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입원제 필요하다, 단 퇴원 뒤 지역 재활시스템 마련이 먼저”

정은주 2023. 9. 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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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차별 범죄][인터뷰] ‘사법입원제 주장’ 염형국 국가인권위 차별시정국장
염형국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국장이 지난 1일 서울 중구 인권위 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한덕수 국무총리가 지난달 23일 ‘이상동기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담화문’을 발표하며, “중증정신질환자 적기 치료를 위한 ‘사법입원제’ 도입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사법입원제는 자해나 타해 위험이 큰 정신질환자를 판사가 직접 대면 심사해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킬지를 결정하는 제도다.

염형국(49) 국가인권위원회 차별시정국장(변호사)은 정부의 최근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에 대해 “(정신장애) 문제의 본질이 아니다”라고 평가한다. 그는 2016년 헌법재판소의 강제입원 헌법불합치 결정을 이끌어냈고 오랫동안 사법입원제 도입을 주장했다. 그러나 “(정신병원) 입원 치료를 빨리 진행하려는 차원”에서 정부가 사법입원제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정신질환자에 대한 편견·낙인이 깔려 있어 우려스럽다”고 했다.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뒤 사법입원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인권위 사무실에서 염 국장을 만났다.

정신질환자의 자기결정 능력은

―정부의 사법입원제 도입 추진을 어떻게 평가하나?

“법원이 강제입원을 심사하는 사법입원제는 중증정신질환자의 (강제)입원 치료를 빨리 진행하도록 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범죄를 저지른 중증정신질환자의 신속한 치료는 치료감호소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나라 강제입원 방식은 △보호의무자 2명 이상이 신청하고 전문의 2명이 동의하는 보호입원 △전문의 진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장이 결정하는 행정입원 △전문의와 경찰의 동의로 사흘 이내로 하는 응급입원으로 나뉜다. 강제입원이 적합한지는 국립정신병원 5곳에 설치된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에서, 입원을 계속 유지할지는 정신보건심의위원회에서 심사한다.

―2016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정신장애 정책에 여러 변화가 있었는데 사법입원제까지 필요한 상황인가?

“헌법 12조에는 신체의 자유 조항이 있고 체포·구속하기 위해서는 법관이 발부한 영장이 필요하다. 중범죄도 적법 절차에 따라 인신구속을 하는데, 정신질환자만 배제하고 있다. 서면심사만 하는 입원적합성심사위원회는 형식적으로 운영돼 여전히 헌법 위반 소지가 있다. 법관이 적법 절차를 밟아 인신구속을 판단해야 한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2004년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을 만든 염 국장은 국가인권위의 의뢰로 정신병원 실태를 조사하면서 정신장애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창마다 쇠창살로 가로막힌 정신병원 현장을 돌아보며 ‘정신질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갇혀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그는 2016년 강제입원을 규정한 정신보건법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아냈다. “정신질환자도 헌법상 신체의 자유가 보장된다는 인식”은 생겨났지만, 정신병원 입원환자 수는 여전히 6만명에 이른다.

―정신질환자가 자기결정을 할 능력이 있느냐는 의구심이 있다.

“개별적으로 보면 차이가 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원칙과 예외가 무엇이냐다. 우리나라 법 제도에선 정신질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으로 보장한다. 이는 우리나라가 가입한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은 물론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장한 헌법 10조에도 어긋난다. 원칙과 예외를 분명하게 규정하고 개별 사안을 따져야 한다.”

―대법원은 인력 부족 등 현실적인 문제도 지적한다.

“독일·프랑스·미국처럼 법원이 강제입원 사건을 모두 심리하려면 판사 178명, 조사관 893명을 증원해야 하고, 국선변호사 선임 비용으로 연간 214억원이 필요하다고 대법원은 추산했다. 20년 전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 제도를 도입할 때도 인력과 예산을 어마어마하게 썼다. 민주주의란 효율성으로만 따지면 불합리한 제도가 분명하다. 하지만 돈이 들고 절차적으로 복잡해져도 결국 인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를 왜 정신질환자에게는 예산을 이유로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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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치료냐, 방치냐’ 강요된 선택

염 국장은 사법입원제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도 전제조건이 있다고 했다. 그가 꼽은 것은 예산이 아니라 지역사회 복지체계 마련이었다. 정신질환자가 정신병원에서 벗어나 치료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기반이 지역사회에 갖춰져야 하지만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보건복지부의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정신장애인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41만원으로 전체 가구(411만원)는 물론 전체 장애인 가구(199만원)보다도 적었다.

―지역사회의 변화가 왜 필요한가?

“정신질환자가 입원할지, 퇴원할지를 판사가 결정하려면 그가 퇴원해서 갈 곳이 있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지금은 보호자가 거부하면 받아줄 곳이 없다. 입원 치료를 받느냐 방치하느냐, 둘 중 하나만 선택하도록 강요받는다. 따라서 복지서비스·재활지원센터 등이 사법입원제 도입과 맞물려서 확충돼야 한다. 입원하지 않아도 지역사회에서 재활을 하고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정신장애인자립생활센터가 여러곳 있지만, 현재는 중앙정부가 단 1원도 지원하지 않는다.”

지역사회라는 선택지가 없다 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정신질환자의 장기 입원이 일상이다. 인권위의 ‘정신장애인 인권 친화적 치료환경 구축을 위한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정신질환자 평균 입원 기간은 미국 6.4일, 영국 35.2일, 오스트레일리아(호주) 89일인 반면 한국은 200.4일로 압도적으로 길다. 염 국장은 “악순환이 반복되고 퍼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정신질환자는 편견과 낙인 때문에 정신병원에 가기를 꺼리는데 한번 들어가면 장기 입원으로 이어집니다. 그것이 트라우마로 남으니까 다시 정신질환이 심해져도 병원 가기를 꺼리고요. 치료를 받지 않으려고 하니까 자살률이 높아지는 거죠.”

―지역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무엇인가?

“(위험한 상태가 되지 않도록 정신질환자에게 휴식과 회복을 지원하는) 위기지원 쉼터다. 일상생활에서는 문제가 없는 정신질환자가 급성기가 오면 찾아갈 곳이 필요하다. 정신질환 경력이 있는 동료가 상담하고 지지하면서 안정화를 하면 위기를 관리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별로 하나씩만 있어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약물치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비약물치료가 제도화되지 못하고 있다. 고용지원이나 활동보조인 지원, 임대주택 등 여러 행정적 지원도 필요하다. 정신질환자에게는 치료뿐 아니라 복지도 필요하다.”

정신장애인의 장애인복지법상 복지시설 이용을 제한했던 장애인복지법 15조는 법률 개정을 통해 2021년 12월 폐지됐다. 하지만 장애인의 복지시설 이용을 제고할 후속 입법은 아직 없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윤연정 기자 yj2gaz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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