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쏘나 못 쏘나···경찰관들 연간 실탄 사용 실상은? [경솔한 이야기]
시민불안 고조에···警 "물리력 강조"
저조한 총기 사용 한 해 10건 안 돼
형사처벌 피해도 민사소송 등 부담
저위험총 위력 낮지만 살상 위험 여전
전문가 "공권력 확대 사회적 합의 필요"
서울 신림동과 분당 서현역에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한 후 전국 곳곳에서 이상동기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일상이 공포가 된 시대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달 4일부터 25일까지 발생한 흉기 난동 사건은 315건에 이릅니다. 하루에도 10건 넘게 시민의 생명이 위협받고 있는 셈입니다. 범죄 유형별로 보면 흉기 폭력행위(특수 상해, 폭행, 협박 등)가 163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경범죄처벌법 등이 127건으로 뒤를 이었습니다. 특히 미수와 예비를 포함한 살인이 25건에 달한 것은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줍니다.
시민의 불안감이 극에 달하면서 정부의 범죄대책도 강경책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범인을 제압하기 위한 경찰 장구(범인 검거 등 직무 수행을 위해 휴대하는 장비) 역시 ‘방어’보다 ‘공격’에 더 기울어져 있습니다. 경찰 지휘부의 강력한 물리력 사용 강조에도 대표적인 공격 장구인 38구경 리볼버 권총은 살상력이 워낙 강해 일선 경찰관들이 사용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이에 경찰은 38구경 리볼버 권총 위력의 10분의 1 수준인 저위험 권총을 내년 적극적으로 배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범인 제압을 효과적으로 높일 것이라는 기대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저위험 권총이 도입되면 총기는 ‘던지는 무기’가 아닌 ‘쏘는 무기’로 변신할 수 있을지 경솔한 이야기에서 알아봤습니다.
신림동에 이어 서현역 흉기 난동 등 이상 동기 범죄, 이른바 '묻지마 범죄'가 잇달아 발생하자 윤희근 경찰청장은 지난달 4일 사상 처음으로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했습니다. 윤 청장은 같은 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담화문을 통해 "최근 신림역과 서현역에서 발생한 흉기 난동 범죄로 인해 국민 여러분의 불안이 높아지고 있다. 현 상황은 각종 흉악 범죄로 국민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엄중한 비상 상황"이라며 “총기, 테이저건 등 정당한 경찰 물리력 사용을 주저하지 않고, 국민 안전을 최우선 기준으로 경찰관에 대한 면책규정을 적극 적용해 현장의 법 집행을 뒷받침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경찰 최고 수장의 이같은 발언에도 일선 경찰관들은 여전히 총기 사용을 주저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달 서울 은평구의 한 주택가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입니다. 당시 경찰은 흉기 8개를 소지한 채 난동을 부리던 30대 피의자에게 테이저건을 쏘지 않고 대신 치킨 및 소주를 건네며 그를 설득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데이터를 보면 경찰이 얼마나 총기 사용을 꺼리는지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경찰이 범인 제압을 위해 총기를 사용한 것은 2017년 7건에서 2018년 4건으로 줄어든 뒤 2019년 6건, 2020년 9건을 증가했습니다. 이후 2021년과 지난해 다시 5건으로 줄었습니다. 최근 5년 동안 1년에 10건이 채 안 되는 수치입니다.
시계추를 돌려보면 윤 청장 이전 청장이었던 조현오 청장 역시 12년 전인 2011년 5월 9일 전국 경찰지휘부 화상회의를 열고 적극적인 총기 사용을 지시했었습니다. 당시 서울의 한 파출소에서 술에 취한 남성이 마구 흉기를 휘둘렀고, 경찰의 대응이 안일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10여년 전에도 현재와 비슷한 상황이 있었고, 그때나 지금이나 일선 경찰관들은 총기를 쏘지 않고 던지고 있습니다.
아무리 경찰 최고 수장이 물리력 사용을 강조했다고 해도 총기 사용으로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피의자나 그 가족 및 지인 등으로부터 소송이 들어오면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이 너무 크다는 사실을 현장 경찰관들은 과거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2012년 연 소득 2억 원을 받던 유명 영어 강사 A씨 사건이 유명합니다. 교통법규를 어긴 운전자 A씨는 경찰의 어깨를 붙잡는 등 단속에 불응했고 이에 경찰관은 운전자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렸습니다. A씨는 넘어지며 전치 8주의 상해를 입은 뒤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법원은 2억7000여만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습니다.
