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 타율 3할 타자가, 야밤의 특타를 한다… KIA 특급 저격수, 그냥 뚝딱 떨어진 게 아니다
[스포티비뉴스=광주, 김태우 기자] 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와 LG의 경기가 끝난 뒤, 경기장은 다음 날 오후 2시부터 열릴 더블헤더 준비에 한창이었다. 최대한 빨리 그라운드와 관중석을 정비하려는 손길이 여기저기서 이어졌다.
그런데 다음 날 더블헤더 준비로 휴식을 취해야 할 KIA 선수들이 다시 그라운드에 나왔다. 편한 복장으로 방망이 한 자루씩을 들었다. 특타를 위해서였다. 하나둘씩 차례로 그라운드에 나와 조금 더 타격 훈련을 하고 이날 일정을 마쳤다. 이 선수들 중 가장 먼저 특타에 들어간 선수가 고종욱(34)과 오선우였다.
오선우는 아직 어린 선수다. 실전에 나갈 기회가 충분하지 않기도 하다. 체력이 남아있는 만큼 타격 감각을 익히기 위해 특타를 할 수는 있다. 고종욱은 반대다. 30대 중반의 베테랑이다. 여기에 KBO리그 1군 1006경기에서 통산 타율 0.304를 기록 중인 실력 있는 선수다. 콘택트 능력에 있어서는 여전히 건재한 기량을 과시 중이다. 나이나 성적을 고려하면 보통 특타조에 낄 만한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고종욱은 가장 먼저 나와 묵묵히 배팅볼을 치며 타격감을 조율했다. 때로는 잡아당기기도 하고, 때로는 밀어서 타구를 보내며 타이밍을 잡아갔다. 후배들과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며 특타라는 나머지 훈련을 좋은 분위기로 이끌기도 했다.
고종욱은 현재 KIA 라인업에서 주전 선수는 아니다. 외야에는 좋은 선수들이 많다. 지명타자 자리에는 최형우가 있다. 그래서 보통 승부처에서 우완 상대 대타로 투입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승부처가 없거나 경기가 일찍 기울면 그냥 더그아웃에서 경기만 바라보는 일도 생긴다. 8일 경기가 그랬다. 이날 야밤의 특타는, 한 타석도 소화하지 못한 고종욱이 타격감을 이어 가기 위한 안간힘이었다.
그런 고종욱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일까. 9일 LG와 더블헤더 두 경기에서 제대로 사고를 쳤다. 1경기, 2경기 모두 결정적인 순간에 나가 타점을 만들어내는 대활약으로 팀 승리에 기여했다. 고종욱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었던 더블헤더 싹쓸이 쾌거였다.
1경기에서는 5-6으로 뒤진 8회 기회가 왔다. 1사 후 김선빈과 이우성이 안타를 치고 나갔다. 1사 1,2루에서 KIA 벤치는 아꼈던 고종욱을 투입했다. 그리고 고종욱은 유영찬의 5구째 포크볼을 정확하게 받아쳐 우전 적시타를 날렸다. 경기가 원점으로 돌아갔다. KIA는 2사 후 박찬호의 중전 적시타 때 결승점을 뽑아 짜릿한 역전승을 마무리했다. 궁지에 몰린 건 선발 매치업이 앞선 1경기에서 패한 LG였다.
2경기에서도 또 대타로 경기 흐름을 뒤바꿨다. 팀이 3-5로 뒤진 5회, KIA는 나성범, 소크라테스, 김선빈이 차례로 안타를 치며 무사 만루를 만들었다. 여기서 LG는 투수를 박명근으로, KIA는 타자를 고종욱으로 바꿨다. 또 고종욱의 요술 방망이에서 득점이 나왔다. 잘 맞은 타구는 아니었지만 내야를 건너는 중전 적시타를 쳐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 분위기를 가져온 KIA는 다음 타자이자 또 다른 대타였던 최형우의 역전 만루 홈런으로 경기를 뒤집고 흐름을 가져올 수 있었다. 이는 12-7 승리로 이어졌다.
고종욱은 올해 88경기에서 타율 0.316을 기록 중이다. 61개의 안타를 쳤는데 이중 상당수가 굉장히 결정적인 순간 나왔다. 올 시즌 결승타만 5개다. 팀 내에서는 최형우(14개)와 나성범(6개) 다음으로 많다. 최근 5경기에서는 대타로 모두 나갔는데 5타수 4안타라는 무시무시한 타격감에 결정적인 안타까지 다 독식했다.
사실 대타는 타격감을 꾸준하게 이어 가기가 힘들다. 경기에 뛰는 선수는 경기 리듬을 함께 하며 자연히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더그아웃에 앉아 있는 교체 선수는 이 흐름에 100% 동참하지 못하는 만큼 집중력을 유지하기 힘들다.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에 딱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여기에 경기마다 1~2타석 소화에 그치니 역시 실전 감각을 100%로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고종욱은 철저한 대비와 공부, 그리고 집중력으로 이를 이겨내고 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움직인다. 고종욱은 9일 더블헤더가 끝난 뒤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상대 투수 분석을 했던 것이 주효했다”고 밝혔다. 상대에서 어떤 투수가 나올지 계속 체크하고, 몇몇 선수들을 추려 계속해서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는 의미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 또한 베테랑의 저력이라고 볼 수 있다.
더블헤더 싹쓸이를 이끈 고종욱은 “점수가 필요한 순간에 대타로 들어가 타점을 만들어 내어 팀이 승리의 발판을 만들어 기쁘다. 중요한 순간에 나를 믿고 기회를 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린다”고 웃으면서 “선수들 모두가 포기 하지 않고 찬스 상황에서 집중력을 잃지 않아 승리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들 최선을 다해 만들어낸 승리라 더 값진 승리라고 생각한다”고 선수단에 공을 돌렸다. 지금 이 시간에도, KIA의 특급 저격수가 다음 저격할 상대를 분석하며 노려보고 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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