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보다 다이어트”…LVMH 밀어낸 비만 치료제 기업
[비즈니스 포커스]
다이어트 약이 세계 1위의 명품을 밀어냈다. 최근 유럽 증시에서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명품 제국’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를 제치고 유럽 증시 시가 총액 1위에 올랐다.
노보노디스크 시가 총액은 9월 4일(현지 시간) 4280억 달러(약 566조5864억원)를 기록해 종가 기준 처음으로 유럽 증시 시총 1위를 차지했다. 2년 반 동안 유럽 시총 1위 자리를 지켜 온 LVMH는 같은 날 시총 4160억 달러(약 554조6722억원)를 기록하며 2위로 내려왔다. 노보노디스크 주가가 올해 40% 급등할 때 LVMH 주가는 같은 기간 12% 상승하는 데 그쳤다.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비만 치료제 ‘위고비’의 힘이다.
위고비로 움직인 것은 증시뿐만이 아니다. 노보노디스크의 성장으로 덴마크 국내총생산(GDP) 성장률과 금리까지 변했다. 노보노디스크가 어떤 회사기에, 위고비는 어떤 약이기에 한 나라의 경제를 들썩이게 할까.
미국 다이어트에 덴마크 경제가 출렁였다고?
‘미국인들의 다이어트 강박이 덴마크 경제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8월 17일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다. 노보노디스크 주가가 급등하자 시총이 덴마크의 GDP 4060억 달러마저 넘어섰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상장 기업의 시총과 한 나라의 GDP를 동일 선상에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이 비교를 통해 노보노디스크가 레고나 칼스버그 같은 기업을 제치고 북유럽 경제를 뒤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전했다.
노보노디스크가 급성장하자 덴마크의 GDP 성장률도 움직였다. 덴마크 정부는 8월 31일 제약 산업의 성장을 이유로 연간 GDP 성장률 전망치를 0.6%에서 1.2%로 상향 조정했다.
노보노디스크는 덴마크 경제를 떠받드는 대들보다. 올 1분기 덴마크 경제성장률 1.9%에서 노보노디스크가 차지하는 비율은 1.7%포인트다. 덴마크 국가 통계국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 성장의 3분의 2는 제약 산업이 이끌었다. 노보노디스크가 벌어들이는 외화와 이에 따른 제약 산업의 성장, 국내 설비 투자 등이 덴마크 경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일부 경제학자들은 노보노디스크를 핀란드의 노키아에 비유하기도 한다. 한때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제패했던 핀란드의 노키아가 몰락하면서 핀란드 국가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던 것처럼 한 기업에만 의존한 경제 구조가 곧 국가 전체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이른바 덴마크에 네덜란드병이 도질 수 있다고 경계한다. 네덜란드병은 네덜란드가 1960년대 천연가스를 수출하면서 급격하게 소득이 증가했지만 화폐 가치 상승으로 다른 산업 부문이 경쟁력을 잃게 된 것을 가리킨다. 덴마크 시드뱅크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마티아스 돌러럽 슈프뢰겔은 “제약 부문의 강세가 덴마크 경제 다른 부문의 둔화를 위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제약을 제외한 덴마크 GDP 성장률은 마이너스 1%에 그쳤다.
노보노디스크의 성장과 다른 덴마크 기업의 혁신 속도에도 차이가 있다. 노르디아 은행 수석 경제학자 헬게 페데르센은 “경제 정책을 수립하고 임금을 정할 때 노보노디스크를 제외해야 한다. 다른 기업들이 외국 기업과 경쟁에서 큰 압박을 받는다”고 했다.
실제 노보노디스크의 급격한 성장은 덴마크 통화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덴마크는 독자적인 통화 ‘덴마크 크로네’를 사용한다. 덴마크 크로네는 유로화 페그제(고정 환율제)를 유지하고 있어 덴마크 크로네의 통화 가치를 유로화 대비 일정 범위에서만 움직이도록 고정해야 한다. 이 때문에 덴마크 중앙은행의 기준 금리는 유럽중앙은행(ECB) 정책 금리와 발을 맞추는 편이다.
