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재편 시대, 시장경제 새 변수 ‘가치동맹’이 무력화한 W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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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어느 경제에서든 지금 현재 그 사회에 지배적인 경제적 생산·교환체제 및 작동 방식이 그 사회가 도달 가능한 최선의 조화롭고 효율적인 상태'라고 여겨왔다.
이와 달리 비주류 경제학자 3명(새뮤얼 보울스, 리처드 에드워즈, 프랭크 루스벨트)은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생산·교환관계를 '최선의 효율적 세계'라기보다 기업가의 투자 지휘와 명령·통제 및 (어느 정도의) 비효율이 작동하는 세계로 파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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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완의 글로벌 경제와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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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류 경제학자들은 전통적으로 ‘어느 경제에서든 지금 현재 그 사회에 지배적인 경제적 생산·교환체제 및 작동 방식이 그 사회가 도달 가능한 최선의 조화롭고 효율적인 상태’라고 여겨왔다. 자본-노동-국가가 서로 맺고 있는 생산관계에 급진적 변화를 꾀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이런 생각은, 오래된 한국적 재벌대기업 위계 구조를 해체하거나 변혁시키려는 행동이 오히려 경제적 효율 구조를 깨뜨리는 잘못된 선택 행위라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와 달리 비주류 경제학자 3명(새뮤얼 보울스, 리처드 에드워즈, 프랭크 루스벨트)은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생산·교환관계를 ‘최선의 효율적 세계’라기보다 기업가의 투자 지휘와 명령·통제 및 (어느 정도의) 비효율이 작동하는 세계로 파악한다. “기업은 생산 기술을 도입할 때 그것이 효율적인지 여부가 아니라 수익성이 있는지를 따진다. 따라서 경제학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현재 사용되고 개발된 기술이 현대 과학이 제공할 수 있는 것 중 최고’라는 주장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오늘날의 기술은 수익성에 얽매여 있다. 수익성이 아닌 다른 기준이 적용됐다면 지금 다른 기술들이 이용되고 있을지도 모른다.”(<자본주의 이해하기>, 2009년)
기업가·자본가는 언제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결정하고, 또 투자를 철회할 권한도 갖는다. 경쟁기업마다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터라 항상 ‘더 많은 생산·판매’(투자)를 전략으로 취할 거라고 기대하지만, 이윤을 위한 더 좋은 선택으로 때로는 ‘생산·판매 극소화’(투자 철회)를 꾀할 수도 있다. 투자 철회는 곧 실업자 증가를 초래한다.
이처럼 기술 변화의 주도권을 가진 쪽은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과 기업이다. 많은 경제학자가 수익성과 효율성을 동일시하지만, 덜 효율적인 기술이 수익성이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수익성 있는 기술이 꼭 효율적일 필요는 없고, 효율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수익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기업의 목표는 수익성이지 효율성이 아니다.
그런데 2020년대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 대응 시대에 이제 수십·수백·수천조원에 이르는 미국·유럽연합·중국·인도의 국가재정보조금(전기차·배터리·차세대반도체·인공지능·공급망 재편 등)이 기술 및 시장 수요를 넘어 새로운 투자 결정 요인으로 등장했다. 현대차·기아 및 LG·SK·삼성 배터리기업의 수익성·성장성·안정성은 각국 재정보조금 수혜 정도에 달려 있다. “내 마당에 공장을 짓지 않으면 굉장히 높은 (수출) 울타리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는 위협까지 더해지면서, 바야흐로 국내외 경제는 막대한 국가 재정과 산업정책이 지역·세계경제를 이끌고 전환하는 새 체제로 변모했다.
새로운 공급망 재편과 구성으로 불리는 최근 동향의 성격은 경제적으로 비합리적이고 전체적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더라도 우선 ‘가치’(누구와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따르자는 것이다. 상품 생산과정에 어떤 기술을 선택할 것인지도 이제 민간기업보다 재정보조금 유인을 무기 삼은 국가가 주도하고 지휘한다. 기후변화 및 공급망 분리·균열 시대에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골격과 방정식에 ‘가치’ 변수가 도래한 셈이다. 반면에 전후 70여년 동안 개방 및 관세인하를 표방하며 세계 통상무역을 이끌어온 GATT(관세 및 무역일반협정) 및 WTO(세계무역기구) 질서는 거의 무력화됐다. 이상하게도 미국·유럽연합의 각종 재정보조금을 두고 ‘WTO 협정 위반’이라는 지적도 거의 들리지 않고, 관심이 사라진 탓인지 2023년 5월 10년 만에 서울에 온 WTO 사무총장(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에 관한 뉴스 보도도 매우 드물었다.
<한겨레> 선임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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