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독일 경제, 우리와 똑 닮았다…수출 돌파구는? [주말엔]
독일의 처지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유럽 최대 경제 강국이자 성장 엔진으로 각광 받더니 최근 들어서는 다시 '유럽의 병자(sick man of Europe)' 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과거 동·서독 통일 과정에서 10여 년간 겪어야 했던 경기침체만큼 최근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런 독일의 경제 상황이 우리나라와 닮았다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습니다.
독일과 같이 우리나라도 제조업 비중과 중국 의존도가 높고 인구 고령화에 따른 노동시장 변화가 크다는 점에서 최근 부진한 독일 경제 상황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입니다.
■ 뒷걸음질 치는 독일 경제
국제통화기금(IMF)은 전 세계 주요 경제국 가운데 유일하게 독일이 올해 유일하게 역성장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 경제도 1.5%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 가운데 독일만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됐다는 점은 꽤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실제로 독일 경제는 성장의 밑바탕이 됐던 제조업을 중심으로 산업 전반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7월 산업생산은 전달 대비 0.8% 감소하며 3개월 연속(5월 -0.2%· 6월 -1.5%) 줄었습니다.
이에 독일 경제성장률은 지난해 4분기(-0.4%)와 올해 1분기(-0.1%)에 이어 2분기 0%대에 그쳤습니다.
문제는 이런 독일의 경기 침체가 올 연말까지 이어지며 장기화될 수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일시적인 상황에 따 부진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가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 어쩌다 독일은?
① 에너지 가격 급등→ 제조업 타격
최근 독일경제의 부진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수급이 불안해진 가운데 중국 등 대외 수요 둔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게 한은의 분석입니다.
독일은 가스와 원유, 석탄 등 에너지의 90% 정도를 해외에서 들여옵니다. 특히 러시아가 독일의 주요 에너지 수입처였는데 안정적인 공급 덕분에 독일은 강력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습니다.
문제는 러시아가 에너지를 무기화하며 시작됐습니다.
전쟁 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는 과정에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습니다.
화학과 금속 등 에너지 집약산업 생산이 크게 위축됐고, 이는 제조업에 기반을 둔 독일 경제에 큰 타격을 줬습니다. 이는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감소시키는 결과로까지 이어졌습니다.
② 독일 최대 교역국 '중국의 부진'
믿었던 중국 경기마저 부진한 상황이 독일 경제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중국은 7년 연속 독일과 교역 비중이 가장 큰 국가입니다. 지난해 독일의 대중 수출 비중은 주요국 가운데 4위(6.8%)였고, 수입은 1위(12.8%)였습니다.
독일은 코로나 엔데믹 이후 자동차 등을 중심으로 중국 수출이 개선되면서 경제가 회복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중국 역시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실제로 독일의 대중국 수출은 올해 상반기에만 지난해보다 7% 넘게 줄었습니다. 쉽게 말해 물건을 만들면 사주던 큰 손이 없어진 겁니다.
■ 닮았다 1. 높은 제조업 비중 ·중국 의존도
우리나라와 독일이 처한 상황이 유사한 건 높은 중국 경제 의존도입니다.
독일과 우리나라는 지난 20여 년간 중국 경제 성장에 힘입어 수출 전략을 취해 왔고 그 덕을 상당히 봤습니다. 안정적으로 장사가 잘 되는 든든한 시장이 있었던 셈입니다.
하지만 중국의 성장 엔진이 예상보다 빨리 식어가고 최근 들어선 경제 침체 우려까지 커지면서 두 나라 모두 발등의 불이 떨어졌습니다.
전체 산업 구조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도 우리나라와 독일의 공통점입니다.
물론 제조업 비중이 높은 것 자체가 문제는 되는 건 아닙니다. 특정 분야에만 지나치게 쏠려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해당 산업의 부진이 곧바로 경제 전체의 침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독일의 사례가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도 제조업에 집중된 산업 구조를 다각화할 필요성이 커 보입니다.
독일의 제조업 비중은 1970년대 30% 수준에서 점차 낮아지며 2000년대 들어 20% 내외에 머무르는 등 점차 낮아졌지만 제조업이 여전히 자동차나 전자 기계 등 과거 잘해왔던 분야에 편중돼 있어 첨단 제조업 분야의 경쟁력은 주요국보다 낮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이 이미 전기차나 자율주행 등으로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독일은 내연기관차 중심의 제조업 구조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런 사례가 성장 동력을 잃고 헤매는 최근 독일 경제 문제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겁니다.
■ 닮았다 2. 늙어가는 사회·부족한 노동력
독일과 우리나라 모두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는 사회란 점도 닮았습니다.
인구 고령화는 결국 노동시장의 큰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데 앞선 독일의 사례가 우리에게 참고가 될 수 있다는 게 한국은행 보고서의 또 다른 요지입니다.
독일은 2000년대 중반부터 동유럽 이민자와 고령층의 노동시장 진입을 장려했고 그 결과 단위 노동비용을 낮추면서도 실업률을 하락시키는 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하지만 최근 이들의 은퇴 시기가 일시에 도래하면서 노동력 부족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앞서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이민자를 받아들였지만 이들이 주로 저숙련 노동자에 치중돼 있다 보니 IT 등 고숙련 업무에 투입할 자원은 부족한 상황입니다.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민 정책의 큰 판을 다시 짜야 할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 큽니다.
■ '중국'을 보는 두 가지 시선…수출 회복 언제쯤?
고령화에 따른 노동시장 개편 문제가 단계를 밟아 추진해 나갈 문제라면 당면한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수출 경쟁력 강화'입니다.
수출은 11개월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히 지난 7월에는 중국과 동남아를 중심으로 대부분 지역에서 수출이 감소했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은 모순적입니다. 당장은 수출 반등을 위해 대중국 수출이 회복돼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중국 의존도를 낮춰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중국 수출이 줄어든 원인에 대해 우리의 구조개혁이 늦어진 측면이 있다는 진단을 내놓으며 수출 시장 다변화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국 경제는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후 큰 폭의 성장을 보인 '중국 특수'에 너무나 익숙해 있다. 1인당 GDP가 1만~2만 달러 이상 높아지면 제조업 비중이 대개 줄어드는데, 한국 기업들은 중국에 공장을 짓고 제조업을 계속 영위하며 성장했다"
"우리 경제는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해 많은 흑자를 거뒀는데 이제는 중국이 중간재를 생산한다. 대중국 수출이 줄어드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갈등 문제만은 아니다. 이제는 다변화에 나서야 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7월 14일, 대한상의 포럼)
하반기 경기 반등의 핵심인 '수출'이 언제쯤 회복될지 관심이 큽니다.
정부는 8월과 9월로 갈수록 수출 감소세가 줄어들고 4분기에는 수출이 증가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전망대로 되더라도 단기적인 경제 지표 개선에 만족할 상황은 아닙니다. 구조 개혁의 적기를 놓치면 더 거친 풍파에 시달릴 수 있다는 걸 우리와 닮은 독일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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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서영 기자 (bellesy@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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