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권 몰락, 참사 때문? 정부 차원서 '이태원 정체성' 살려야"

차민주 인턴기자 2023. 9. 10.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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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트리피케이션·2020년 이태원발 코로나로 상권 붕괴
이은희 교수 "상인 경쟁력 재고와 정부 환경 조성 동시에 이뤄져야"
이태원역 인근에 자리한 세계문화거리의 전경. 사진=차민주 인턴기자
[서울경제]

“이제 이태원에 잘 가지 않아요. 볼 게 없거든요. 전 클럽을 안 가서···”

지난 7월 13일 이태원역 인근에서 만난 20대 일본 남성의 말이다. 수년 전부터 이태원을 자주 찾아 관광을 즐겼다는 그는 "클럽과 술집 말고는 이태원에서 특별히 즐길거리가 없어 이태원이 더 이상 외국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태원 참사로 생긴 부정적인 이미지도 이태원을 찾지 않게 된 이유 중 하나"라고도 전했다.

지난 3월 정부는 이태원 참사로 인한 상권 붕괴에 초점을 맞춰 각종 대안책을 내놨다. 그러나 상인들은 침체를 거듭하던 상권에 참사가 '마지막 타격'이 됐을 뿐, 이전부터 상권은 꾸준히 무너지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상인 A씨는 "이태원 상권 몰락은 대형 자본의 유입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참사 이전부터 이태원 전체의 상권이 외식업만 발달하고 있었다"며 "세계 문화를 즐기는 거리가 아닌 단순 유흥가가 됐다. 이태원의 특색이 죽어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태원에서 15년째 부동산을 운영하며 상권의 흥망을 지켜본 B씨는 "이태원이 예전 같은 모습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이태원을 '폭탄 터지기 직전'의 상태에 비유한 그는 "이태원 상권 저하는 참사 이전부터 곪아왔던 문제"라며 "참사는 상권 저하의 마침표를 찍었을 뿐"이라고 했다.

‘이태원 드림’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참사 이전부터 몰락하던 상권

이태원 상권의 침체는 2018년부터 시작된 '젠트리피케이션'과 맞닿아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영세 기업의 임차인들이 자신만의 특색 있는 가게를 운영하며 유동 인구를 만들어 내고, 그로 인해 상권이 활성화된 시점에서 대형 자본이 유입되면서 건물주가 임대료를 높게 불러 기존 임차인들이 상업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이에 해당 지역의 특색이 사라지고,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대형 문화·상업시설이 상권의 주를 이루게 된다.

이태원역 뒷골목과 경리단길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쇠락한 지역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과거 이태원은 용산 미군기지와 가까이 있는 탓에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이면서 2000년대까지 낙후된 동네로 남아있었다.

2008년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한 뒤 이태원역 뒷골목을 중심으로 상권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외국인들이 많이 찾으면서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다국적 거리로 발전했다.

이태원역 뒷골목부터 떠오른 용산구 상권은 경리단길·한남동·해방촌까지 뻗어나갔다. 그러나 이태원역 뒷골목과 경리단길의 경우 대형 자본의 유입으로 인해 소상공인의 입지가 줄어들면서 상권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건물주들이 일제히 임대료를 세 배 이상 올리면서 지역의 특색을 지닌 가게들이 하나 둘 문을 닫았고, 이로 인해 방문객의 수가 줄었다. 임대료 상승에 매출 감소가 겹치자 덩달아 인근 가게들도 줄지어 영업을 중단했다.

사진=차민주 인턴기자

상인들 “손 쓸 수 없어”···정부 차원에서 ‘이태원 브랜드’ 살려야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이태원 상권의 붕괴는 2020년 5월 이태원발 코로나 발생 이후 가속화됐다.

B씨는 "그나마 코로나 19 때는 '착한 임대인 사업', '소상공인 대출 지원', '재난지원금' 등 정부의 금전적인 지원으로 상인들이 버틸 수 있었다"며 "이후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며 잠깐 상권이 회복되나 싶었는데 참사가 발생하면서 상권 붕괴가 심화됐다"고 짚었다.

그는 또 "관광객들이 '이태원에 가면 무엇을 봐야 해?'라는 질문에 해줄 말이 없다"면서 "'이태원 관광 특구'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다. 지금의 이태원은 유흥을 즐기는 곳일 뿐 다양한 업종이 살아남기 어려운 공간"이라고 토로했다.

아울러 '최근 공실율이 낮아졌다'는 보도를 두고는 "상인들이 이태원을 벗어나려 해도 높은 권리금을 내고 들어올 다른 상인이 없기 때문에 나가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겨우겨우 버티면서 월세를 내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이와 함께 "상권 침체는 참사 이전부터 상인들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번지고 있었다"며 "정부 차원에서 이태원의 브랜드를 보존하기 위한 정책을 마련해야 근본적으로 해결 가능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각종 펍과 술집이 줄 지어진 이태원의 세계음식거리. 사진=차민주 인턴기자

지역 상인, 단기적인 정책 아닌 ‘이태원의 정체성’을 되찾을 수 있는 정책 원해

현재 이태원 상권회복을 위한 정부 정책은 그동안 쌓여온 현장의 고충을 담지 못한 '땜질식 처방'이라는 것이 상인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 상인은 "이태원 지역 특색을 살릴 대책이 절실하다"라며 "특색이 회복되면 이태원 상권은 덩달아 회복될 것"이라고 했다.

참사에 국한된 단기적인 정책을 넘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몰락한 상권을 근본적으로 부흥시킬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이에 대해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태원 지역의 정체성을 구축할 방안으로 “상인들의 경쟁력 재고와 정부의 환경 조성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지역이 퇴행했다는 건 근본적으로 경쟁력이 사라졌다는 것”이라며 “상인들은 새로운 문화를 유입하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하며, 자생력을 갖고 클럽과 술집보다 눈길을 끌 수 있는 콘텐츠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지원책을 두고는 “현재 정부가 내놓은 상권 회복 정책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며“골목을 깨끗하게 재정비하고 공원을 만드는 등 상인 차원에서 손쓰기 어려운 환경 구축을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 교수는 용산 미군기지 이전으로 인한 이태원의 정체성 변화 또한 상인과 정부가 함께 고민해야할 지점이라고도 했다.

그는 “미군기지가 주는 이국적인 색채로 이태원이 부흥했지만, 이제는 미군기지가 사라져 이태원 일대에서 과거와 같은 재미를 꾀하기가 어려워졌다”며 “어렵더라도 과거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이 거리의 성격을 색다르게 규정할 것인지를 정부와 상인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차민주 인턴기자 mj0101@sedaily.com안유진 인턴기자 youjin1228@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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