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고물가·고성장…뉴 노멀 시대의 경제 원리 [머니인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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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말 미국 중앙은행(Fed)은 기준금리를 22년 만에 최고 수준인 5.25~5.50% 인상했다. 2022년 3월부터 약 1년 4개월 동안 5.25%포인트를 올리는 강력한 통화 긴축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와 노동 시장은 견조하다. 미국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는 2023년 봄을 저점으로 오히려 반등하고 있고 제롬 파월 Fed 의장은 7월 말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우리는 더 이상 경기 침체를 예상하지 않는다”며 그동안의 경기 침체 전망을 철회했다.
예상했던 Fed의 기준금리 인하 전환 시점이 늦춰지고 그 폭도 점점 좁아지면서 미국과 한국의 국채 10년 금리도 8월 22일 현재 각각 4.32%, 3.98%까지 반등하며 5월 저점 대비 각각 1.00%포인트, 0.71%포인트나 급등했다. 미국 국채 10년 금리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고치로 올라섰다. 2023년 들어 금리 하락을 예상해 장기 국채를 매수한 투자자들은 미국 국채가 원·달러 환율 상승에 따른 환차익이 어느 정도 손실을 상쇄했겠지만 한국 국채 투자자들은 상당 부분 평가 손실에 진입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Higher for longer
Fed의 통화 긴축이 꽤 높은 강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전 세계 많은 연구 기관들이 전망했던 글로벌 경기 침체의 조짐은 여전히 찾아보기 어렵다. 미국 경제에서 통화 긴축 효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첫째, 고용 시장이 탄탄하다. 부채가 많지 않은 고령자들이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유행) 기간 동안 자산 가격 상승을 경험하면서 은퇴를 결심했고 이민자의 유입이 많지 않아 저임금·저숙련 일손이 계속 부족하다. 또한 팬데믹이 시대의 전환을 가속하면서 기술 기업들의 고숙련 노동자 수요가 급증했지만 공급이 그에 미치지 못했던 점도 고용 시장을 탄탄하게 만든 이유다.
둘째, 미국 가계는 변동 금리보다 장기 고정 금리 모기지의 비율이 높다. 미국 가계 대출의 70%를 차지하는 모기지(주택 담보 대출)가 대부분 장기 고정 금리여서 기준금리가 인상되더라도 가계의 모기지 원리금 상환 부담이 높아지지 않는다는 점 역시 경제 전반에 통화 긴축 효과가 즉각 반영되지 않도록 만드는 원인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더 중요한 것은 팬데믹 기간 동안 출범한 바이든 정부의 대외 정책 변화, 팬데믹 기간 동안 나타난 기술 변화가 중립 금리 수준을 높였을 가능성이다. ‘중립 금리’는 경제를 뜨겁게도, 차갑게도 하지 않는 적절한 기준금리 수준을 의미한다. 만약 강력한 통화 긴축의 영향으로 현재 기준금리가 중립 금리보다 높아졌다면 향후 경제는 위축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하지만 중립 금리 자체가 한 단계 더 높아졌다면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이 충분히 긴축적이지 않을 수 있다. Fed의 강도 높은 통화 긴축에도 불구하고 경제가 잠재 성장률을 웃도는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은 현재 기준금리가 매우 긴축적이지는 않다는 의미라고 평가될 수 있다. 따라서 적정한 중립 금리 수준을 추정하는 것은 중앙은행의 통화 정책 강도를 결정짓는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참고로 중립 금리는 2000년대 이후 꾸준하게 낮아졌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세계대전 이후 출생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하면서 소비보다 저축을 늘렸고 아시아의 제조업 중심 수출국과 중동의 원유 수출국들은 경상 수지 흑자가 계속되면서 저축이 쌓였다. 소비나 투자를 위한 ‘자금 수요’보다 과잉 저축에 의한 ‘자금 공급’이 많아지면서 중립 금리 수준이 낮아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였다.
하지만 팬데믹을 전후해 2000년대 이후 꾸준히 낮아지던 중립 금리를 상승 반전시키는 요인들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기준금리를 추가로 올리거나 높은 기준금리를 오랜 기간 유지해야 하는 근거로 제시될 것이다.
첫째, 미국 정부가 전 세계 공급망에서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전략을 채택하면서 신규 투자가 증가했다. 인도와 베트남은 중국을 대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미국 정부는 미국 내 투자를 늘리기 위해 투자 지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근 진행되는 투자는 대체로 ‘수요가 강해서, 또는 수요가 강해질 것’라는 경기 사이클 측면에서의 전망을 바탕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팬데믹 기간 동안 경험한 공급망 불안이 미·중 디커플링과 결합되면서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투자 결정일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친환경 산업의 주도권을 쥐려는 기업의 의지와 미국 정부의 지원이 더해지고 있는 것 역시 투자가 늘고 있는 이유다. 신규 투자가 늘어나면서 자금 수요가 증가하게 됐는데 이는 중립 금리를 높이는 요소다. 또한 소비를 위축시키려는 통화 긴축의 효과가 투자를 촉진하는 재정 정책으로 상쇄되는 모습도 확인되고 있다. 즉 소비는 정점에서 느리게 내려오고 있는 반면 오히려 민간 투자는 반등하고 있다. 채권 금리와 달러 가치를 상승시키는 요인이다.
