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명탐정 포와로가 돌아왔다 [TEN리뷰]

이하늘 2023. 9. 10.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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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사 크리스티 원작 소설
케네스 브래너로 분한 포와로 탐정
삶이란 무엇인가?

[텐아시아=이하늘 기자]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스틸컷.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과 관련된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추리 스릴러 작가인 패트리샤 하이스미스가 있다면, 영국에는 애거사 크리스티가 있다. 1921년 출생해 소설 '열차 안의 낯선 자들', '태양은 가득히', '캐롤' 등으로 1950-80년대까지 영화화된 패트리샤 하이스미스보다 훨씬 이전에 애거사 크리스티라는 이름의 위대한 소설가가 있었다. 1890년 영국에서 출생한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더라도, 하나의 고유명사처럼 따라다니는 인물 에르큘 포와로(Hercule Poirot)는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데뷔작인 '스타일스 저택의 괴사건'으로 등장한 에르큘 포와로 탐정은 입가에 자리한 콧수염과 괴짜다운 면모가 있는 나이 든 탐정이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한 드라마 '셜록'의 셜록 홈즈 같은 날카로운 면과는 거리가 있다. 그동안 포와로 탐정은 영국 드라마 '명탐정 푸아로'를 통해 1989년부터 2013년까지 그려진 바 있으며, 그 외에도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오리엔트 특급 살인사건'(1974년)에 배우 알버트 피니에 의해 그려진 적 있고, BBC 드라마 'ABC 살인사건'(2018)에서 존 말코비치에 의해 현대적으로 재해석 된 적도 있다. 셀 수 없이 많은 푸와로 탐정이 그려졌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푸와로가 지닌 추리력이다.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포스터.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13일 개봉하는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에서 푸와로 탐정은 케네스 브래너의 점잖고 고집스러운 연기로 묘사된다. 배우 겸 감독인 케네스 브래너는 이미 영화 '나일강의 죽음'(2022), '오리엔트 특급 살인'(2017)에서도 포와로를 연기, 연출했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소설 '오리엔트 특급 살인'과 '나일강의 죽음'에 이어 소설 '할로윈 파티'를 원작으로 이번에는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을 제작한 것.

영화는 탐정 생활을 은퇴하고 유유자적 살고 있는 탐정 포와로(케네스 브래너)에게 오랜 친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 아리아드네 올리버(티나 페이)가 찾아오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초반부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시작부터 뒤틀려있음을 암시하는데, 성당의 건물이 더치 앵글로 잡히며 평화로운 새들의 틈으로 포식자 한 마리가 나타나며 무리를 흩어놓기 때문이다. 굉음과 함께 곤히 잠들어있던 탐정 포와로는 잠들어있던 추리 본능을 일깨우듯 두 눈을 번쩍 뜬다.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스틸컷.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성적으로 사건의 흔적을 정리하는 포와로의 신념과 그간의 일하던 방식은 아리아드네를 따라 교령회가 열리는 한 저택을 찾아가게 되면서 무너진다. 1년 전, 딸을 잃은 로웨나 드레이크(켈리 라일리)의 초대로 심령술사 조이스 레이놀즈(양자경)가 오게 되면서 죽은 영혼을 부르는 의식을 진행하게 된다. 하지만 포와로의 눈에는 속임수로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사기꾼으로 비칠 뿐이다. 평생 눈에 보이던 단서만 좇던 그에게 유령의 존재란 믿기 힘든 허구에 불과하다.

의심하면서 저택 밖으로 나가려던 것도 잠시 심령술사 레이놀즈가 누군가에 의해 끔찍하게 살인 되면서 포와로는 사건 안으로 다시 휘말린다. 폐쇄된 저택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의 범인은 분명히 이 안에 있을 터. 용의자는 소설가인 아리아드네, 교령회를 연 저택의 주인 로웨나, 의사인 레슬리 페리에(제이미 도넌), 페리에의 아들 리오폴드(주드 힐), 로웨나의 죽은 딸 알리시아의 전 약혼남 맥심(카일 앨런), 레이놀즈의 두 조수 남매, 가정부 올가, 포와로의 경호원까지 모두가 용의자다. 차례로 면담을 시작한 포와로는 역할 뒤에 숨겨진 삶을 듣게 된다.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포스터.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쉽게도 삶은 추리극과는 다르죠"라는 아리아드네의 말처럼 포와로의 추리는 방향성을 잃고 실마리를 잡지 못한다. 저택 내부에서 들리는 어린 여자아이의 환청과 레이놀즈의 옷을 입고 있다가 죽을 뻔했던 사건들로 인해 이전의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포와로 탐정은 정신을 붙들고 사건에 매달린다.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은퇴한 포와로가 다시 추리를 시작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초반부 포와로는 세상사에 모든 관심을 끊은 것처럼 집 앞에 줄 서 있는 사람들의 사건을 모두 거절하는 태도를 보였다. 무관심하고 무신경하던 포와로의 추리에 불을 지핀 것은 소리다.

저택에서 들려오던 소리처럼 용의자를 추리기 위한 면담을 통해 세상의 소리와 이야기를 들었던 것이다. 삶을 구성하는 게 이야기라면, 포와로가 잠시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고 들었던 것은 저택 아래 묻힌 이야기였을 테다. 길고 긴 밤이 끝나고 아침이 밝아왔을 때, 포와로가 느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영화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 포스터.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범인의 정체가 밝혀진 뒤, 할로윈의 악몽처럼 찾아왔던 비극은 높고 크게 세워둔 성벽의 잔인한 진실처럼 가슴 아프다. 원작 소설인 애거사 크리스티의 '할로윈 파티'가13살 소녀 조이스가 목격한 살인사건을 믿지 않던 사람들과 조이스의 죽음으로부터 시작된 진실을 밝힌다면, '베니스 유령 살인사건'은 아이와 어른 사이의 간극을 두어 진실을 바라보는 시점의 상반된 관점을 보여준다.

고전 소설을 원작과 추리극 특성상 말로만 사건을 풀어나가 다소 지루한 점이 있지만, 포와로가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과 고립된 성 안에서 각자의 이해관계로 모인 사람들의 상황은 흥미롭다. '삶'이란 무엇인가? 라는 화두를 던지는 작품으로 포와로가 그리웠던 이들과 몰랐던 이들에게도 재미를 안겨줄 만하다.

이하늘 텐아시아 기자 greenworld@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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