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 지진 사망 2천명 넘어…맨손으로 폐허 뒤져보지만
극한 가뭄 속 산악지역 고립 상태
8일 밤 11시11분께(현지시각) 규모 6.8의 강한 지진이 아프리카의 모로코 남부 산악 지대를 강타하면서 건조하고 험한 외딴 지역 마을들을 폐허로 뒤바꿔놨다. 9일 밤까지 사망자와 부상자가 각각 2천명을 넘어섰다. 부상자 중 절반 이상이 위독한 상태인데다가 도로 폐쇄 등으로 구조도 쉽지 않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모로코 내무부는 유적 도시 마라케시에서 남서쪽으로 72㎞ 떨어진 산악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9일 자정 즈음까지 적어도 2012명이 숨지고 2059명이 다쳤다고 발표했다. 내무부는 부상자 가운데 1404명은 상태가 위중하다고 밝혔다. 내무부는 진앙에서 가까운 산악 지역 외에 마라케시, 아가디르, 카사블랑카 지역에서도 사상자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진 피해 지역의 이재민이 30만명을 넘을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모로코 남부 아틀라스 산맥의 오우카이메데네 인근 지역에서 8일 밤 11시 11분 규모 6.8의 지진이 발생했으며 진원은 지표면에서 약 26㎞ 아래였다고 발표했다. 또 20분 뒤에는 규모 4.9의 여진도 발생했다고 밝혔다.
지진이 발생한 지역은 외딴 산악 지역인 데다가 대부분의 건물이 내진 설계가 되지 않은 돌이나 벽돌로 지은 것들이어서 피해가 더욱 컸다. 에이피(AP) 통신은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는 오우아르가네 계곡 등에서는 지진 발생 뒤 전기가 끊기고 이동전화망도 마비되면서 지역 전체가 고립됐다고 전했다.
로이터 통신은 마라케시와 산악 지역을 연결하는 계곡에 위치한 안시 지역의 탄스카르트 마을이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지역 중 하나라고 전했다. 가파른 경사면에 지어진 집들 다수가 무너져 내렸고 무너지지 않은 집들도 벽이나 천장이 온전하지 못했다. 이 지역 주민 사이다 보드치츠는 “다친 남편을 옮겨 쉬게 할 집이라고는 없는 상태이며 어제(8일)부터 음식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도움을 줄 사람도 전혀 없다고 호소했다.
마라케시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아스니 마을에서는 집들이 거의 대부분 무너져 내린 탓에 주민들이 밖에서 밤을 지샜다. 이 지역 주민 몬타시르 이트리는 “이웃 주민들이 아직 건물 잔해 아래 깔려 있어서 사람들이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잔해 속을 뒤지고 있다”고 말했다.
아미즈미즈 마을에서는 구조대원들이 무너져 내린 건물 지붕에 올라가 생존자를 찾는 모습도 눈에 띠었다. 구조에 나선 이들 대부분은 별다른 장비도 없이 맨손으로 폐허 속을 뒤지며 한 사람이라도 더 구조하려고 애썼다. 이 마을에 유일하게 남은 상점 앞에는 식료품을 구하려는 주민들이 길게 늘어섰고, 한 병원 앞에는 주검 10여구가 담요에 덮인 채 놓여 있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경찰차와 긴급 구조대, 지진 피해 지역에서 빠져 나가려는 택시 등이 비포장 도로를 가득 메우면서 차량들이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큰 바위들이 도로 곳곳을 막고 있어, 경찰 등이 길을 뚫는 작업을 벌이느라 피해 지역 접근에는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에이피 통신은 이날 지진이 모로코에서 120년 만에 가장 강한 지진이었으며, 피해 규모 면에서는 1960년 아가디르 지역에서 규모 5.8의 강진으로 1만2천여명 이상이 숨진 이후 최대라고 지적했다.
이날의 지진으로 유네스코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마라케시의 옛 시가지 유적들도 피해를 봤다. ‘마라케시의 지붕’으로 불리는 쿠투비아 모스크의 첨탑도 일부 손상됐으나, 정확한 피해 규모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날 지진은 모로코 대부분의 지역과 인근 알제리는 물론 지중해 너머 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도 감지됐다.
모로코 정부는 3일 동안을 애도 기간으로 선포하는 한편 지진 피해 지역에 군병력과 구조대원, 의료진의 긴급 투입을 지시했다.
국제 사회는 신속한 지원을 약속했다. 모로코와 갈등을 겪고 있는 이웃나라 알제리는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구조 작업과 피해 복구를 돕기 위해 영공을 개방한다고 밝혔고, 미국·중국 등 주요 국가들도 지원을 약속했다. 하지만, 모로코 정부는 9일까지 국제 사회에 공식적으로 지원을 요청하지 않았다.
모로코 주재 한국 대사관은 9일 밤까지 한국인의 피해는 보고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박장근 부영사는 이날 한겨레와 전화 통화에서 “(지진 피해 지역과 가까운) 마라케시에는 상시 체류 교민이 10여명 정도로 추정된다”며 “관광 등을 위해 모로코를 방문한 가족들과 전화 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문의 전화도 일부 있었지만 대부분은 밤중이어서 통화가 어려운 경우였다”고 말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베를린/노지원 특파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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