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 리뷰]'이노센트' 순수한 선악 뒤엉킨 '동심' 체험기

CBS노컷뉴스 최영주 기자 2023. 9. 10.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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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요약
외화 '이노센트'(감독 에실 보그트)
외화 '이노센트'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 스포일러 주의

어쩌면 '순수함'이라는 단어만큼 선과 악을 모두 수식하는 데 어울리는 단어도 없을 것이다. 에실 보그트 감독이 포착한 '이노센트'는 우리가 잊고 있던 순수한 선과 악이란 경계에 놓인 어린아이의 마음을 알아가고 다가가게 만드는, 또 다른 의미의 '영화적 체험'을 선사하는 영화다.

이다(라켈 레노라 플뢰툼)와 안나(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는 새로운 아파트로 이사한 직후 또래인 벤자민(샘 아쉬라프), 아이샤(미나 야스민 브렘세스 아샤임)와 친구가 된다. 네 명의 아이들은 어른이 개입하지 않는 순간 특별한 잠재력을 깨워나가기 시작하고, 벤자민은 능력을 이용해 사람들을 조정할 수 있게 된다. 단순한 호기심과 장난으로 행해지던 어떤 일들이 급기야 분노라는 감정과 이어지고, 벤자민은 결국 친구들을 비롯해 주변에 위협을 가하기 시작한다.

'이노센트'는 요아킴 트리에 감독의 데뷔작 '리프라이즈'부터 최근작 '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까지 모든 작품의 각본가로 활약한 에실 보그트가 '블라인드'(2014)에 이후 오랜만에 선보이는 연출작이다. 에실 보그트 감독이 '이노센트'를 통해 들여다본 건 순수한 선과 악이 공존하는 어린아이들의 세계다.

외화 '이노센트'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이다는 자폐증을 앓는 언니 안나 때문에 가족의 관심과 애정을 덜 받는다고 느끼는 아이다. 이다는 감정 표현은 물론 일반적인 의사소통도 힘든 안나를 부모님 몰래 꼬집거나 신발에 유리 조각을 넣어두는 등 일부러 상처 낸다.

이러한 이다와 안나를 비롯해 영화의 주인공인 네 명의 아이는 모두 '결핍'을 지닌 인물이다. 부모로부터 기인한 애정 결핍, 무관심과 가정 폭력 그리고 또래 친구의 부재가 빚어낸 상처 등으로 마음 한편에 크고 어두운 동공(洞空)이 생겨난 아이들이다. 이렇게 각자 결핍을 가진 네 명의 아이는 서로 함께하며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

원래 염력을 갖고 있던 벤자민과 일종의 텔레파시처럼 마음을 알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아이샤는 이다, 안나와 함께하며 자신의 능력을 더욱더 키워나간다.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움직일 수 있는 염동력과 마음을 알고 소통할 수 있는 능력 모두 인물들이 지닌 결핍과도 연관된 능력이다.

외화 '이노센트'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마음 한구석에 빈 곳을 키워가던 아이들은 차마 외로움과 상처를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홀로 어려움과 아픔을 겪고 있었다. 결핍을 지닌 아이들은 서로를 끌어들이고, 서로의 마음을 알고 소통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샤와 안나가 서로의 결핍을 채워가는 동안 벤자민의 비틀린 마음은 그대로 엇나가 자신의 주변 사람을 해하게 된다.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고 느끼면서도 통제할 수 없는 마음은 능력마저 통제하지 못한 채 결국 자신의 결핍을 채워주던 친구들 목숨마저 위협하게 된다.

벤자민이 지닌 능력인 염력은 자신의 의지로 물체를 움직이는 능력이다. 엄마의 무관심과 가정폭력은 물론 또래집단에서조차 배제된 벤자민이 가장 끌어들이고 싶었던 것은 누군가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샤와 달리 벤자민은 누군가와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보다 자신의 능력을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하는 데 이용했고, 결국 타인의 마음을 점차 자신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모두가 초능력을 가졌지만 여전히 아무 능력도 발현되지 않았던 이다는 벤자민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능력이 없기에 자신이 가진 순수한 신체적 능력만으로 벤자민을 막고자 하지만 역부족이다. 또한 어른들은 주변에서 다가오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아이의 경고조차 듣지 못하고 결국 위험에 빠지게 된다.

이다는 언니 안나가 위기에 처한 걸 깨달은 순간 비로소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언니의 아픔을 모르고 소통하려 하지 않았던 이다가 안나의 마음을 알게 되고 진정으로 걱정하게 되며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이다.

외화 '이노센트'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결국 영화는 결핍에 빠지고 타인의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내던 아이가 진정으로 타인을 이해하게 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마음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아이는 성장하고, 또 강인해진다는 것을 이다를 통해 보여준 것이다. 그렇기에 '이노센트'는 아이가 가진 순수함의 양면성과 아이는 어떻게 성장하는지 보여주는 영화로 완성됐다.

'성장'이란 측면에서도 벤자민은 결핍을 채우는 방식으로 타인과의 소통이 아닌 타인을 해하는 길을 선택했다. 마음이 황폐해진 벤자민은 안나까지 해치려다 결국 이다와 안나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이다와 달리 벤자민은 결핍을 끌어안은 채 성장하지 못한 어린아이를 상징한다.

이처럼 '이노센트'는 결핍을 가진 아이가 어떻게 결핍을 채워나가는지 혹은 채워나가지 못하는지를 호러라는 영화적 문법으로 풀어냈다. 감독은 영화 내내 아이의 시선에 눈높이를 맞추고, 중간중간 아이들의 놀이문화와 그들만의 소통을 클로즈업하며 아이들 문화와 그들의 마음이란 어떤 모습인지 보여준다.

이미 어린 시절을 지나 어른이 된 우리는, 어린 시절 모습과 기억이 희미해졌을지는 몰라도 영화 속 네 명의 아이들을 보며 그때를 떠올리게 된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그러한 것처럼, 스크린 바깥에 위치한 관객에게도 아이와 어른 사이의 경계를 조금이나마 희미하게 만들고자 한다.

외화 '이노센트' 스틸컷.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순수한 선악의 경계에서 어느 쪽으로 마음의 중심을 둘지 모른 채 배워나가고 성장해 가고 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영화는 어린아이들의 시선으로 내내 보여주고 이야기한다. 그렇기에 관객들은 이 느리지만 섬세하고 깊게 그려진 아이들의 결핍과 아픔, 애정을 어떻게 채우고 보듬어줘야 할지 조금은 아프게 체험하게 된다. 영화가 줄 수 있는 체험은 화려한 볼거리를 통한 것도 있다. 하지만 '이노센트'처럼 우리가 잊고 있었던 혹은 알지 못했던 경험과 감정을 일깨워 주는 것 역시 '영화적 체험'의 순간이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적 체험을 안겨준 일등공신은 이다, 안나, 벤자민, 아이샤를 연기한 라켈 레노라 플뢰툼, 알바 브륀스모 람스타드, 샘 아쉬라프, 미나 야스민 브렘세스 아샤임이라는 앞으로가 더욱더 기대되는 네 명의 배우가 펼친 열연이다.

117분 상영, 9월 6일 개봉, 15세 관람가.

외화 '이노센트' 포스터.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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