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신호 포착' 키 쥔 병원…'생명지킴이' 역할 강화돼야[토닥토닥③]
통계청·연구기관 간 데이터 공유 활성화돼야
촘촘한 사회적 지원·자살예방 교육 강화 필요
[서울=뉴시스] 백영미 기자 = 전문가들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인 자살률을 낮추려면 정확한 원인 분석을 통한 정책 수립, 기관 간 원활한 통계 공유, 의료기관의 게이트 키퍼(생명사랑지킴이) 역할 강화, 사회적 지원 체계 강화 등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0일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03년 이후 2016~2017년을 제외하고 OECD 회원국 자살률 1위에 머물러 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의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는 23.6명으로, OECD 평균(11.1명)보다 2배 이상 많다. 보건복지부·교육부·고용노동부·환경부 등 각 부처가 각종 자살예방 사업을 시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유의미한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자살률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고 연령대별 특성을 반영해 자살예방 사업을 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자살예방 사업은 한때 100가지가 넘었을 정도로 많다"면서 "하지만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히 파악해 연령대별로 필요한 사업에 투자가 되지 않다보니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효성 있는 자살예방 사업을 찾으려면 통계청과 연구기관 간 통계 공유가 보다 활성화돼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의 경우 엄격하게 보호·관리하되, 자살 사망자의 특성을 면밀히 분석할 수 있도록 기관 간 데이터 연계가 원활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연구기관은 통계청으로부터 사망 원인 통계 등 자살 관련 데이터를 전달받아 연구 분석하는데, 접근에 제한이 있다. 자살 사망 정보는 민감한 정보로 취급돼 일부만 공개되고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외에도 다양한 진료과가 자살 예방에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의료기관에 대한 정책적 지원도 필요하다. 자살 고위험군의 94.9%가 자살 직전 의료기관 이용률이 떨어지는 해외와 달리 자살 전 1년 동안 의료기관을 꾸준히 방문했다는 국내 연구 결과도 있다. 일본·미국 등의 지원책이 참고할 만한 사례로 꼽힌다.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장)는 "특히 자살 시도자 중 신체적 질환에 따른 고통으로 의료기관을 찾는 고령층이 많다"면서 "일본은 자살 고위험군을 발견해 정신건강의학과에 진료를 의뢰한 내과·외과 등 다른 진료과에 자살 예방 수가로 5천엔(약 4만5천원)을 지급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산 지역에 한해 시범사업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 확대될 필요가 있다. 의료서비스가 신체질환 치료 중심에서 만성질환 장기 치료에 따른 정신과 협진,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의 조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다. 2017년부터 산하 시립병원을 대상으로 자살예방 교육을 의무화한 미국 뉴욕주 사례도 눈여겨 볼 만하다.
최근 흉기 난동·오송 참사 등 다양한 재난으로 심한 경우 자살 충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트라우마에 노출될 위험이 커져 세분화된 트라우마센터 운영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민간 의료기관의 경우 외래 환자가 몰리는 상황에서 보통 90분 이상 진행되는 트라우마 진료를 현실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백 교수는 "트라우마 진료나 상담은 정신과의 여러 영역 중에서도 굉장히 까다로워 시간을 충분히 갖고 접근해야 한다"면서 "각종 재난으로 트라우마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진 만큼 다양한 트라우마센터가 필요하고, 다학제(여러과 간 협진)체계를 잘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전국 5개 권역에서 국가트라우마센터가, 포항 지역에서 지진트라우마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개인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까지 경제적 어려움, 사회적 고립, 신체적 질환, 가정 해체 등 다양한 사회적 원인이 작용하는 만큼 촘촘한 사회 안전망 구축도 필수다.
이화영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순천향대 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은 "스스로 삶을 등지는 이면에는 사회적 원인도 많이 작용한다"면서 "정신과적 문제, 가족 간 갈등, 실직 등을 겪는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주요 선진국의 정신건강 예산이 전체 보건예산의 5%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2.6%에 불과해 더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양두석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 자살예방센터장(가천대안전연수원 교수)은 "17개 시도와 226개 지방자치단체 중 일반인들에게 전문적인 상담을 해줄 수 있는 자살예방센터가 있는 곳은 38곳이고, 내부에 상담 조직을 갖춘 지자체는 87곳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황순찬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가족, 이웃 간 유대감이 굉장히 약해져 있는 만큼 어떻게 사회적 관계를 복원하느냐가 자살 예방의 중요한 포인트"라면서 "일자리를 늘려 사회 속에서 상호작용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다면 권투선수가 허공을 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 연연하기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자살예방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이사)는 "주변의 자살 신호를 인지해 전문기관에 연계하고 소중한 생명을 지켜내는 게이트 키퍼 양성 교육(보고 듣고 말하기)을 통한 자살 징후 대응 교육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지만 시민들이 도움을 가장 많이 요청하는 경찰서나 소방서, 민간 기업에서도 활성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positive100@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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