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日 장인 정신 계승한 로봇·AI...‘세계 1위’ 내시경 공장 가보니

일본 후쿠시마=허지윤 기자 2023. 9. 10.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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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아이즈 올림푸스 가보니
환자 안전·품질 위해 다품종 소량 생산
물류센터는 로봇이 척척
7일 일본 후쿠시마현 아이즈 와카마츠시에 있는 올림푸스 제조 시설 ‘아이즈 올림푸스' 공장 안에서 직원들이 현미경을 보며 부품 제조·조립 등의 공정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공장 안에서 촬영이 허용된 장소에서 찍었다. /허지윤 기자

지난 7일 일본 후쿠시마현 아이즈 와카마츠시 ‘아이즈 올림푸스’ 공장. ‘촬영과 녹음을 안 하겠다’는 보안 서약서를 쓰고 흰색 마스크와 방진 모자, 작업복을 입고 나서야 세계 내시경 시장 70%를 생산하는 공장 시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복도를 따라 제품을 생산 중인 작업 공간이 길게 이어졌다. 통유리창으로 올림푸스 마크가 새겨진 하늘색 작업복을 입은 직원이 각각의 작업대 앞에서 앉거나 서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손을 움직였다.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진 의료용 내시경과 이를 세척 소독하는 장치 등이 전세계로 뻗어나가는 것이다. 올림푸스는 세계 내시경 시장 점유율 1위를 이끈 원동력으로 ‘사내 일괄생산’을 통한 고품질 유지를 꼽는다.

1970년 설립된 아이즈 올림푸스는 도쿄 돔의 1.4배 수준인 약 2만평 부지에 4층(일부 5층)짜리 A동과 4층(일부 5층) B동 건물로 구성돼 있다. 건물 총 면적 4만9819㎡로, 지붕에 태양광을 설치해 일부 전력은 태양광 발전으로 이용하고 있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 수는 2077명, 직원 평균 연령 36세, 남녀 비율 5대 5다.

◇ 베테랑 기술자들, 제조부터 교육까지

아이즈 올림푸스에서는 의료용 내시경 선단부부터 삽입부, 조작부, 접속부와 같은 주요 부의 가공과 제조, 조립, 최종 검사까지 각 라인별로 나뉘어 유기적으로 작업이 이뤄진다. 기계음을 내며 각종 기기가 24시간 움직이는 전통적인 제조업 생산 공장과 분위기가 달랐다. 연구소 같이 조용했다. 그 이유는 기계가 아닌 사람이, 집중력과 정교함이 요구되는 손작업이 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공장 1층 복도를 따라 들어가자 통유리창으로 한쪽 작업 공간에서 기술자들이 각 작업대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며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보였다. 내시경의 끝(선단부)에 들어가는 2㎜의 매우 얇은 밴딩 부품(유닛)에 작은 링을 하나하나 연결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라 했는데, 기자 육안으로는 이들이 다루는 부품이 너무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

다른 쪽에서는 기술자들이 내시경에 들어가는 렌즈를 연마·가공하는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현미경으로 보면서 엄지 손톱보다 작은 틀(프레임)에 여러 개의 소형 렌즈를 손가락 끝으로 조절해 프레임에 겹겹이 붙이는 미세 조립 작업으로, 렌즈의 간격과 위치, 일정한 손의 압력이 중요하다.

7일 일본 후쿠시마현 아이즈 와카마츠시에 있는 올림푸스 제조 시설 ‘아이즈 올림푸스' 공장 안에서 직원들이 현미경을 보며 부품 제조·조립 등의 공정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은 공장 안에서 촬영이 허용된 장소에서 찍었다. /허지윤 기자

이처럼 기계가 할 수 없는 미세하고 정교한 작업을 숙련된 기술자들이 하나하나 해 내시경을 완전 제조하는 게 올림푸스의 핵심 시스템이다. 숙련된 기술자가 하루에 400개 만드는 유닛(부품)을 갓 들어온 신입 직원은 하루에 3~4개 정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아이즈 올림푸스가 취급하는 내시경 제품 종류는 400종이 넘지만, 각 생산량은 하루에 15대도 안 될 만큼 적다.

제품 생산성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마츠오카 켄지 아이즈 올림푸스 대표(CEO)는 “정교한 기술이 모여 있는 내시경은 크기가 작고 다양한 소재의 여러 부품으로 구성돼 있어 기계 공정이 전문 기술자가 직접 하는 공정의 질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림푸스는 환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고품질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극소량 생산’, ‘사내 일괄 생산’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최첨단 기술의 내시경 시스템이 생산되는 이곳에서도 물건을 의미하는 ‘모노’, 만들기라는 단어인 ‘즈쿠리’를 합친 ‘모노즈쿠리’로 대변되는 일본 특유의 장인정신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마츠오카 대표는 “이곳 기술자들은 대체로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사해 반년은 기초훈련을 받으며, 뒤이어 선배 기술자로부터 트레이닝 교육을 받는다”며 “사실상 3년은 지나야 기술자가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기술자들은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일한다”며 “회사도 신체·정신적 건강 관리를 가장 중시한다”고 말했다.

아이즈 올림푸스에서 제조·생산되는 내시경 시스템 선단부와 조작부. 사진 앞쪽이 내시경 선단부인데, 구부려지는 특수 밴드와 소형 렌즈, 링, 프레임 등 다양한 부품들로 구성돼 있다. /올림푸스

◇ 기술자 작업 관리 시스템·물류시설에도 로봇·AI 도입

아이즈 올림푸스에서는 숙련된 기술자들의 정교한 기술을 전승하고 고품질 생산을 이어가기 위해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시도도 이뤄지고 있었다. 마츠오카 켄지 대표는 “디지털 센서와 위치 측정 안테나, 인공지능(AI) 기술이 적용된 증강현실(AR)현미경 시스템을 활용해 베테랑 기술자들의 노하우를 계승할 수 있는 시스템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를 통해 품질 관리 뿐 아니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기술자들이 현미경을 보면서 손으로 초소형 렌즈를 프레임에 겹겹이 부착하는 작업, 샤프심보다 얇은 핀에 링을 하나하나 끼우는 작업 등은 모두 정교함이 생명인데 숙련된 베테랑의 공정 과정을 촬영해 영상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키는 것이다. 숙련된 기술자의 공정 기술과 노하우를 표준화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이 시스템에 적용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작업자가 부착하는 렌즈의 간격과 각도, 링의 위치, 부품을 다루는 손의 압력 등을 판별해 오차를 방지하고 고품질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로봇 자동화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일본 올림푸스 사가미하라 물류센터. /허지윤 기자

생산기지에서 기술자들의 손을 거쳐 하나하나 완성된 제품은 핵심 공급망인 물류시설로 옮겨진다. 올림푸스의 물류기지도 아마존, 쿠팡 등의 물류창고처럼 로봇시스템을 적용해 자동화를 이뤘다.

올림푸스의 최대 물류시설인 사가미하라 물류센터는 지난 2021년 로봇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8200개 제품 중 약 3000개 제품에 대한 포장과 배송 분류 작업이 자동화됐다. 마츠오카 켄지 아이즈 올림푸스 대표는 “올림푸스는 내시경 시스템 기술 혁신 뿐 아니라 생산성과 부가가치를 보다 높이기 위해 다양한 첨단 기술을 곳곳에서 활용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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