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와 진짜 미소 구분 쉽지만… 미소의 효과는 “가짜라도 괜찮아”[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최고야 기자 2023. 9. 1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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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의 힘[1]
마음(心)속 깊은(深) 것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살면서 ‘도대체 이건 왜 이러지?’ ‘왜 마음이 마음대로 안 될까?’ 하고 생겨난 궁금증들을 메일(best@donga.com)이나 댓글로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해 보겠습니다.
가짜 미소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릴 때 나오는 미소다. 때로는 가짜 미소도 진짜로 웃을 때만큼은 아니더라도 비슷한 심리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의 한 장면. tvN 화면 캡처
2020년 방영한 tvN드라마 ‘사이코지만 괜찮아’에서 동생 강태(김수현)는 상대방의 감정을 잘 파악하지 못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형 상태(오정세)에게 가짜 미소를 자주 지어 보인다. 아무리 괴롭더라도 행복한 표정을 지어 겁 많은 형을 안심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형 상태는 “가짜야, 가짜!”라며 동생의 표정을 대번에 알아차린다. 동생 강태가 눈은 웃지 않고, 입만 억지로 웃기 때문이다. 강태의 친구도 그에게 “조커 닮았다”며 놀린다.

남들도 한눈에 눈치채는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뭐하나 싶겠지만, 실제로는 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비록 가짜 미소라 할지라도 안면근육을 억지로 웃게 만들면 뇌에서는 실제로 기분이 좋은 것처럼 인식하기 때문이다. 기왕 이 기사를 읽는 김에 입꼬리를 올리고 읽어보면 어떨까? 무표정한 얼굴로 기사를 읽을 때보다 더 재미있고 유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눈이 웃는 ‘뒤센 미소’가 진짜 미소

눈과 입 주변 근육이 대칭을 이뤄 동시에 움직이는 미소가 진짜 미소다. Pixabay(ⓒstokpic)
눈과 입이 동시에 웃는 진짜 미소를 일컬어 ‘뒤센(Duchenne) 미소’라고 한다. 웃을 때 안면 근육이 움직이는 원리를 처음 밝혀낸 19세기 프랑스 신경학자 기욤 뒤센 드 볼로뉴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진짜로 웃을 땐 눈 주변의 눈둘레근(안륜근)이라는 근육이 움직여 눈가에 주름이 지고 입꼬리도 함께 올라간다. 눈둘레근은 인위적인 조절이 힘들어 진짜로 기쁘고, 행복할 때 움직인다.
인위적인 미소를 띨 때는 눈가 근육은 움직이지 않고, 입 주변 근육만 움직인다. 미국 드라마 ‘팬 암(PAN AM)’의 포스터. IMDb
그래서 가짜 미소를 지으면 눈둘레근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 우리가 일명 ‘비즈니스 미소’나 ‘자본주의 미소’라고 칭하는 것들이다. 감정에서 우러난 미소가 아니기 때문에 어색한 티가 난다. 미국의 팬 아메리카 항공 승무원들이 인위적으로 웃어 보이는 표정에서 따와 ‘팬암(Pan Am) 미소’라고도 한다. 그래서 기욤 뒤센 드 볼로뉴는 그의 저서에서 “가짜 미소는 우리 의지에 복종해서 나타나지만, 진짜 미소는 영혼의 달콤한 감정에 의해서만 나타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가짜로 웃으면 재미없어도 “재밌다” 느껴

당연히 진짜 미소를 지을 일이 많으면 좋겠지만, 살다 보면 그렇지 않은 순간이 더 많다. 그래서 연구자들은 그다지 즐겁지 않은 상황에서 인위적인 미소를 지었을 때도 실제 웃는 것만큼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많은 연구를 진행했다.

관련 연구 가운데 고전적 연구로 꼽히는 ‘미소를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조건’이라는 심리학 연구에서는 억지 미소의 효과성에 대해 실험했다. 사람들에게 연필을 물고 웃는 표정을 짓게 하고 심오한 내용의 만화를 보게 했더니, 억지로 웃게 만든 이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만화 내용을 더 “재밌다”고 평가했다. (서두에서 미소를 짓고 기사를 읽길 권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웃으며 책을 읽으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더 재미있게 느껴진다. 사진 속 어린이가 집어든 책의 제목처럼 ‘웃으면 행복이 와요’라는 말은 삶의 여러 방면에서 효과가 있을 수 있다. 동아일보 DB
가짜로 표정만 지은 것뿐인데 왜 만화가 더 재밌다고 느껴진 걸까. 표정과 감정 연구의 대가로 꼽히는 폴 에크먼 미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가짜 미소를 지을 때도 진짜 미소를 지을 때와 뇌 반응이 일부 비슷하게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진짜 웃을 때와 모든 효과가 똑같진 않지만, 가짜로 웃어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다. 웃는 표정을 지으면, 뇌에서는 과거에 웃으면서 경험했던 긍정적 감정을 지금도 느끼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웃는 표정을 짓는 것만으로도 진짜 즐거웠을 때 느꼈던 신체적 반응이 따라오게 된다.

