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제재 뚫은' 화웨이 쇼크…韓기업 수출통제 유예에 불똥?[워싱턴브리핑]
中관영매체 "中기술의 승리" 선전…美선 수출통제 실패 여부 논쟁
(워싱턴=뉴스1) 김현 특파원 = 미국의 고강도 제재에도 불구하고 화훼이가 첨단 7nm(나노미터·10억분의 1m) 반도체를 탑재한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내놓은 이른바 '화웨이 쇼크'가 미 워싱턴 정가에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화웨이의 최신폰에 SK하이닉스의 D램과 낸드플래시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번 '화웨이 쇼크'가 자칫 한국 기업들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 화웨이, 7나노 반도체 장착한 스마트폰 깜짝 출시…中기술의 승리?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 및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 8월29일 7나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를 장착한 5G(5세대)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를 깜짝 출시하고 지난 3일부터 공식 판매에 들어갔다.
'메이트 60 프로'에 장착된 7나노 반도체칩은 중국의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인 SMIC가 만든 2세대 7나노 공정칩인 '기린 9000s' 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020년 미국의 제재로 AP 조달이 막히면서 4G 휴대전화만 생산해온 화웨이가 5G 스마트폰을 내놓은 것은 전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뚫고 7나노급 반도체 조달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 2019년 중국 정부가 화웨이 통신 장비에 해킹 도구를 설치해 기밀을 빼간다며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에 소프트웨어 및 장비를 판매하는 것을 금지했고, 이후 미국 기술을 사용하는 해외 반도체 기업들까지 화웨이에 반도체 등을 판매하는 것을 제한했다.
미국은 이에 더해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상무부 거래 제한 명단(entity list)에 화웨이와 그 계열사를 올려 수출 규제까지 하고 있다. 7나노 반도체를 생산한 SMIC도 이 명단에 올라 있다.
화웨이와 SMIC가 이 같은 미국의 고강도 제재를 어떻게 뚫었는지는 구체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중국 관영 매체들은 화웨이의 이번 스마트폰 출시를 "자주혁신으로 반도체 자립기반을 마련했다", "미국의 제재가 실패로 돌아갔음을 증명했다"며 '중국 기술의 승리'로 선전하고 있다.
일각에선 화웨이의 '메이트 60 프로'는 당초 9월에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출시시점을 8월 말로 앞당긴 것을 두고 지나 러몬도 미 상무장관의 방중을 겨냥한 게 아니었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러몬도 장관은 지난달 27일부터 3박4일간 중국을 방문했었다.
'더우인' 등 중국 소셜미디어(SNS)에는 러몬도 상무장관을 화훼이 스마트폰 '홍보대사'로 합성한 가짜광고 영상 및 사진 등으로 미국의 규제를 조롱하는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확산하고 있다.
◇ 화웨이 쇼크에 美 대중 수출통제 실패 논란…백악관 "신중히 검토"
화웨이발 쇼크는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 실패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메이트 60 프로와 관련한 논쟁은 중국의 기술 분야를 겨냥한 미국의 제재 노력이 실패했는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단 미 의회에선 더욱 강경한 대중 수출통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공화당 소속 마이크 갤러거 미 하원 미·중 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지난 6일 "(화웨이 최신폰은) 미국의 기술 없이는 생산할 수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SMIC가 상무부의 해외 직접제품 규칙(FDPR)을 위반했을 수 있다"며 "상무부는 화웨이와 SMIC에 대한 모든 기술 수출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소속인 마이클 매콜 미 하원 외교위원장도 "SMIC가 미국의 제재를 위반한 것이 확실해 보인다"며 조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아직까진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5일 브리핑에서 중국이 새로운 칩을 만들기 위해 미국의 반도체 수출제한을 우회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려면 그 성격과 구성에 대한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설리번 보좌관은 지난 7일엔 이번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시간표에 대해 "앞으로 몇 달이 걸리진 않을 것"이라며 "미국은 이 사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파트너들과 협의하며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더 명확하게 파악한 다음 그에 따라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바이든 행정부의 '작은 마당과 높은 울타리' 기조를 언급하면서 "계속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 美상무부, 화웨이 쇼크 조사 착수…SMIC 7나노 공정 구현 방법 초점
이 같은 분위기 속에 미 상무부는 지난 7일 화웨이 최신폰에 들어간 7나노 반도체칩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상무부는 성명에서 "우리는 7나노 칩으로 알려진 것의 특성과 구성에 대해 더 많은 정보를 얻으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상무부는 대중 수출 통제 실패 논란에 대해 "분명히 하자면 수출 통제는 중국에 의해 제기된 국가 안보 위협을 해결하기 위한 미국 정부의 도구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며 "2019년부터 시행된 규제는 화웨이를 무너뜨리고 스스로를 재창조하도록 강요했으며 여기에는 중국 정부가 상당한 비용을 치렀다"고 강조했다.
