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서 구조된 6살 아이가 해양경찰로…해경 창설 70년 빛내

최은지 2023. 9. 1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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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70주년 기념식서 조명된 인물들…경비함정서 태어난 고교생도
해경 함정과 헬기 [해양경찰청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드넓은 바다에는 늘 위험이 도사린다.

최근 3년간 우리나라에서만 9천건에 가까운 해양 사고가 났고, 345명이 죽거나 실종됐다.

무려 45만㎢ 해역을 수호하는 해양경찰이 가장 강조하는 임무도 '안전한 바다'다.

이날로 70주년을 맞는 해경의 날(9월 10일)은 국민을 지킨 세월이 쌓여 더 의미가 깊다.

해경의 날은 1996년 9월 10일 해양영토의 범위를 선포한 배타적경제수역법 시행일을 기려 법정 기념일로 제정됐다.

올해는 해양경찰관이 구조한 아이가 직접 해경이 돼 7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고, 경비함정에서 해경 도움으로 태어난 아기가 고등학생으로 자라 감사 인사를 전했다.

6살 기억 안고 해경 되다…"국민 생명 지킬 것"

양승호 해양경찰청 경감 [양 경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1987년 여름 강원 고성 화진포해수욕장은 피서객들로 붐볐다.

당시 6살이던 양승호(41) 해경청 경감도 사촌 형들과의 물놀이에 한창이었다.

그가 파도에 휩쓸려 먼바다로 떠밀려 간 건 순식간이었다. 구명조끼 대신 가슴에 네모난 튜브를 안고 있던 그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6살 아이에겐 너무나 높은 동해의 파도가 끝없이 쳤다. 손에 잡힐 듯 가깝던 해변도, 함께 수영하던 형들도 어느덧 시야에서 사라졌다.

깊은 해역으로 힘없이 밀려가던 소년의 귓가엔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맨눈에 어선이 떠다니는 것이 보일 정도로 먼바다였다.

그때 해안가에 있던 한 남성이 빨간 구조장비(레스큐 튜브)를 팔에 끼고 그에게 다가왔다. 빠르게 구조장비를 소년에게 끼운 그는 5분 남짓을 다시 헤엄쳐 해안까지 무사히 데려왔다.

어린 손자가 떠내려가는 것을 보며 오열하던 할머니는 뒤늦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양 경감은 자신을 구한 젊은 남성이 해경이라는 사실만 어머니께 뒤늦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경황이 없어 이름조차 묻지 못했지만, 해양경찰이라는 조직은 가슴 깊이 박혔다.

이를 계기로 바다에서 남을 돕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된 양 경감은 결국 꿈을 실현하고자 한국해양대에 진학했다.

그는 이후 학군단(ROTC) 해군 장교로 2년 동안 근무한 뒤 2014년 간부후보생으로 해경에 임용돼 제주해경서에 처음 배치됐다.

해양안전과에서 근무하며 여객선 안전 관리를 하던 그는 이후 제주해경청 기획과를 거쳐 해경청 본청 경비과에서 해상 수호에 힘쓰고 있다.

양 경감은 "저는 대한민국 해경이 지켜준 국민이고 지금은 대한민국 해경"이라며 "그날의 고마움을 해경으로서 국민께 헌신하는 것으로 보답하겠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해경 함정서 태어난 칠삭둥이…건강한 고교생으로

해경 경비함정서 태어난 남해우리 군(왼쪽 두번째)의 가족사진 [정성숙씨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05년 11월 5일 오후 전남 신안군 만재도 인근 해상.

가거도에서 만삭 임산부를 싣고 목포로 향하던 P-270 해경 경비함정 '해우리호' 내부가 분주해졌다.

육지 병원으로 이송 중이던 임산부가 갑자기 극심한 진통을 호소하면서다. 하지만 경비함정에는 출산을 도울 의료진이 아무도 없었다.

일분일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함정에 있던 해경들은 들것으로 임산부를 옮겨 좁은 탁자에 눕혔다. 풍랑주의보까지 내린 터라 배 안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임산부는 짧고 고통스러운 진통 끝에 곧 아들을 낳았다. 출산 장면을 본 경험이 있던 한 해경이 배에 있던 가위를 소독해 탯줄을 잘랐다.

칠삭둥이로 태어난 아이의 몸무게는 1.27㎏에 불과했고, 육지에 도착하자마자 전남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엄마 정성숙(58)씨는 경비함정에서 태어난 셋째 아들에게 경비함정 이름을 붙여줬다. 그렇게 아이 이름은 '남해우리'가 됐고, 해경은 신중환자실 치료비 대부분을 지원했다.

정씨 가족과 해경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정씨는 해우리 군이 태어난 2년 뒤 막내딸을 낳을 때도 해경 헬기를 타고 목포 병원에 이송됐다.

지금 27살인 정씨의 맏딸은 제주대 해양경찰학과를 졸업한 뒤 해군장교 중위로 제대해 해경 채용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어느덧 고3이 된 해우리 군은 최근 열린 해경 창설 70주년 기념식에 영상 메시지를 보내며 감사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정씨는 "그때 저도 아기도 위험할 수 있었는데 침착히 출산을 도운 해경 덕에 다행히 아들이 건강히 자라 고등학생까지 진학했다"며 "생명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경청은 1953년 12월 23일 내무부 치안국 소속 해양경찰대로 출범했다.

당시 해경 규모는 대원 658명에 낡은 경비정 6척에 불과했지만, 1996년 국토해양부 전신인 해양수산부의 독립 외청으로 승격되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현재 해경 전체 직원은 1만5천여명에 연간 예산이 1조8천억원대에 이른다. 또 전국에 본청, 5개 지방해경청, 20개 해양경찰서가 있다.

cham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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