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의 어떤 날] 무대 위에서의 그 사람들은 특별하다

한겨레 2023. 9. 10. 13: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양희은의 어떤 날]

이십대 청년이 먼저 읽고 그리다. 김예원

양희은 | 가수

8월 우리 집은 엄마 생신, 내 생일, 막내 조카손자 첫돌까지 치르느라 북적거렸다. 사진이 예쁘게 나온다는 북촌의 한옥에서 첫돌잔치는 했고, 엄마 생신상은 집에서 차렸다. 새벽에 일어나 제법 큰 양푼 가득 식구들이 잘 먹는 잡채를 만들었는데 모처럼 맛나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미역국에 나물과 보리굴비, 불고기로 상을 봤는데 집에서 모이면 제일 편하다. 돌쟁이 아기가 있어 시끄럽게 짖어대는 5살짜리 쵸코는 격리했다. 상차림이 푸짐했고 곳곳에서 온 떡이 무슨 대갓집 잔칫날 같았다. 우리 집 딸 셋은 내년부터 딱 한가지씩만 정해서 넉넉히 만들어오는 걸로 정했다. 엄마의 88살 생신(미수연)부터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잘 차리자고 한 게 벌써 6년째다. 앞으로 몇번이나 더 차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식구들이 각자 집으로 가는 길에 남은 음식은 죄 싸서 들려 보냈다. 그렇게 물난리와 무더위 속 우리를 괴롭히던 8월은 갔다.

9월의 첫 주말 이틀 동안 올림픽체조경기장 대기실에서 보냈다. 나 역시 올림픽공원 안에서 여러번 공연했지만 1만명을 수용하는 넓은 공간에서는 잔잔한 노래보다는 내지르는 사운드가 좋을 듯싶었다. 일산 집에서 청담동 샵, 40~50여분 동안 헤어스타일링과 분장을 마치고 공연장으로 간 뒤 공연까지 3시간 반가량 남은 시간 후배들의 리허설을 즐긴다. 대기실에선 가수마다 발성 연습하는 독특한 음향?을 듣는데, 귀청이 떨어질 정도의 최고 음역 소리를 지르는 사람부터 기타 치며 천천히 목을 푸는 사람까지 각각 특징이 있다.

차라리 자기 공연이면 좀 가라앉아도 다음 곡들을 부르며 기운을 올리면 되는데 큰 공연에서 2~3곡 부르면 삐끗했다간 교정이 안되고 낭패를 보니 엄청나게 집중해야 한다. 변진섭, 이재훈, 조장혁, 김종서 등 반가운 얼굴들이다. 사실 웬만하면 오프닝 순서이길 바란다. 거리가 먼 곳이면 더욱 그렇다. 일찍 마치면 좋으니까…. 방송작가들 말이 피날레 마지막 순서만 고집하는 가수도 있다는데 “아이구, 참 일찍 집에 가서 씻고 쉬는 게 얼마나 좋은데!” 싶다. 대개 마지막은 선배들 순서인데 이번 이틀간 공연에서는 싸이의 다음인 마지막 순서를 맡았다. 그 엄청난 에너지 뿜뿜의 열기가 지나간 뒤 대체 어쩌란 말이냐? 차분함으로 갈 수밖에….

8시 36분이 내 순서. 엔딩크레딧은 9시10분에 올라간다. 주도면밀하게 짜도 막간 얘기가 재미지면 시간은 더 늘어날 수 있다. 긴 기다림의 시간 동안 지치지 않도록 하는 게 비결! 늘어지는 건 안 될 말씀! 고단한 일상을 탈출해 좋아하는 가수를 보려고 먼 길 달려왔고 귀한 시간과 거금을 냈는데 기운 빠진 노래라니 안될 말씀! 느린 단조의 노래라도 내 가슴으로 들어와 새 기운을 북돋워 주길 바란다. 대기실의 지루함을 못 이겨 사람들과 즐겁게 수다 떨며 시간 죽이는 사람도 없다. 분심은 치명적이다. 오롯이 감당해야 할 무대, “지구 어느 한구석 손바닥만 한 내 세상 위에 나 홀로 있네… 처음 바로 그때의 떨리는 가슴 그대로 안고 나 홀로 있네…” 이적이 부른 ‘무대’의 노랫말처럼 혼자 껴안는 짤막한 시간과 공간―이것이 무대다.

성시경은 에스비에스(SBS)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많은 선후배 가수들이 함께 이야기 나눈 기억이 좋아서 이런 공연을 꿈꾸었단다. 코로나 이후 유튜브를 시작했고, 연주팀과 가수가 분할된 화면에서 모여 새롭게 선후배 동료들과 노래했는데, 반응과 응원이 많아 만든 것이 이번 공연 ‘자, 오늘은’이다. 공연 뒤 쫑파티가 좋았다. 월요일 아침 ‘여성시대’ 생방송에 지장 있을까 걱정에도 모처럼 후배들과 같이 하고 싶었다. 한사람도 빠지지 않고 다 참석했고, 밥과 술을 나누었다. 우리 단톡방은 월요일 낮까지 이야기가 만발했다. 간만에 마신 뒤 몸은 좀 힘들었지만 기분 좋고 기억에 남을 쫑이었다며 다들 해장들 잘하라고…. 신나게 마시고 논 지가 얼마 만인지 행복했고 꿈 같았단다. 심지어 다른 곳으로 옮겨 노래로 뒤풀이를 엄청 해대고 헤어졌단다. 목이 쉬었단다. 참! 가수들이란!! 3시간 공연 뒤 뒤풀이로 또 노래라니, 그 기운 어찌할까?

이 동네에서 오래 버틴 사람들에게 말하긴 그렇지만 뭔가 이들에겐 어떤 기운이 있다. 생활인의 모습이야 다 같지만 무대 위에서의 그 사람들은 특별하다. 방송국 출근 뒤 지난 밤 이야길 하니 세상, 그런 라인업이 어디 있냐며 감탄한다. 성시경은 계속 꿈만 같다. 꿈이겠지. 행복한 꿈 꾸었다고…. 에스엔에스(SNS)에 읊조리고 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