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물 제작자 자백에도…이균용 후보자 ‘일부는 아동·청소년음란물 아냐’ 직권 판단

강연주 기자 2023. 9. 10.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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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29일 서울 서초구 소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가 여러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한 피고인이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자백했음에도 ‘특정 영상은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음란물이라 볼 수 없다’며 1심을 깨고 부분 무죄를 선고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피고인이 혐의를 모두 인정한 터라 성착취물 영상에 나오는 피해자가 아동·청소년인지는 항소 이유도, 쟁점도 아니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이 후보자는 피해자가 특정되지 않은 성착취물에 한해 ‘성인도 교복을 입을 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10일 경향신문은 서울고법 제8형사부 재판장이던 이 후보자가 2021년 1월29일 선고한 성착취물 제작자의 A씨의 항소심 판결문을 확보했다. A씨는 총 7명의 아동·청소년에게 다수의 성착취물을 촬영하도록 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5년이 선고됐다. A씨 측은 범행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는 점을 내세워 1심 형량이 과하다며 항소했다.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제작자, 징역 5년→2년6개월 감형, 이유는?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이 후보자는 피고인의 항소 이유를 판단하기에 앞서 피해자 7명이 모두 ‘아동·청소년’에 해당하는지부터 직권으로 따졌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A씨는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4명으로부터 총 107회에 걸쳐 신체의 전부 또는 일부를 노출한 상태로 촬영한 사진이나 자위행위 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을 전송받았다.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4명은 채팅애플리케이션을 통해 A씨와 처음 만나 ‘자신이 고등학생이다’라고 직접 밝히기도 했고, 교복을 입은 사진도 직접 A씨에게 전송했다고 한다. A씨도 이들이 각각 고등학교 2, 3학년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 후보자는 피해자 4명이 아동·청소년이 아닐 수 있다며 이들의 영상을 아동·청소년 이용 성착취물로 판단한 1심을 직권으로 깨고 무죄 판단을 내렸다. 이 후보자는 “성인도 교복을 입고 사진촬영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며 “익명 채팅방에서는 자신의 나이나 학년을 실제와 다르게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이들이 고등학교 2,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고 하더라도 실제 17·18세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도 했다. 피해자 1명에 대해서는 범행일시가 1월인 점을 고려해 ‘정상적으로 진학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도 1월이면 19세가 될 수 있어 아동청소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또 이 후보자는 “이 사건 촬영물에 드러난 촬영대상자들이 다소 어려보이기는 하다”면서도 “촬영대상자들의 외모와 신체발육 상태 등을 사회 평균인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할 때 (중략) 명백하게 아동·청소년으로 인식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결문에 적었다. 이 후보자는 이러한 정황과 피고인이 자백하고 반성하는 점,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영상을 유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일부 피해자에겐 배상금을 지급하고 합의한 점 등을 들어 A씨의 형량을 징역 5년에서 2년6개월로 줄였다.

이 후보자는 판결 경위를 묻는 경향신문의 질의에 “피고인의 자백을 포함해 증거로 인정되는 사실만으로는 촬영대상자들이 ‘아동·청소년’에 해당한다는 점이 증명되지 않았다”며 “오히려 촬영대상자들이 ‘아동·청소년’에 해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의심되는 사정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동·청소년으로 명백하게 인식될 수 있는 사람’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대법원 판례 요건도 충족했다고 보기 어려웠다”며 “해당 사건은 검사도 상고하지 않아 확정됐다”고 해명했다.

법조계에서는 ‘이 후보자가 성착취물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검사 출신 오선희 변호사는 “피고인은 성명불상자 3인을 청소년으로 인지한 상태서 성착취물을 제작하도록 한 고의가 있었다”며 “그럼에도 피해자 신원이 특정되지 않은 점을 기초로 이들이 아동·청소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문제”라고 했다. 이어 “이 후보자가 직권 판단한 부분은 항소심서 검사와 피고인이 다투지도 않았던 부분”이라며 “형사 사건에 엄격한 증명이 요구되는 것은 맞지만 1심의 유죄 판단과 피고인의 자백, (성명불상 피해자들이) 청소년으로 보이는 증거가 있던 상황에도 이를 파기하고 ‘무죄’로 판단한 이 후보자의 판결이 적절해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서혜진 변호사(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도 “대법원에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판단할 때 사회 평균인의 시각에서 명확하게 미성년자임이 인식되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이 사건의 경우 1심과 항소심의 판단의 엇갈린 만큼, 동일 사안을 바라보는 법관의 시각에 차이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잇따른 ‘감형 판결’ 논란…시민단체 “여성인권 퇴행 판결” 질타

이 후보자는 성범죄자에 대한 잇달은 감형 판결로 도마에 오른 상태다. 2020년 서울고법 형사8부 재판장으로 있을 무렵 12세 아동을 세 차례 성폭행하고 가학적인 성행위를 해 기소된 B씨의 형량을 ‘개선, 교화의 여지가 남아있는 20대의 젊은 나이’라는 이유 등으로 징역 10년에서 7년으로 줄였다.

피해자가 피고인에 대한 ‘엄한 처벌’을 원하는데도 피고인의 사정을 고려해 감형한 경우도 있다. 피해자의 뒤를 밟은 C씨가 아파트 공동현관에서 껴안으려 했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다. 장기간 불안감에 시달린 피해자는 C씨에 대한 엄벌을 원했지만, 2020년 9월 당시 서울고법 제8형사부 재판장이던 이 후보자는 피고인이 ‘술에 취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넉넉치 않은 가정환경 속에서 성실하게 회사생활을 해왔다’며 형량을 징역 1년3개월에서 징역 1년3개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줄였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지난 8일 성명을 내고 “이 후보자는 성범죄 사건, 가정폭력 사건 등 다수의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이 심각하게 결여된 판결을 해왔다”며 “윤석열 대통령이 친분관계를 우선시하여 성인지 감수성과 성평등 관점이 결여된 대법원장 후보를 지명한 것에 심각한 우려와 반대 의사를 표한다”고 했다.

참여연대는 지난 6일 논평에서 “(이 후보자가) 과거 성범죄·가정폭력 가해자 등을 감형한 판결들로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다”고 했다.

한국여성의전화·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민우회 등 57개 여성단체도 지난달 30일 성명에서 “과거 재판 과정에서 성차별을 외면하고, 여성폭력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등 여성인권을 퇴행시키는 판결을 해온 이 후보자가 대법원의 수장이 된다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는가”라며 “이 후보자의 대법원장 임명은 대한민국 입법·사법·행정 삼권에서의 성평등이 완전히 후퇴함을 의미한다”고 했다.

강연주 기자 pla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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