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선택 30% 감소' 목표설정…"공동체정신 회복 필요"[토닥토닥④]
마음 힘들면 치료받는 문화 확산해야
유대감 등 보호요인 중장기 강화해야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정부는 지난 4월 자살률을 오는 2027년까지 30% 떨어뜨리겠다는 자살 예방 정책 청사진 밝혔다. 인구 10만명당 자살 사망자 수를 2021년 26.0명에서 2027년 18.2명으로 줄이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코로나19 일상회복 단계에서 마음건강에 더욱 주의해야 한다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통계청의 '2021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자살(고의적 자해) 사망자는 1만3352명으로 전년보다 157명(1.2%) 증가했다. 2020년 자살 사망자 수는 1만3195명으로 전년 대비 1.2명(-4.4%) 감소했는데, 다시 늘어난 것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한 심리적 후유증이 한동안 지속될 우려가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은 '자살 예방의 날'을 앞두고 최근 뉴시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살 고위험군 사후관리 같은 위험 요인 제거에 힘써야 하지만 사회 구성원이 삶을 등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사회 문화와 시스템 개선, 공동체 회복 같은 보호 요인을 중장기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 원장을 통해 자살예방 최전선에 있는 상담전화의 효과, 자살 예방 정책 방향 등에 대해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자살 위기자와 전화상담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비판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입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양가감정(긍정적인 감정과 부정적인 감정을 모두 갖고 있는 상태)이 있어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이 교차하게 되죠. 끊임없이 갈등하는 겁니다. 이야기에 공감해 주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한 이유를 충분히 얘기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말로 표현하면 어떤 효과가 있나요?
"마치 풍선에 꽉 차 있는 바람을 빼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공감하면서 얘기를 충분히 들어주면 자살 위기자에게 살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생겨납니다. 하는 사업마다 실패해 경제적 어려움에 빠진 분이 있었습니다. 다른 방법이 없다며 상담전화를 걸어오셨는데요. '다른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고 했더니 '진짜예요?' 라고 물으시더군요. 다른 길이 있느냐는 거죠. 이런 식으로 얘기를 충분히 듣다 보면 전화를 걸어온 대부분의 분들이 다른 선택을 하고 싶어합니다."
-상담 인력 규모는 얼마나 되나요?
"한국생명의전화는 1976년 9월 문을 열었고, 현재 훈련받은 자원봉사 상담원들이 전국에 2천 명 이상 있습니다. 자살 위기 상담의 핵심 목표는 치료가 아니라 위기를 잘 지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 인력이 늘 부족하죠.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원들이 1차적으로 일반적인 상담전화를 받고, 자살 고위험군을 정부에서 운영하는 1393 전문 상담원들에게 의뢰하는 민관 협력 통합 시스템이 구축되면 인력을 좀 더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적 요인들이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지난 5년 간 경찰청 변사자 심리부검 결과 자살의 원인 중 1위가 우울증·알코올 남용 등 정신적·정신과적 문제였고, 경제적 어려움, 신체적 질환이 뒤따랐습니다. 이런 취약성 요인들이 실직, 부도, 파산 등 스트레스 요인을 만나면 자살 충동이 일어나는데, 가족의 지지가 있고 사회 안전망이 잘 갖춰져 있다면 자살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도 자살 대책의 목표가 '자살로 내몰리지 않는 사회'입니다. 우리나라도 사회 안전망을 좀 더 잘 갖춰 나가는 데 힘 쏟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2003년 이후 2016~2017년을 제외하고 OECD 회원국 자살률 1위에 머물러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살을 예방하는 방법은 크게 보호 요인 증진과 위험 요인 제거 2가지로 나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위험 요인 제거(자살 고위험군 사후관리)에만 관심을 쏟고 보호 요인 강화에는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빨리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죠. 원인을 정확히 분석해 위험 요인을 찾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 구성원이 삶을 등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보호 요인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몇 명을 구했냐도 굉장히 가치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이죠."
-보호 요인을 증진 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족의 유대감을 강화시키고 공동체를 회복하고 사회 갈등 지수를 낮추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사회 양극화, 경제적 불평등, 정신과적 문제 등 자살의 다양한 원인이 해소될 수 있습니다. 사회적 문제의 귀착점이 자살이기 때문이죠."
-일본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한때 우리나라보다 높았는데 16명으로 떨어졌습니다.
"일본이 2021년 자살대책 관련 예산으로 8000억 원 정도를 투입한 반면 우리나라는 450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자살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최대 6조2000억 원 정도 들어간다는 보고도 있는 만큼 자살예방 관련 예산을 2배 이상 늘려야 합니다. 또 국무총리실의 자살예방정책위원회가 자살예방 정책을 총괄하는 컨트롤타워가 돼야 합니다. 그래서 복지부·고용부·교육부 등 각 부처의 자살예방 관련 사업이 시너지가 나도록 해야 합니다."
-장기적인 자살 예방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면요?
"도움을 적극적으로 받겠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상담을 하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두려워하고 불안해 합니다.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확신도 없어 주저하고요. 이런 경우 증상이 악화될 수 있죠. 반면 호주에는 지역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울 때 어디에서 어떻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훈련하는 '헬프 씨킹 프로그램(Help-seeking program)'이 있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명확하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받기 쉽죠.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듯, 마음이 힘들면 상담받고 치료받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정부가 자살 예방 정책 추진에 있어서 단기적인 목표보다는 중장기적 성과에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생명존중 문화와 사회시스템 개선에 역점을 두고 2027년까지 자살률을 30% 줄이기 위해 민관 협력에 힘썼으면 좋겠습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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