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과 상품의 경계를 넘어서다
(시사저널=심정택 칼럼니스트)
김지희 작가는 안경과 치아 교정기를 낀 소녀 이미지 《실드 스마일(Sealed smile)》 시리즈로 이름을 알렸다. 치아 교정기는 건강뿐 아니라 외모가 경쟁력이 된 시대를 반영한 아이템이며, 중산층 부모들의 자기만족 기제(機制)이기도 하다. 소녀가 쓴 안경(선글라스)은 가면이다. 《오페라의 유령》에서 보듯, 인간이 가면 뒤에 숨는 행위는 결핍에서 나온다. 김지희는 10여 년 전 아프리카 어린이 자선작업에 참여하면서 아프리카 아이들의 슬픈 눈을 맞닥뜨렸다. "아이의 눈엔 이슬이 맺혔다. 그 눈은 무언가를 갈구하고 있었다."
작가에게 '눈=안경=가면'이라는 도식이 동일한 인식의 툴인지를 물어보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안경은 자신을 감추거나 드러내는 장치이며, 표정을 드러내면서도 다른 이미지를 전달한다. 가면이 감추는 툴이라면 안경은 중의적인 의미다." 관람객은 주인공이 쓴 안경을 통해 무언가를 들여다보지만 많은 층 때문에 제한이 있는 게 사실이다. 안경이 가면으로 인식되는 이유다.
인기 걸그룹과도 무대의상 협업
작가는 화려한 표현을 통해 욕망의 퇴행성보다 그 안에 숨어있는 희망을 끄집어냈다고 말한다. 2010년 전시에서 오드아이가 어우러진 화면의 작품을 걸었고, 2013년에는 반지 속에 갇힌 다이아몬드의 형상을 의인화한 《버진 허트(Virgin heart)》 시리즈를 공개했다. 인기 걸그룹과 무대의상 협업도 했다. 2016년에는 홍콩의 뉴월드그룹 대형 쇼핑몰 디파크와 협업해 몰 전체를 작가의 장르 작품과 이미지 콘셉트로 채웠다. 중국의 대형 화장품 회사들과의 협업으로 대만,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중화권 미술시장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2019년부터는 동물 도상을 정면에 배치하고 있다. 유렵의 귀족 문화에서 기원한 개나 고양이가 아니라 인간의 기원이 담긴 '영험한 동물'이다. 작가는 특히 부엉이를 좋아한다. 귀엽고 신비로우면서 때론 그 형태가 달항아리 같은 푸근함을 전하기 때문이다. 날카로운 발톱과 공격성을 무색하게 하는 둥근 몸통의 대비가 매력적이며 조형적으로 가장 관심이 가는 동물이다.
김지희는 지난 6월 작업실(스튜디오)을 서울 강남 한복판인 역삼동의 단독 건물로 이전했다. "가지는 유연하게 뻗어나가되 뿌리는 단단해야 한다"고 작업실 이전의 의미를 설명한다. 고객(해외 미술계 관계자, 갤러리스트 등)과의 접점을 확대하면서 스태프에 참여하는 인재 확보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도 역시 공간과의 관계 해석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1층에 오픈한 라운지 희움은 김지희 작품으로부터 출발한 파인드링크 오마카세(코스) 카페다. 도슨트를 겸하는 바리스타는 고객에게 카드의 작품 이미지를 한 장씩 내놓으며 작품과 음료, 공간에 걸린 트렁크 시리즈에 대해 설명한다. 작품을 맛과 향, 공간으로 담아냈다. 평면 회화 작품은 어떤 공간을 만나느냐에 따라 그 가치 및 평가 기준이 달라진다. 작품과 공간의 다양한 접점 실험을 위해 경관이 수려한 강원도 또는 경남, 제주 지역을 후보지로 두고 미술관과 고급 펜션을 혼합한 리조트형 건축 프로젝트도 현재 추진 중이다.
김지희는 근대(modernism)의 상징으로 바닥에 놓여 있던 여행가방 트렁크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2021년 8월 《벽에 거는 (회화)트렁크》를 처음 발표했다. 김지희의 작품 트렁크는 실제 트렁크가 아니라 캔버스 용도로 이미지화된, 액자(frame) 역할을 하는 트렁크다. 그림은 액자에 끼워지면서 독립적인 지위(status)를 부여받는다. "메시지와 미디엄은 구별되지 않는다"고 했던 백남준의 말(1995년 시사저널, 김훈과의 인터뷰)과도 매치된다.
김지희는 미술품과 상품을 하나의 카테고리, 즉 전체로 인식하고 있다. 김지희는 자신이 만들어내는 이미지들을 콘텐츠 및 자산으로 본다. 어떤 상품을 만나도 다양하게 변용해 적용 가능하다. 유명 상품 브랜드에 작품 이미지 제공을 통해 상품 카테고리, 카테고리의 세부 버전으로 구분해 저작권을 확보했다. 이러한 사업 방식은 작가 및 작품이 알려지는 기회가 됐다.
작품, 시장에 대한 인식 변화 필요
9월6일부터 10일까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국내 최대 미술 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와 올해 두 번째인 프리즈서울 아트페어가 개최됐다. KIAF에도 출품하는 작가에게 아트페어에 대해 물었다. 아트페어의 개념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지금은 아트페어 자체가 브랜드화됐고, 사람들이 모이는 유명 공연 같은 축제로 바뀌었다. 기존 아트페어는 참여 주체인 각 갤러리들이 소장품(컬렉션) 위주로 선보였으나 유명 작가들의 신작과 젊은 작가들의 실험적인 작품들도 등장한다. 새로운 미술 유통 채널이 등장한 것으로 이해한다.
우리 사회는 작가가 '벽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미국의 제프 쿤스나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의 대형 스튜디오가 공장형이라는 데 주목하지 않는다. 여러 업태를 가진 김지희는 법인으로 사업체를 운영한다. 작가는 개인 소득자라는 사회 선입견으로 인해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갈 작가가 작업을 쉬는 경우도 있다.
작업실은 작가의 지휘와 감독하에 스태프가 상주하는 분업 시스템이 정착한 듯 보였다. 국내외의 작품 수요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경쟁력을 갖춘 미술 전문기업으로서의 가능성이 보였다. 김지희 작가의 끊임없는 스토리텔링 생산, 스태프인 우수한 어시스턴트들의 지속적인 확보가 스튜디오 경쟁력의 관건이다.
김지희는 국내시장보다는 해외시장 공략에 주력하고 있다. 작품과 연결점을 찾을 수 있는 지역성을 반영해 현지 관객, 컬렉터들과의 공감과 소통의 폭을 넓히며 작품 주제를 확장하는 중이다. 10월에 마카오 그룹전. 아트타이페이(대만) 참여, 11월에 아트 자카르타(인도네시아), 아부다비 아트페어(아랍에미리트)에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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