하지만 노보노디스크의 해외 매출이 늘면서 수출액이 커지자 덴마크에 수많은 달러가 유입됐고 덴마크 크로네의 통화 가치도 높아졌다. 덴마크 크로네를 유로보다 약화하기 위해 덴마크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다소 낮게 유지해야 하는 현상이 펼쳐진 것이다. 이에 덴마크 중앙은행은 기준금리(3.35%)를 ECB(4.25%)보다 훨씬 낮게 유지하며 덴마크 크로네를 약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덴마크 최대 은행 단스케뱅크는 “덴마크 경제 내에 제약 산업의 역할이 증가하면서 통화 가치에 상승 압력을 받고 있다”며 “이에 따라 정책 금리 인하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당뇨병 치료제인데 살이 빠지네
노보노디스크가 가파른 상승세를 보인 것은 2021년부터다. 그해 6월 비만 치료제 위고비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고 미국 판매를 시작한 덕이다. 위고비라는 강력한 성장 동력을 달고 주가는 고공 행진했다. 2021년 6월 대비 현재 노보노디스크의 주가는 2.7배 뛰었다.
노보노디스크는 원래 ‘GLP-1 유사체’를 적용한 당뇨병 치료제로 유명했다. GLP-1 호르몬은 우리 몸에서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뇌에 포만감을 느끼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을 한다. 노보노디스크는 이 호르몬과 같은 작용을 하는 새로운 당뇨병 치료제 ‘빅토자’를 2009년 내놓았다. 그런데 새로운 효과를 발견했다. 주사를 투여하면 살이 빠졌다.
노보노디스크는 이 성분으로 만든 비만 치료제 ‘삭센다’를 2015년 선보였다. 1년 동안 매일 맞으면 약 6~8% 체중이 줄어드는 효과를 보였다. 삭센다는 비만 치료제 시장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마치 협심증 치료제로 개발됐던 비아그라가 발기 부전에 더 큰 효과를 보이며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때를 떠올리게 했다. 노보노디스크는 2021년 이를 보완해 ‘위고비’를 출시했다. 매일 맞았던 삭센다와 달리 1주일에 1번만 맞으면 될 뿐만 아니라 평균 17~18% 체중이 줄어드는 효과가 입증됐다. 미국에서는 출시되자마자 수요가 폭발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체중을 13kg 감량한 비결로 위고비를 콕 집었기 때문이다. 킴 카다시안 등 다른 유명인들도 위고비를 맞는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2022년에는 물량이 부족해 한동안 환자 접수를 중단했다. 위고비 품귀 현상이 벌어지자 같은 성분의 당뇨병 약인 오젬픽까지 불티나게 팔렸다.
다이어트는 미용이 아니라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비만을 ‘21세기 신종 유행병’으로 진단하며 질병으로 지정한 것은 2014년이다. 전 세계 비만 인구는 이미 10억 명을 넘어섰고 2035년 19억1400만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비만 치료제 시장도 급팽창하고 있다. 모간스탠리에 따르면 지난해 24억 달러(약 3조원)였던 비만 치료제 시장은 2030년 540억 달러(약 70조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위고비는 비만 치료제 시장을 견인하고 있다. 올 2분기 위고비의 판매액은 약 7억3500만 달러(약 9862억2300만원)를 기록, 지난해 동기 대비 6배 증가했다. 성분이 같은 오젬픽의 매출은 약 21억5500만 달러로 지난해 동기보다 59% 증가했다. 두 치료제의 흥행 덕분에 노보노디스크는 올해 상반기 약 70억 달러(약 9조33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30% 증가한 것이다. 위고비가 미국·노르웨이·덴마크·독일에 이어 영국에 출시된다는 소식에 주가는 더 뛰었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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