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주도 국가사업의 또 다른 이름은 ‘유권자 길들이기 사업’
[최인 기자(=전주)(chin580@naver.com)]
지난 2008년 9월 제4회 세계한국학대회에서 ‘차세대 한국학자 논문상’ 중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한국학 연구자인 일본학자 우다가와 아스카 박사는 “지역 주민이 배제된 정부 주도 개발방식이 새만금 간척사업에서 드러난 문제의 원인”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새만금 간척사업이 지역민들의 지역 문화를 변화시키는지 살펴보기 위해 2008년부터 전북 부안군 계화면에서 머물면서 연구하던 우다가와 아스카 박사는 2010년 2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새만금 간척사업의 경우는 한국의 업다운 방식이 부작용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하면서 “한국의 개발 방식은 업다운 방식이기 때문에 지역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중앙정부의 정책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정확히 짚어냈다.
지난 2006년 3월 환경운동연합 산하 시민환경연구소 '지속가능한새만금(FASS)' 사무국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2103년까지 향후 100년간 예상되는 수산물 손실액이 약 32조 원에 달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2008년 6월 22일 전라북도는 91년 12월부터 시작돼 17년간 진행된 전체 1만4260건의 새만금간척사업 보상작업 가운데 98.9%인 1만4014건(4696억원)에 대한 보상이 이뤄짐에 따라 보상 작업을 마무리했다.
정부주도 국가사업 이유로 '2년간'의 어업 보상만 받고 터전 상실
이 당시 새만금 연안 어민들은 정부 주도의 국가사업이 추진되면서 '약 2년간의 어업 활동'에 불과한 기간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고 바다와 갯벌에 대한 자신들의 권리를 포기한 셈이라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EBS 환경 전문 다큐멘터리 '하나뿐인 지구'는 2005년 2월 고군산군도 어민들의 현실을 통해 새만금사업의 허구성과 대안을 모색한 '희망의 땅, 절망의 바다 새만금을 가다'편을 방송했다. 당시 제작진은 "새만금 지역에 살고 있는 2만여 명의 사람들이 생존 여건이나 직업을 박탈 당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새만금 연안 주민들의 현재를 담았다"고 밝혔다.
우다가와 아스카 박사가 진단한 문제는 새만금 SOC 주요 사업의 예산이 78%가 삭감된 2023년 9월에 또다시 반복되고 있다
한덕수 총리는 지난 8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안호영 의원이 “새만금 예산의 78%를 삭감한 게 정상인가, 비정상인가?”라고 묻자 “올해 전체적으로 예산이 긴축적으로 작성됐다는 것은 의원님이 잘 알 것”이라면서 “5년에서 10년에 한번 정도는 ‘전국적인 프로젝트로서의 새만금 사업을 어떻게 가져갈지’ 검토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런 검토 계획은 잼버리와 상관없이, 제대로 점검해서 국가 프로젝트로서 면모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에 안호영 의원은 “이번 새만금예산 삭감이 잼버리와 관계없다고 했는데, 국토부 보도자료를 보면, 잼버리 사업 이후 새만금 SOC에 대한 문제제기가 있었다”면서 “결국 잼버리가 예산 삭감의 배경이 된다”고 질타했다.
이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8월 2일 전북 군산을 방문해 “새만금 사업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한 총리는 잼버리가 폐막하고 2주 뒤였던 8월 29일 새만금 계획에 대한 빅 픽처 계획을 발표했고 기재부는 새만금 주요 SOC 예산을 78%나 삭감했다.
이에 대해 안호영 의원은 “재량권의 일탈이자 권력 남용”이라면서 “78% 삭감은 누가봐도 납득하기 어렵다. 본질은 잼버리에 책임을 전가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지역 차별이고 권력 남용이자 빅피쳐가 아닌 빅사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속도 내라는 대통령과 예산 깍는 총리
한덕수 총리는 “절대 아니다”고 부정하면서 “모든 계획은 창출되는 수요에 맞춰 적절하게 공급돼야 한다고 본다”며 “재정이 긴박한 상황에서는 국민들도 이해할 것”이라고 거듭 말했다.
대통령과 총리의 말이 불과 2주 사이에 180도 다르게 나타난다. 대통령은 새만금 사업에 속도를 내라고 주문했는데 총리는 빅피쳐를 그리겠다며 새만금 주요 SOC예산을 78%나 삭감하는 것으로 화답한다.
한 총리는 “국가 재정이 긴박한 상황”이라며 “국민들도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지금 대한민국 전라북도에 살고 있는 국민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또 한 사례를 보자.
이에 정 의원은 “다른 지역은 여야가 경쟁하고 있는데 전북에는 민주당 하나밖에 없다"며 "국면전환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식으로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전환이 쉽지 않다”며 전북에서 민주당 독주의 문제를 강하게 지적했다.
