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기 부끄러워하라"...우리 친환경항공유는 '걸음마' 수준 [와이즈픽]
플라이트 쉐임 (flight shame)
"비행기 타는 걸 부끄러워하라!" 직설적이다. 스웨덴의 '플뤼그스캄(flygscam)'에서 비롯됐다. 운송 수단 가운데 온실가스 배출 주범으로 꼽히는 비행기 탑승을 제한하자는 친환경 표어다. 우리에겐 아주 생소한 말이지만 유럽에선 이미 대표적인 환경운동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하늘을 나는 '덩치' 큰 운송 수단. 비행기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할까?
승객 1명이 1km를 이동할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비교하면 비행기는 285g으로 버스(68g)의 4배, 기차(14g)의 20배가 넘는다. 이런 이유로 유럽 국가 사람들 가운데 비행기 대신 철도를 타고 이동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네덜란드 항공사인 KLM 등 일부 항공사는 특정 노선에서 철도와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등은 철도 노선과 겹치는 항공 노선을 제한하려는 움직임까지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제한적인 항공기 운행에도 환경적인 요소를 가미하기 시작했다. 바로 친환경 항공유의 등장이다.
유럽의 친환경 항공유 의무화…2050년 70%까지
SAF(Sustainable Aviation Fuel). 직역하면 지속 가능 항공유인데 보통 바이오 항공유 또는 친환경 항공유로 불린다. 이 또한 우리에겐 낯선 단어다. 현재 가장 많이 쓰이는 화석연료 기반의 항공유가 아닌 옥수수와 사탕수수, 폐식용유 등에서 얻은 연료를 발효시켜 만든 항공유를 말한다. 비율에 따라 다르겠지만 보통 이를 사용하면 비행기의 탄소 배출량이 최대 80%까지 줄어든다고 한다.
유럽에선 올해 구체적인 계획까지 마련됐다. 지난 4월 EU 27개 회원국은 SAF 도입을 의무화하는 법안에(ReFuelEU) 최종 합의했다. 이 법안은 2025년부터 EU 회원국들에 이착륙하는 모든 항공기는 SAF 사용 비율을 2% 이상 써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비율은 해마다 높아져 2030년 6%, 2035년 20%, 2050년엔 70%까지 상향 조정된다.
SAF를 일정 비율로 섞지 않은 원료로 움직이는 항공기는 유럽 내 공항을 이용할 수 없다는 얘기다. 내리지도 뜨지도 못한다. 물론 우리 국적기도 적용 대상이 된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현지에서 혼합하거나 급유하는 SAF에만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유럽이 친환경적 '채찍'이라면 미국은 '당근'이다.
우린 이제 막 '시범 운항' 시작
우리나라는 걸음마 수준이다. 최근 인천∼로스앤젤레스(LA) 노선을 운항하는 대한항공 화물기에 SAF를 급유해 석 달 동안 시범 운항하기로 했다. 현재 EU 기준인 'SAF 2%' 섞인 항공유를 급유해서 한 달에 2차례씩 석 달 동안 모두 6차례 시범 운항을 할 예정이다.
그럼 이번 시범 운항에 사용하는 SAF는 어디서 오는 걸까? 대한항공과 친환경 항공유 실증 추진 협약을 맺은 GS칼텍스가 공급한다. 그런데 국내 생산이 아니다. GS칼텍스가 세계 최대 바이오연료 생산 기업인 핀란드 '네스테'(NESTE)사가 생산한 친환경 항공유를 공급받아 대한항공 화물기에 급유하는 것이다. 이마저도 국내 최초 사례다.
국토부와 산업부는 이번 시범 운항에서 얻은 데이터를 토대로 내년 상반기까지 SAF 혼합 비율을 포함한 품질기준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SAF 전량 수입해야'…국내 생산 시설 0곳
현재 우리나라로선 SAF를 전량 수입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원료량으로 SAF 생산 시 2050년 항공 연료 수요량의 1.3%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는 모두 수입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한항공의 경우 글로벌 에너지 기업인 쉘(Shell)에서 2026년부터 아시아·태평양 및 중동 지역 공항에서 우선적으로 SAF를 받기로 했다. 주요 국제노선을 포기할 수 없으니,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대책 마련에 나선 경우다.
우리의 SAF 보급 목표는 어떨까?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8년 1%를 시작으로 2050년까지 20% 보급을 목표로 제시했다. 그런데 상용화 시설 자체가 현재 국내에 없는 실정이다. 미국과 유럽 국가에선 이미 SAF만을 생산하는 기업이 따로 있을 정도다. 국내 대표 정유사는 SK이노베이션과 HD현대오일뱅크, GS칼텍스, S-OIL. 대부분 상용화 구상 정도를 밝힌 정도다. 그렇다고 항공사에만 SAF 주유 의무를 강요할 수 없다. SAF는 일반 항공유보다 가격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북쪽이 막힌 반도 국가에선 미국이나 유럽에 가려면 철도와 같은 육상 운송 수단 이용이 불가능하다. 앞으로 '부끄럽더라도' 항공기를 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대체 운송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SAF 사용 비율을 맞추는 것밖에 없다. SAF 국내 생산이 시급한 이유이다.
현재 우리 정부는 미국이나 유럽처럼 세제 혜택을 주거나 SAF 사용 의무를 강제하지 않고 있다. 이번 시범운행을 통해 얻어낸 데이터를 활용해 내년 상반기까지 품질기준을 마련하고 향후 법·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라는 입장만 나온 상태다. 걸음마 수준인 셈이다. 경제냐? 환경이냐? 이분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게 아니라 경제를 위해 환경 요소를 의무화 하는 시기가 이미 다가오고 있다. 시간이 많지 않다.
YTN 이대건 (dglee@ytn.co.kr)
YTN 배인수 (insu@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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