둘째, 생산성이 높아졌거나 높아지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변화들이 나타났다. 팬데믹 기간 동안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멀리 있는 사람과 만날 수 있는 화상 회의 시스템이 낮은 가격에 큰 거부감 없이 폭넓게 보급됐다. 더 많은 사람을 낮은 비용에 만날 수 있는 기술 변화로 생산성이 향상됐다. 재택근무나 혼합 근무가 확산되면서 협업 툴 사용을 통한 생산성 향상도 나타났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하면서 생산성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경제 성장세가 강해지면서 중립 금리가 높아지는 영향이 있다.
셋째, 팬데믹 이후 각국 정부의 재정 적자 확대로 국채 발행 등 자본 시장을 통한 자금 수요가 증가했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에 따르면 미국의 재정 적자는 2023년 국내총생산(GDP)의 5.8%에서 2053년 GDP의 10.0%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자 비용을 제외한 기초 수지 적자는 2023년과 2053년 모두 GDP의 3.3%로 동일하지만 총 재정 수지 적자는 이자 비용 증가 때문에 급증한다는 추정이다. 즉 이자를 갚기 위한 국채 발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의미다. 기초 수지 적자 역시 인구 고령화와 의료비 등 사회 보장 지출이 대폭 증가하면서 쉽게 줄어들지 못하는 구조다.
과거에는 경기가 나쁘면 자금 수요가 줄기 때문에 금리가 하락했다. 하지만 이 경로가 달라졌다. 지금은 민간의 자금 수요가 줄어도 정부가 빌려야 하는 돈의 규모가 이를 압도한다. 경기가 나빠져도 금리가 상승할 수 있다는 얘기다. 지금 정부가 하고자 하는 것은 에너지 전환, 공장 설비 등 인프라 투자다. 과거에 비해 엄청난 돈이 필요한 구조다. 정부는 더 빌려야 하는데 중앙은행은 양적 긴축(QT)을 하고 있다. 환헤지 후 미국 국채를 매수하던 일본 등의 매수 자금도 이제는 역마진이라 멈췄다. 노후를 위해 저축하던 사람들이 은퇴하면서 저축을 소비하기 시작했다.
경제가 나빠지면 오히려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국채를 더 발행해야 한다. 경제가 나빠지면서 생기는 민간의 자금 수요 감소를 정부의 자금 수요 증가가 압도할 것이다. 결국 정부 재정이 적자를 내고 있는데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 주지 않고 오히려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지금 같은 구조는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경제가 나빠져도 금리가 상승한다면 장기 국채와 주식은 같은 자산군인 셈이다. 자산 배분 효과가 없다.
2020년대 뉴 노멀의 장기화
지금까지 살펴본 것과 같이 만약 중립 금리가 더 높아졌다면 물가를 잡기 위해 기준금리는 지금보다 더 높아야 한다. 미국의 대중 압박 전략이 미국이 집권당에 상관없이 장기화되면서 신규 투자는 가속되고 AI 기술 적용에 의한 생산성 향상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높은 재정 적자를 감당하기 위한 정부의 국채 발행 증가 등 앞으로 중립 금리를 더 높이는 요인들이 많아 보인다.
통화 긴축 효과가 잘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향후 Fed는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추가 인상하는 데 주력하기보다는 높은 기준금리를 오랜 기간 이어 가는 것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Higher for longer).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더 올리면 금융 불안이 높아지고 경제의 특정 부문들이 흔들릴 수 있는데 팬데믹 대응을 위해 크게 늘려 놓은 대차대조표를 충분히 줄이지 않았고 재정의 여력이 없는 상황에서 또 다른 위기가 오면 대처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2024년 말 대선을 앞두고 고용 시장을 흔들 정도의 통화 긴축도 매우 부담스러울 것이다.
따라서 추가 긴축이 필요하지만 Fed가 주저하는 과정에서 통화 긴축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이전보다 높은 성장과 물가, 금리 환경이 펼쳐지는 ‘2020년대 뉴노멀(2020s new normal)’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 투자자들은 장기 금리 하락에 대한 자본 차익에 조바심을 내기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최고 수준까지 높아진 이자 수익, 즉 채권 투자의 본질에 집중하기를 권고한다. 차본 차익의 기회는 또다시 오기 마련이다.
신동준 KB증권 WM투자전략본부장·숭실대 금융경제학과 겸임교수·경제학박사
(이 글은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으로 KB증권의 공식적인 의견과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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