손해배상은 대부분 국가가 하는 만큼 해당 경찰관이 내야 할 배상금은 없지만, 소송에 따른 심적 부담감은 결코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총기를 사용할 경우 상부에 경위서 등을 작성해야 해 번거로운 부분이 많다”며 “국가가 배상금을 낸다고 해도 결국 사건 관련 진술 등 부담스러운 게 한 두개가 아니다”라고 토로했습니다.
반면 경찰관의 물리력 사용에 대한 정당방위가 인정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정당방위의 확대와 대처방안' 논문에 따르면 1953년 형법 제정 이후 법원이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는 14건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현장 경찰관의 부담을 줄이고 범인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해 최근 주목 받고 있는 것이 저위험 권총입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저위험 권총 보급 등 관련 예산을 86억 원 편성했습니다. 경찰은 내년 하반기에 저위험 권총 5700여 정을 현장 경찰관들에게 보급할 계획입니다. 경찰청 관계자는 “개인별로 휴대한다는 개념은 아니고 치안 현장 경찰관들이 전체적으로 폭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보급하려는 취지”라며 “내년 하반기에 1차 보급을 시행하고 향후 2~3년에 걸쳐 추가 보급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플라스틱 탄두를 사용하는 저위험 권총은 기존 38구경 리볼버보다 살상력이 현저히 낮아 물리력 사용에 대한 현장 경찰관의 심적 부담을 덜어줄 것으로 기대됩니다. 경찰이 도입할 예정인 소구경화기 제조업체 SNT모티브의 저위험 권총 ‘STRV9’의 위력은 38J에 불과해 38구경 리볼버(360~380J)의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 이는 탄환이 성인 남성 기준 허벅지의 5~10cm 사이에 박히는 수준으로 대동맥과 뼈에 손상을 가할 수 없는 관통력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38구경 리볼버보다 살상력이 약할뿐이지 저위험 권총 역시 사람의 머리나 급소에 맞을 경우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력이 있는 치명적인 무기입니다. 충분히 사상자가 나올 수 있는 만큼 현장 경찰관의 부담이 완전히 사라지긴 어려울 것입니다.
실제 해양경찰은 지난 2012년 비살상용으로 제작된 미국산 고무총에 맞아 중국선원이 1명이 사망하면서 과잉진압이라는 거센 비판을 받은 바 있습니다. 당시 해경의 고무탄 발사 매뉴얼에는 불법 조업 어선에 대한 단속 과정에서 흉기 등을 들고 중국선원이 극렬히 저항 시 이를 제압하기 위해 가슴 이하 신체부위에 쏠 수 있도록 규정돼 있었지만, 논란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정치권과 경찰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면책특권 확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경찰은 범죄 현장에서 직무를 수행하다 일반 시민 등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으면 형사책임을 감면받을 수 있습니다. 국회는 지난해 1월 11일 본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경찰관직무집행법(경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형사책임 감면 상황은 △살인과 폭행, 강간 등 강력범죄나 △가정폭력 △아동학대가 행해지려고 하거나 행해지고 있어 타인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위해 발생의 우려가 명백하고 긴급한 상황 등입니다.
경직법에도 흉악범죄를 막기 위해 고의중과실 관련 조항 삭제 등 경찰이 총기사용을 주저하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9일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과 국가배상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 개정안에는 집무집행 관련 형의 감면 규정 적용 범죄에 흉기를 소지한 특수공무집행 방해죄와 특수 협박 범죄를 추가했습니다. 또 현행 면책 규정과 관련해 경찰관에게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는 때 정상을 참작한다는 내용을 삭제해 경찰의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면책특권이 확대되도 총기사용으로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법적 처벌은 받지 않겠지만 현장 경찰관은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사회적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총기 사용에 대해 거부감이 큰 국내 정서상 실탄 사격은 국민의 인권보호라는 가치와 충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지난달 5일 경기도 의정부에서 경찰이 10대 남성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과잉진압 논란이 발생한 사례가 이 같은 현실을 잘 보여줍니다.
경찰학을 전공한 한 교수는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참사 등으로 국민이 경찰을 불신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경찰의 총기사용 강조는 또 다시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한 경찰의 공권력 사용 범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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