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자(鼓子)도 자식 낳는 세상
간혹 '자손이 귀한 집안'이라는 말을 들어봤을 것이다. 대대로 독자인, 자손이 귀한 집안이 있을 수 있다. 현대에는 고환에서 정자를 직접 채취해 체외수정을 하는 시험관아기시술(IVF) 덕에 웬만한 난임은 극복이 가능하지만, 1990년대 이전만 해도 체외수정으로 자손을 보기가 힘들었다. 근대 이전에는 무자식으로 대(代)가 끊길 지경인 집안에서는 양자(養子)를 들여서라도 대를 잇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수대에 걸쳐 독자로 내려오는 집안은 왜 그토록 손(孫)이 귀할까. 아무리 젊고 가임력이 좋은 여성이 시집와도, 처첩을 여러 명 거느려도 왜 대대로 자손 한 명 보기가 힘들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난임의 원인이 남성에게 있어서다. 남성의 생식력에 선천적(유전적) 문제가 있다면 대를 이어 남성 난임(혹은 불임)이 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남성이 염색체 이상(클라인펠터증후군·47XXY)이거나 Y염색체 미세 결실, 유전자 돌연변이에 의한 난임(혹은 불임)이라면 우여곡절 끝에 아들을 낳는다고 해도 난임 요인이 유전된다. 아무리 젊고 건강한 아내를 맞아도 남편이 정자 생산이나 배출(사정)이 힘들거나 정자 수가 적다면 임신하기가 쉽지 않다. 선천적으로 정관이 생기지 않았다면 정자가 배출되기 힘들어 불임 남성이 돼야 했다. 다행스럽게 비뇨기과 통계에 따르면 유전적 요인에 따른 남성 불임은 전체의 3% 미만에 그친다.
남성 난임 대부분 후천적 요인
남성 난임(혹은 불임)은 원인 대부분이 후천적 요인이다. 성호르몬 불균형도 난임의 원인으로 작용해 정자 수와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 항아리손님이라 불리는 볼거리(이하선염)를 앓아도 고환이 망가질 수 있다. 고환염이나 고환 염전(고환이 꼬여 혈류장애를 일으켜 붓고 아픈 질환)을 겪어도 고환 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척수신경 질환으로도 발기나 사정에 장애가 생길 수 있다. 음낭을 심하게 다쳤거나 중증 결핵 후유증으로도 무정자증(폐쇄성)이 될 수 있다. 음낭 안으로 고환이 내려오지 못하고 복강 내에 있을 때 무정자증을 초래할 수 있다.현대사회에서는 생활 습관, 즉 마약이나 살충제, 중금속 같은 독성물질에 노출되거나 흡연, 약물 사용, 알코올 남용, 비만 등에 의해서도 정자 수와 활동성이 떨어질 수 있다. 고환암이나 백혈병으로 화학요법(항암요법)을 받은 경우도 정자 생산에 제동이 걸릴 수 있다.
성병에 노출돼도 남성 난임 혹은 불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경미한 세균성 성병이라고 해서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몇 번 치료약을 먹고 다 나았다고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균 특성상 감염되면 겉으로는 멀쩡해진 것 같아도 멸균(완치)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성병을 장기간 방치하면 고환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무엇보다 성병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부부관계를 통해 배우자에게로 감염돼 급기야 아내의 난임을 유발할 수 있다. 반드시 완치될 때까지 치료(약 복용 등)해야 한다. 오죽하면 프랑스에서 18~25세에게 무료로 콘돔을 지급하고 성병 검사도 무료로 해주겠는가.
고자는 넓은 의미에서는 남성성의 부재를 말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씨(정자)가 정상적으로 만들어지지 않거나 배출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정자가 자궁 경부를 거쳐 자궁 내로 들어가서 자궁 난관 이행부를 통과해 난관(나팔관)으로 들어가 배란이 된 난자를 만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정자의 수가 많아야 할 뿐만 아니라 활동성도 좋아야 한다.
성교는 체력의 문제지만 정자의 힘은 또 다른 영역이다. 질강 내로 사정된 정자가 난관(나팔관) 끝의 난자를 만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출발해야 한다. 정자가 작아서 연료가 별로 들지 않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자는 자궁경부를 거쳐 난관 팽대부까지 가는 게 42.195km를 맨발로 뛰는 마라톤 선수에 비유할 수 있다.
정자의 엔진 및 연료는 유전자 집합체인 머리와 꼬리 중간 부분인 몸체의 미토콘드리아에 들어 있다. 게다가 마지막 난관은 투명대라고 하는 난자의 껍질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 42.195km를 뛰어와 다시 철인경기를 해야 하는 셈이다. 남성의 오르가슴 강도가 높을수록 사정되는 정자의 숫자나 운동성이 좀 더 나아진다는 보고가 있다. 정자의 힘은 사랑의 리비도 강도와 일정 기간의 인내로 더 세어진다.
정자는 남성의 고환에서 70여 일을 들여 완성된다. 완성된 정자는 약 15일간 운동성 발달에 집중한다. 즉 고환에서 나와 부고환, 정관, 요도를 거치면서 운동성이 더욱 예리해진다. 이는 정자가 체외라는 야생으로 나와 난자를 만날 때까지 살아남기 위한 준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조선시대 부부의 합궁을 위해서 100일간 몸과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수양에 돌입한 것은 일리 있는 선택이었다.
결혼 앞둔 남성이라면 '생식 검진' 해야
많은 사람이 궁금해한다. 고환 손상으로 정자가 잘 생산되지 않거나(비폐쇄성 무정자증), 생산되더라도 배출 장애로 정액에 정자가 보이지 않는 무정자증(폐쇄성)인 경우 고환에서 직접 채취한 정자가 생식력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무정자증 중에는 고환에서 정자가 생산되고 있지만 부고환이나 정관 및 요도의 어느 부분이 막혀 정자가 나오지 못할 때 폐쇄성 무정자증인 경우가 상당수다. 사정된 정액 내에서 정자가 보이지 않아 고환의 세정관이나 부고환 내에서 정자를 직접 추출하는 고환조직정자추출술(TESE)을 할 수밖에 없는 경우 IVF에서는 미세수정(ROSI)을 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TESE와 난자 내 정자직접주입술(ICSI)을 통해 건강한 아기가 태어났고, 지금도 태어나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고환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해 정자를 생산하지 못하는 비폐쇄성 무정자증일 경우다. 현대 생식의학에서는 비폐쇄성 무정자증이라고 해도 고환 내에서 정자를 찾을 수 있다. 고환 안에 정자가 없으면 그전 단계 세포인 정세포(Spermatid·아기 정자)를 찾아 미세수정에 도전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세포로 난자와 미세수정을 해서 임신과 출산에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성공률이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결혼을 앞둔 남성이라면 혼전에 '건강검진'을 해야 한다. 일명 '혼전 생식 건강검진'이다. 소변과 혈액 채취 등으로 성병 검사, 유전병 검사, 생식력 테스트(성호르몬, 정자 검사 등)를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신체가 건강함을 증명하고 생식력의 건재를 아내가 될 여성에게 자신 있게 보여줘야 한다. 특히 과거에 성병을 한 번이라도 앓은 적이 있다면 반드시 성병 검사(PCR 검사)를 해야 한다. 적절한 치료를 위해서는 결혼 3~4개월 전 검사를 받아야 한다. 혼전 생식 검사에서 정자희소증이나 무정자증임을 알게 돼도 좌절할 필요 없다.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는 의술을 믿고 배우자와 함께 병원을 방문하면 된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 前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난임전문의 조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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