말하자면 특정 정당 일색인 지역의 경우 위기가 닥치면 다른 쪽의 협조를 얻어내지 못하는 등 통로 부재에 시달리게 된다는 주장이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은 “새만금의 속도를 내라”고 주문했고 총리는 “국가 재정 형편상 전북도민들도 이해할 것”이라면서 새만금예산을 78%나 삭감했고 내년 총선에서 전북 전주을에 출마를 선언한 정운천 국민의힘 전주을 조직위원장은 그러니까 전북에서도 국민의힘 출신을 국회의원로 선출해서 이럴 때 여야가 균형을 이뤄야 지역과 관련된 국가사업 예산배정에서 불이익을 보지 않는다고 점잖게(?) 충고한 셈이다.
말하자면 정부 주도의 국가사업으로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국민들을 ‘길들이기’하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권자 길들이기는 여야가 따로 없다
이런 행태의 ‘유권자 길들이기’는 지금 국민의힘의 전유물 만은 아니다.
이 대표의 이같은 발언은 다음 해에 치러질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대표는 "가능한 빨리 이번 정기국회에서나 아니면 12월에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법안을 여야 간에 합의해 반드시 통과시키도록 하겠다"고 철석같이 약속했지만 공수표였다.
말 그대로 이 대표의 약속은 그야말로 당시 정부여당에 대한 전북도민들의 나빠진 여론을 무마하면서 다음해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후보로 출마가 예정돼 있는 정읍과 전주지역 후보들을 지원하기 위해 '이뤄질 수 없는 약속'을 남발한 셈이라는 비난을 면하지 못했다.
지역발전을 위한 국가적 사업이 유권자를 길들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된 셈이다.
한병도 민주당전북도당 위원장은 JTV방송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새만금 국제공항도 이달 설계심의를 거쳐 최종 사업자를 선정하려는 직전 단계에서 예산이 89%나 삭감되는 등 난도질 당해 사실상 중단된 상태”라며 “잼버리와 새만금은 관련이 없음에도 연계시켜 '(전북)손 좀 봐줘야지'라고 한다며 권력으로 (새만금) 예산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맹공을 퍼붇기도 했다.
잼버리에 실망해서 새만금 예산 깍았다?
이에 정운천 의원(전주을 조직위원장)은 “윤석열 정부는 지역균형발전과 전북경제 살리기에 진심인 정부”라며 “올 6월에 새만금 투자진흥지구 지정에 이어 7월에는 이차전지 특화단지 선정 등 많은 지원을 해왔는데 잼버리에서 너무 큰 실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잼버리 대회 이후 숱하게 흘러나오는 말 가운데 하나가 “새만금 잼버리대회와 새만금 SOC 예산 삭감은 도대체 어떤 상관관계가 있길래 ‘잼버리에 실망했다고 분풀이 형식으로 새만금 예산을 78%나 삭감해서 다른 지역 예산에 붙여야 하나?’”하는 반문이 제기될 수 밖에 없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이상한 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갑자기 현직 장관이면서 잼버리 공동조직위원장인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자화자찬할 일은 아니지만 잘 마친 걸 인색하게 평가할 건 없지 않겠나. 마무리는 잘 된 것으로 평가한다"고 나선 것이다.
그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부산 엑스포를 유치하면 잼버리를 반면교사로 잘 치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부산엑스포에 공을 들이는 정부의 애착은 한덕수 총리가 지난 8일 안호영 의원의 대정부질의 답변에서도 드러난다.
안 의원이 가덕도 신공항에 내년에 5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책정한 것을 묻자 한 총리는 "2030 부산엑스포에 맞춰서 하려면 지금 그 시기를 놓치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철지난 '한풀이' 삭발투쟁으로는 해답 없어
새만금잼버리가 마냥 실패한 세계대회로 남아 대한민국이 국제대회를 치를 역량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게 된다면 행여라도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는 정부관료들의 속내가 드러난 말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부산엑스포 유치가 갑자기 튀어나온 사안도 아니기 때문에 사전에 유치에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해 새만금잼버리대회를 초반부터 잘 치를 수 는 없었을까?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국가적 책임은 뒤로 한 채 지금은 '남탓'과 '정쟁'으로만 대응하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면서 “(전북 국회의원과 도의원들의)삭발투쟁 등이 과연 전략적인 방법인지 고민해야 한다"며 "단순히 ‘한풀이’로 나가서는 해답이 안 나온다. 문제를 인지하고 대안을 찾아 전략적으로 풀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말은 결국 내년 총선에서는 전북에서도 국민의힘 후보가 당선돼야 여야협치가 잘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로 이어지게 된다.
그 말을 한 정운천의원(국민의힘 비례)은 내년 총선에서 전주을 선거구 출마를 선언했다. 그는 또 2016년에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유일하게 전북에서 당선된 경험도 지니고 있다.
정치권은 국가사업을 ‘선거에서 의석을 확보하는 수단’으로만 보고 있을 뿐이다.
해당 사업이 수십년 동안 방치되고 기본계획이 정권의 입맛에 따라 수시로 변경되고 정권이 바뀌는 대통령선거 때마다 장밋빛 공약으로 한껏 띄워졌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일이 반복되면서 지역민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지만 그 사업은 유권자를 길들이기 위한 수단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30년 지방자치시대에 정부 주도 국가사업이 유권자를 모독하고 지방을 멍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최인 기자(=전주)(chin58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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