상무부는 이어 "우리는 변화하는 위협 환경에 기반한 우리의 통제를 평가하고 적절한 시기에 업데이트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미국의 국가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상무부의 조사는 SMIC가 미국의 첨단장비 규제를 뚫고 어떻게 7나노 공정을 구현했느냐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통상 7나노 공정을 위해선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등 첨단 반도체 생산장비를 갖춰야 한다. 현재 미국과 일본, 네덜란드 등이 참여한 대중 반도체 제재는 10나노급 이하 첨단 반도체 생산에 들어가는 장비와 자재의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일각에선 미국의 제재 이전에 중국에 반입된 EUV 장비를 SMIC가 넘겨 받아 7나노 반도체를 생산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있지만, 현재 EUV를 공급하는 네덜란드의 ASML사가 판매한 장비의 일련번호까지 확인하며 추적·관리를 하고 있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로 인해 SMIC가 EUV의 이전 세대 기술인 심자외선(DUV) 장비를 고도화해 7나노 제품을 생산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러나 DUV 장비를 고도화해 생산하는 방식은 불량률이 높은 만큼 대량 생산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중론이다. 화웨이가 내놓은 '메이트 60 프로'의 초도물량은 출시 몇 시간 만에 동이 났을 정도로 소량이었던 것으로 판단되는 것도 이같은 관측과 궤를 같이 한다.
◇ SK하이닉스 메모리 반도체 발견에 韓 충격파…美 제재 가능성에 촉각
화웨이 쇼크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줬다. 특히 '메이트 60 프로'에서 SK하이닉스의 스마트폰용 D램인 'LPDDR5'와 낸드를 사용한 게 발견된 것은 큰 충격파를 던졌다.
반도체 조사업체인 테크인사이트에 따르면, '메이트 60 프로'를 해체해 본 결과 '메이트 60 프로'에는 휴대전화의 두뇌에 해당하는 AP인 7나노 반도체칩을 비롯해 부품의 90%가 중국산으로 채워져 있었다.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칩은 해당 휴대전화에 들어간 예외적인 해외 기업 제품이었다.
이에 SK하이닉스는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규제가 도입된 이후 화웨이와 더 이상 거래를 하지 않고 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 조치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며 경위 파악에 나선 상태다.
화웨이가 어떻게 SK하이닉스 반도체칩을 구입했는지 불분명한 상태다.
일각에선 화웨이가 전면적인 제재 조치가 내려지기 전인 2020년까지 구매한 메모리칩 재고를 활용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그러나 블룸버그가 공개한 이미지에 노출된 제품 연번에 따르면 '메이트 60 프로에 탑재된 메모리는 올해 3월 이후 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로 인해 업계에선 메모리 반도체가 유통되는 과정에서 화웨이 쪽으로 흘러들어갔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번 사안도 미 상무부의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일각에선 자칫 SK하이닉스가 미국 정부로부터 제재를 받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SK하이닉스가 화웨이에 직접 반도체를 공급했을 가능성이 없는 만큼 미국의 제재를 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화웨이에 직접 공급하지 않는 이상, 범용인 메모리 반도체가 여러 유통 과정을 거쳐 중국으로 흘러들어가는 것까지 제조사인 SK하이닉스에 책임을 물을 수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미 상무부도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 美수출통제 유예 연장 앞둔 韓업계, 불똥 튈까 우려
다만, 관련 업계에선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조치의 유예와 관련해 불똥이 튈까 우려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10월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등에 필요한 미국산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하면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에 대해선 해당 규제를 1년간 유예해줬다.
그간 1년 유예 종료시한인 내달 11일이 다가오면서 한·미 양국은 유예 연장 및 방식을 두고 협의를 진행해 왔다.
이번 사태가 터지기 전까진 미국 정부는 유예 연장은 물론 한국 기업들이 요구해 온 '검증된 최종 사용자(VEU)' 방식을 통해 장기적인 해법을 마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VEU 제도는 상무부가 사전에 승인한 기업에 지정된 품목을 수출해도 된다는 일종의 포괄적 허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공장은 이미 VEU 명단에 들어 있어 장비 목록만 추가하면 된다.
이는 한국 기업이 기간 제한 없이 구체적인 장비 품목을 안정적으로 수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번 화웨이 쇼크가 자칫 미국 정부의 유예 조치 결정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시각이 나온다.
미 상무부가 유예 필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지만, 대중 규제 강화를 요구하는 미 정치권의 압박이 거세질 경우 예상치 못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의 또 다른 소식통은 "화웨이 사건과 수출통제 유예 연장은 분명히 별개의 사건인 만큼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이번 사건이 자칫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는 만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gayunlov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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