, 원주민들과 처음으로 조우하는 장면에서 가브리엘이 오보에를 꺼내 연주하기 시작합니다. 오보에의 아름다운 멜로디가 정글에 울려 퍼지고, 낯선 이방인에 대한 원주민들의 날 선 경계심은 호기심으로 바뀌어 갑니다. 오보에를 직접 만져본 원주민들은 가브리엘을 마을로 데리고 가죠. 이 장면에서 오보에는 원주민들의 마음을 여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pTsitO4TXF8 ]
[ https://www.youtube.com/watch?v=zfHbN3Betxw ]
리드, 오보에의 '전부'
리드(reed)는 목관악기에 꽂아 소리가 나게 하는 갈대판을 뜻합니다. 오보에는 리드를 불어 생기는 떨림으로 소리를 냅니다. 목관악기 중에서도 플루트는 리드가 없고 취구로 숨을 불어넣어 연주하는 악기이고, 클라리넷과 오보에 바순 등은 리드를 통해 숨을 불어넣어 연주합니다. 이 중 클라리넷은 싱글 리드, 오보에 바순은 겹 리드를 씁니다.
"오보에 윗부분에 리드를 꽂는 구멍이 있어요. 여기에 저희가 직접 만든 리드를 꽂아서 굉장히 작은 틈새로 바람을 불어넣는 거예요. 플루트는 리드를 통하지 않기 때문에 바람이 반 정도는 버려져요. 그런데 오보이스트들은 숨을 들이마시고 요만한 틈새를 통해서 조금씩 조금씩 바람을 불어넣는 거죠. 바람을 컨트롤하는 방법에 미세한 차이가 있죠"
리드를 꽂지 않은 채로 오보에를 불면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작고 가느다란 나무 조각처럼 보이는 리드가 오보에의 알파요 오메가입니다.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함경 씨는 휴가 기간 놀러 갈 때 오보에 본체는 두고 가더라도 리드는 어디든 지니고 다니면서 분다고 했습니다.
오보이스트는 목수? 공예가?
"대패질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소리가 나는 과정까지 한 번에 앉아서 깎기는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과정을 나눠서, 대패질을 해놓은 나무, 작업을 시작한 나무를 따로 모아놓고, 묶어 놓기만 한 나무도 모아놓고, 반 정도 깎은 것도 모아놓고, 완성할 때는 계속 불어 보면서 깎아서 만들죠."
*오보에 리드 만드는 법을 검색하면 여러 영상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를 가져와 봅니다. 30년 경력의 리드 깎기를 1분에 압축했다는 해외 유튜브 채널 OboeSolo의 영상입니다. 또 다른 채널 '달밤의 오보에'는
[ https://www.youtube.com/watch?v=SEx9dFxiUco ]오보에 리드 메이킹 ASMR 영상을 올렸네요. 이밖에 각 공정별 설명, 도구 설명 영상도 많은데, 그만큼 리드 만드는 게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라는 걸 방증합니다.
[ https://www.youtube.com/watch?v=ktabsOMOojI ]
함경 씨는 제작 단계별로 분류된 리드 통을 열어서 보여줬는데, 더 깎아야 할 리드와 깎아놓은 리드가 얼핏 보기엔 무슨 차이가 있는지 구분이 안 되더라고요. 그만큼 공정이 세밀하다는 얘깁니다. 리드 만드는 칼, 도구, 기계도 여러 종류가 나와 있습니다. 마치 목수의 연장처럼 보입니다.
"머리 아프죠. 리드 깎는 건 정말 공예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이걸 직접 제작하는 이유가 있어요. 각자가 원하는 소리도 다르고 입 모양도 다르고 추구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죠. 리드 모양 잡아주는 기구를 '셰이퍼'라고 하는데, 오보이스트들끼리 만나면 이게 대화 테마예요. '넌 무슨 셰이퍼 쓰니?' 하죠."
리드, 밤새 깎고 또 깎는다
"중요한 연주가 있어서 '오늘 이 리드를 써야겠다', 하고 갔는데, 직전 리허설을 할 때 '아, 이 소리가 아닌데', 이럴 때도 있나요?"
"너무 많죠. 연주용 리드로 아껴 놨는데, 막상 당일에 가보니 너무 아닌 거예요. 그래서 결국에는 연습 때 썼던 게 제일 낫네, 하고 그걸로 연주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평소 리드를 다양하게 많이 들고 다니는 편이에요."
재질이 나무인 리드는 특히 온도 습도 등 환경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습니다. 핀란드에선 잘 썼던 리드가 한국에선 안 맞을 수도 있고, 핀란드에서는 안 좋다고 생각했던 리드가 한국에선 또 괜찮을 수도 있다고 해요.
"한국의 여름은 습하잖아요. 습하면 리드가 팽창하고, 에어컨 냉방이 강하면 리드가 붙어요. 미세한 구멍을 통해서 바람을 불어넣는 건데, 이러면 컨트롤이 안 되죠. 그래서 오보이스트들은 리드를 매일 깎아야 돼요. 평생 리드를 깎고 미리미리 준비를 해야 하죠."
"그럼 매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깎으세요?"
"아뇨. 너무 예민한 작업이라 아침에 깎으면 기운이 좀 다운되기도 해서 일단은 연습을 해요. 저는 항상 연습할 수 있는 리드는 만들어 놓는 편이고요, 연습할 때는 저만 듣는 거니까 사실 어떤 리드를 써도 부담감은 없는데, 정말 중요한 연주가 다가오는데 리드가 아무리 깎아도 안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럼 밤새 깎는 거죠."
"그렇게 깎은 리드는 얼마나 오래 쓰나요?"
이토록 예민하고 까다로운 악기, 오보에
오보에족에 속하는 악기로 바로크 연주에 많이 사용된 '오보에 다모레'와 잉글리시 호른 등이 있습니다. 오보에 연주자는 잉글리시 호른도 같이 연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함경 씨는 핀란드 방송교향악단으로 옮기기 전 정단원으로 활동했던 명문 악단 로열 콘세르트허바우에서 제2오보에와 잉글리시 호른을 맡았습니다.
저는 지역에 따라 오보에 리드를 다르게 깎고, 주법도 다르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미국에선 W자로 리드를 깎고, 유럽에서는 U자로 깎습니다. W자 리드를 쓰면 상대적으로 밝은 소리가 나고, U자 리드는 두터운 소리가 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유럽식으로 배우는 경우도, 미국식으로 배우는 경우도 다 있다고 해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김수현 문화전문기자 shkim@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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