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지 않은 ‘통일교 지우기’…고민에 빠진 기시다 내각

박대원 일본통신원 2023. 9. 10.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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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사망 1년 지났지만 ‘통일교 해산명령’ 지지부진…증거 수집 어려움에 과태료 부과 방침만 밝혀

(시사저널=박대원 일본통신원)

지난해 7월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의 고액헌금 관행 등에 대해 원한을 가진 20대 일본 남성이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살해한 소식이 일본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이후 일본 정계에서는 통일교와의 유착관계를 끊어내려는 움직임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 특히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지난해 10월 통일교에 대한 강경한 대처를 호소하며 질문권 행사를 포함해 통일교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실시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통일교와의 관련성이 지적된 야마기와 다이시로 경제재생담당상 및 아키바 겐야 부흥상을 경질하기도 했다.

문부과학성 산하 문화청은 지난해 11월8일 종교법인에 대한 질문권 행사 및 해산명령 관련 전문가 회의를 열고 ①공적 기관이 종교법인의 법령 위반이나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경우, ②공적 기관에 구체적인 자료나 근거 있는 정보가 전달된 경우, ③객관적인 자료가 있는 경우에는 종교법인에 대해 질문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이에 더해 종교법인에 속한 자(간부 등)의 법령 위반 행위가 상당수 반복되고 이러한 행위로 인한 피해가 중대한 경우 '해산명령'까지 내릴 수 있도록 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논의에 기반해 문화청은 지난해 11월부터 질문권을 일곱 차례 행사하며 통일교의 조직운영 및 재산, 수입·지출 현황, 교단의 법적 책임이 인정된 민사재판, 교단 본부가 있는 한국으로의 송금 내역 등 약 600개 항목에 대한 답변을 요구해 왔다. 통일교 측이 종교법인 해산 요건에 해당하는 행위를 하고 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실태 파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문권 행사가 거듭되자, 초기 질문권 행사에선 박스 8개분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의 답변서를 제출했던 통일교 측에서 답변을 거부하는 항목이 점차 늘어났다.

2022년 9월27일 일본 도쿄 부도칸홀에서 열린 아베 전 일본 총리의 장례식에서 기시다 총리가 남편의 유골을 든 미망인 아키에에 앞서 걸어 나오고 있다. ⓒKyodo 연합

문부과학상, '해산명령 청구' 보도 부인하기도

교단 측이 '신앙의 자유' 등의 이유를 들어 100개도 넘는 항목에 대해 답변을 거부하자 문화청은 9월6일 종교법인심사회를 열고 통일교에 과태료 부과를 요청할 것으로 전해진다. 문화청이 교단 측에 과태료 부과를 청구하면 법원이 부과 여부를 판단한다. 9월4일 교토통신 보도에 따르면 문화청은 통일교 측의 비협조적 태도로 인해 일곱 번째 질문권 행사(7월26일) 이후 질문권의 추가 행사는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가운데 9월4일 마이니치신문은 영감상법(靈感商法·영적인 문제를 이용한 상업행위)이나 고액헌금 관련 통일교 측의 불법행위를 인정한 민사사건이 다수에 이르며, 이에 통일교 측이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는 증거도 명확하다고 판단되어 문부과학성이 도쿄지방법원에 통일교 해산명령을 청구할 방침을 굳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다음 날인 5일 기자회견에서 나가오카 게이코 문부과학상은 언론의 보도대로 9월6일의 종교법인심사회 이후 도쿄지방법원에 과태료 부과를 요청할 방침임은 밝혔으나, 해산명령 청구에 대해서는 "현 단계에서 해산명령 청구를 판단한 사실은 없다. 향후 대응에 대해서는 예단을 갖고 답변하는 것은 삼가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나가오카 장관의 해당 발언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증거를 바탕으로 해산명령을 청구할지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일본 정부의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본에서는 1995년 3월 지하철 사린 테러 사건을 일으킨 옴진리교(1996년 해산)와 영감상법 등 각종 사기 사건을 일으킨 명각사(2002년 해산)가 종교법인법에 의해 해산된 전례가 있다. 그러나 두 사례 모두 해당 종교법인의 간부가 민사상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뿐 아니라 형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는 점에서 법원에 종교법인 해산명령을 요청할 판단 재료가 비교적 명확히 존재했다.

이에 반해 통일교의 경우 법인의 간부가 형사처벌을 받은 적이 없고 민사책임만을 지고 있기 때문에 조직 차원에서 불법행위에 지속적으로 관여한 게 있었는지를 입증하는 데 곤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0월 기시다 총리가 "행위의 조직성과 악질성, 계속성 등이 분명하고 종교법인법의 요건에 해당할 경우" 민사상 불법행위도 종교법인 해산명령의 요건에 포함한다는 해석을 내놓는 등 해산명령 청구를 염두에 둔 움직임이 나타나긴 했으나, 종교법인에 대해 해산명령을 내리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사법부이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 및 문부과학성으로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통일교와의 유착관계 여전한 지방자치단체

이렇듯 통일교와의 유착관계를 끊어내는 꼬리 자르기에 집중하고 있는 중앙정부와는 달리 지방 차원에서는 통일교와의 관계를 공공연히 유지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장도 있다. 닛타 하치로 도야마현 지사가 대표적이다. 닛타는 2020년 10월 열린 현지사 선거에서 5선째인 상대 후보보다 6만 표나 많은 득표로 당선된 정치 신인이다. 닛타는 당선 과정에서 통일교의 조직적인 투표 동원 등 선거 지원을 받았는데, 당선 직후 통일교 관계자가 "우리들의 도움으로 당선되었으며, 앞으로 구국구세(救国救世·나라를 구하고 세계를 구한다는 의미)의 전형적인 사례로 하고 싶다"고 밝혀 논란이 되었다.

통일교에 대한 해산명령 청구가 검토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닛타는 "정부가 질문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고 있다" "해산명령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다. 향후 어떤 판단이 나올지에 대해서는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일교와의 관계를 끊지 않겠다는 기존 입장에는 변함이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변함이 없다"고 답했다.

이처럼 통일교의 영향력이 지방 곳곳에서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점과 관련해 통일교 해산명령이 "문제 해결을 위한 스타트 라인(시작점)"이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통일교 신자를 부모로 둔 한 여성은 "(통일교가) 종교법인 지위를 갖고 있다는 것은 '국가가 교단을 인정하고 있다'는 것으로, 만약 해산명령이 내려지지 않을 경우 통일교가 여태까지 해왔던 행위에 대해 국가가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는 의미가 돼버린다"고 말했다. 또한 "해산명령이 내려져도 종교단체로서 존속하는 것은 가능하다"면서 해산명령 이후의 통일교에 대한 대처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시다 내각이 통일교에 대한 해산명령을 청구할 것인지 주목되는 가운데, 9월5일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에서 70대 여성이 통일교 관련 종교시설(후쿠오카 서가정교회)에 승용차를 타고 돌진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여성은 액셀과 브레이크를 혼동해 잘못 밟았다는 진술을 하고 있으나, 정확한 원인은 아직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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