“웃으며 참으세요” 스트레스 진통제 효과도

이런 연구들은 최근까지 지속돼 오고 있는데,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활용해 봄 직한 실험이 있어 소개한다. 연구 제목은 ‘웃으며 참아보세요’다. 미 캔자스대 심리학과 연구진은 대학생 170명을 모집해 세 그룹으로 나누고, 아래와 같이 각각 세 가지 방법으로 나무젓가락을 문 상태로 웃어 보이도록 했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무표정 △살짝 웃은 표정 △상당히 웃은 표정이다. 젓가락을 문 상태에 따라 안면 근육을 사용하는 강도가 조금씩 다르다.

실험 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누고, 젓가락을 물려 각각 왼쪽부터 무표정, 살짝만 웃는 표정, 상당히 웃는 표정을 짓게 했다. Psychological Science
그리고 이들을 스트레스 상황에 몰아넣었다. 어렵고 집요한 과제를 시키면서 달성 불가능한 높은 목표 점수를 채우게 했다. 그런 다음 손을 얼음물에 1분 동안 담그고 참으라고 했다. 동시에 위와 같은 표정을 계속 유지하도록 했다. 그러는 동안 스트레스로 인한 심박수 변화를 측정하고, 얼마나 스트레스받았다고 느끼는지 등에 답하도록 했다.

그 결과 활짝 웃는 표정을 지은 사람일수록(사진에서 세 번째) 스트레스로 인한 심박수 증가가 심하지 않았고, 원래 수치로 회복되는 속도도 빨랐다. 즉, 무표정으로 고통을 견딘 사람들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을 뿐 아니라 쉽게 회복됐다. 연구진은 “가짜 미소는 주사를 맞는 것과 같은 짧고 고통스러운 스트레스 종류를 견디는데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웃으며 운동하면 덜 지쳐

사실 힘들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억지로라도 미소를 띠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런데 달리기 같은 격렬한 운동을 할 때 간간이 미소를 지으면 힘이 덜 든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운동하면서 힘들다고 오만상을 찡그리기보다는 미소를 지으면 덜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영국 얼스터대 심리연구소의 노엘 브릭 박사 연구팀은 웃으면서 달리기를 해봤더니 ‘운동의 경제성이 높아졌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경제성이 높아진다는 것은 같은 거리를 달리더라도 신체적, 심리적 에너지가 적게 들었다는 얘기다. 미소를 지을 때 신체적으로는 덜 헉헉거리고, 심리적으로는 덜 고통스럽게 느낀다.

힘든 운동을 할 땐 당연히 얼굴에 고통스러운 표정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때 힘들더라도 미소를 지어 표정을 바꾸면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동아일보 DB
실험을 위해 하프 마라톤 경기에 한 번이라도 참여해본 경력이 있는 아마추어 수준의 참가자 24명이 자원했다. 이들에게 각각 6분간 달리면서 △미소 짓기 △찡그리기 △손과 상체 이완하기 △달리기에만 집중하기 등 4가지를 시행하도록 했다. 웃을 때는 뒤센 미소처럼 눈과 입을 최대한 웃어 진짜 같은 미소를 지어 달라고 요청했다. 반대로 찡그린 표정을 하고 달릴 때는 최대한 힘든 표정을 지어달라고 했다.

그 결과 참가자 58.3%는 4가지 조건 가운데 미소 지으며 뛰는 동안 가장 적은 이산화탄소를 내뿜었고, 호흡 빈도도 낮았다. 쉽게 말해 덜 헉헉거렸다는 의미다. 반면 찡그리고 뛸 때는 달리기에 쏟는 에너지와 노력이 더 많이 들어갔다고 여겼다. 주관적으로 느낀 고통 수준이 높았다는 의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참가자의 70%가 미소를 지으며 뛰는 동안 가족과 보낸 시간 등 실제로 즐거웠던 일이 떠올랐다고 했다. 실제로 웃었던 과거 기억이나 생각이 떠오르면서 긍정적 효과로 이어진 것이다. 반면에 찡그린 사람들은 정치적 사건 같은 불쾌한 이슈에 대해 생각하거나 달리기에서 오는 고통에 집중했기 때문에 더 힘들게 느껴졌다고 했다.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지효가 운동 중에 활짝 웃어 보이는 모습. MBC 유튜브 채널 화면 캡처
여기서 더 생각해 볼 점은 미소를 지으면 몸에서 긍정적 반응이 나타났듯, 얼굴을 찡그리면 부정적 반응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찡그린 얼굴은 지금 겪고 있는 고통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불편한 생각을 하게 만들어 없던 불쾌한 감정도 유발할 수 있다. 현실에서 그다지 웃을 일이 많지 않아도 한 번쯤은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올려보는 마음의 여유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다음 주에는 미소의 힘(2)에서 ‘진짜 미소’에 대해 알아볼 예정입니다. 아무리 시시껄렁한 일이라도 잠깐이라도 웃을 수 있다면 △집중력이 높아지고 △면역력이 생기며 △창의력까지 생길 수 있다고 합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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