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이슈체크]'웨일스와 비긴 韓-독일 잡은 日' 카타르WC 이후 더욱 벌어지는 '한-일 격차', 철학의 부재가 만든 '비극'

박찬준 2023. 9. 10.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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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박찬준 기자]일본축구가 또 다시 '전차군단'을 잡았다.

일본은 10일(이하 한국시각) 독일 볼프스부르크 폴크스바겐 아레나에서 열린 독일과의 친선경기에서 4대1 대승을 거뒀다. 지난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서 1대2 패배를 당했던 독일은 설욕을 위해 카이 하베르츠(아스널) 세르쥬 그나브리, 요슈아 키미히(이상 바이에른 뮌헨) 일카이 귄도안, 마르크 안드레 데어 슈테겐(이상 FC바르셀로나), 안토니오 뤼디거(레알 마드리드) 등 최정예를 총출동시켰다. 하지만 일본은 100% 전력에 나선 독일을 상대로, 그것도 상대 적진에서 무려 3골차로 압승했다.

전반 11분 만에 이토 준야(랭스)의 선제골로 앞서나간 일본은 전반 19분 독일의 르로이 사네에게 동점골을 얻어맞았다. 하지만 3분 뒤 우에다 아야세(페예노르트)가 다시 리드를 잡는 골을 성공시키며 전반을 2-1로 마친 일본은 후반 막판 연이어 득점에 성공하며, 또 대어를 사냥했다. 후반 45분 역습 상황에서 아사노 다쿠마(보훔)가 쐐기골을 넣었고, 추가시간 다나카 아오(뒤셀도르프)의 헤더 마무리 골까지 터지며 독일을 침몰시켰다.

8일 웨일스를 상대로 졸전 끝에 0대0으로 비긴 한국축구와 대조를 이루는 행보다. 한국은 '해트트릭' 손흥민(토트넘)과 '아시아 유일의 발롱도르 후보'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두 에이스를 필두로 황희찬(울버햄턴) 이재성(마인츠) 조규성(미트윌란) 홍현석(헨트) 등 핵심 유럽파들을 총출동시켰지만, 유효슈팅을 단 1개만 날리는 빈공 끝에, 사실상 1.5진이 나선 '유럽 중위권' 웨일스에 시종 고전했다. 후반 상대의 슈팅이 골대를 맞지 않았다면 졌을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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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카타르월드컵에서 나란히 16강에 올랐던 한-일 축구는 이후 급격히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당시 어려운 조에 배정됐지만, 놀라운 퍼포먼스로 16강에 올랐다. 한국과 일본은 포르투갈, 독일, 스페인 등 세계 최강국들을 잡아내는 이변을 일으켰다. 한-일 축구는 2010년 남아공대회 이후 12년만에 동반 16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은 브라질, 일본은 크로아티아와의 16강전서 패하며 여정을 멈췄지만, 세계의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사실 이전에도 연이은 한-일전 0대3 참패로 이미 무게추는 일본 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베스트 전력은 아직 대등하거나, 한국이 우위에 있다는 평가가 더 많았다. 유럽파 숫자는 일본이 더 많지만, 빅리그에서 핵심으로 뛰는 '알짜'는 한국이 더 많았다. 여기에 최근 김지수(브렌트포드) 이한범(미트윌란) 양현준(셀틱) 등 젊은 자원들의 유럽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미국 CBS스포츠는 자체 선정한 2026년 북중미월드컵 파워랭킹에서 한국을 일본에 한단계 앞선 15위에 올려 놓았다. 이게 세계의 객관적인 시선이었다.

하지만 카타르월드컵 이후 한국과 일본의 행보는 전혀 다른 쪽으로 향하고 있다. 한국이 카타르월드컵 이후 치른 5번의 경기에서 3무2패로 단 1승도 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일본은 3연승 포함, 3승1무1패라는 안정된 성적을 거두고 있다. 양 팀의 간접 비교 포인트도 많다. 한국과 일본은 3월과 6월 같은 상대를 만났는데, 일본의 판정승이었다. 한국이 2대2로 비기고, 일본이 1대2로 패한 콜롬비아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본이 우세했다. 6월 A매치에서는 차이가 더 컸다. 한국이 페루(0대1 패)와 엘살바도르(1대1 무)에 고전하는 동안, 일본은 각각 4대1, 6대0 대승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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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댈 수 있는 핑계와 변명거리가 없다. 이번 유럽원정을 통해 양 팀의 격차는 생각 이상으로 벌어진 것이 확인됐다. 내용을 보면 더욱 그렇다. 일본의 축구는 놀라울 정도다.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 강조하는 강한 압박과 빠른 역습이 세계적 수준의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은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서 '스시타카'로 불린 패싱게임을 내려놓고, 빠른 전환을 강조했다. '선수비 후역습'을 앞세워 독일과 스페인을 잡아낸 일본은 카타르월드컵 후 색채를 더욱 짙게 하고 있다. 2018년부터 지휘봉을 잡은 모리야스 감독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며, 더욱 일관된 팀을 만들고 있다. 이번 독일전에서도 33대67로 볼점유율을 내줬지만, 조직적인 '프레싱'을 통해 상대를 흔들고, 조직적인 역습으로 독일을 무력화시켰다. 홈에서 열린 지난 페루전에서도 점유율 47대53으로 열세였지만, 카운터로 4골이나 만들어냈다. 잘 훈련된 짜임새 있는 빌드업 능력에 직선적인 축구까지 더한 일본은 진일보에 성공하며, 세계 톱 수준에 매우 빠르게 근접하고 있다. '레전드' 혼다 게이스케는 "일본은 다음 레벨에 도달했다"며 흡족해 했다.

반면 한국 축구는 '헛발질'을 거듭하고 있다. '클린스만 효과'다. '후방 빌드업'을 중심으로 한 '능동적인 축구'로 월드컵 16강을 이뤄낸 한국은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 부임 후 그 색채를 잃었다. 기존 컬러를 잃었다면 새로운 색깔을 칠해야 하는데, 지금은 무채색에 가깝다. 결과까지 잡지 못하고 있다. 예견된 참사다. '강한 압박'과 '빠른 역습'이라는 두가지 콘셉트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확실하게 길을 정한 일본은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완성시킬 수 있는 모리야스 감독 연임을 택했다. 그 결과, 일본은 세계 최정상권을 향해 빠르게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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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한국은 '포스트 벤투' 시대를 앞두고 어떤 축구를 할지에 대한 그 어떤 논의도 하지 않았다. 굳이 벤투 감독의 철학을 계승할 필요도 없었다. 지난 4년간 우리와 함께 했던 '벤투식' 축구를 분석한 후, 어떤 것이 한국축구에게 더 좋은 길인지 판단하고, 이를 새로운 철학으로 정립하면 됐다. '안티 축구'를 하겠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이 생략됐다. 대한축구협회 수뇌부에선 '누구'만이 중요했다. 그저 선임이 목적이었으니, 논의도, 절차도 중요치 않았다. 클린스만이라는 '희대의 감독'이 탄생한 뒷배경이다.

클린스만 감독은 예상대로 '무색무취'의 축구를 펼쳐나가고 있다. 카타르월드컵에서 우리가 기적적으로 얻은 발전 가능성은 사라진지 오래다. 더 큰 문제는 나아질 기대감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확실한 컬러로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는 방향성을 상실해버렸다. 한국 축구사에서 '역대급 멤버'를 보유했다는 점에서 더욱 안타까운 결과다. 그 사이 한-일축구의 격차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지고 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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