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개발, 섣불리 자랑했다가…" 비밀유출 전문 변호사 경고[로펌톡톡]
[편집자주] 사회에 변화가 생기면 법이 바뀝니다. 그래서 사회 변화의 최전선에는 로펌이 있습니다. 발빠르게 사회 변화를 읽고 법과 제도의 문제를 고민하는 로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영업비밀유출 사건에서는 비공지성(공공연히 알려져 있지 않음)이 논란이 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피해 회사가 기술을 개발했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거나 외부에 기술을 홍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것을 근거로 이미 알려진 기술이라는 논란이 붙으면 재판에서 불리해집니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소공동 법무법인 광장 사무실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난 김운호 변호사(사법연수원 23기)는 최근 영업비밀·기술 유출 사건의 특징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기업 내부 정보를 빼돌린 사건에서 정보가 영업비밀로 인정받으려면 △비공지성(외부에 알려지지 않음) △경제적 유용성(경제적으로 유용한 가치를 지님) △비밀 관리성(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고 있음) 등 3가지 요소를 충족해야 하는데 실제 사건에서 비공지성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LG디스플레이의 기술을 삼성디스플레이에 넘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협력업체 사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A씨는 디스플레이의 수명을 늘릴 수 있는 '페이스 실'이라는 기술 자료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는데 1심은 이 기술이 영업비밀이 맞다고 보고 A씨에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2심은 다른 업체가 배포한 자료에 해당 기술이 상당 부분 포함된 점을 들어 영업비밀이 아니라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태엽 변호사(연수원 28기)는 "피해회사는 대부분 자사의 영업비밀 범위를 넓게 주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나중에 보면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재판에서는 전체 기술 중 30%만 홈페이지 등에 알렸어도 전체 기술이 비공지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검색했을 때 나오거나 영업사원들이 기술에 대해 홍보하면서 비밀유지약정을 체결하지 않았다면 외부에 이미 알려진 기술이라고 판단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변호사는 최근 영업비밀 유출 사건에서 국외 유출 사례가 늘어나는 것도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달에만 해도 LG에너지솔루션 전직 임원급 직원이 자문중개업체를 통해 최소 320여건을 자문하는 방식으로 2차전지 관련 영업비밀을 유출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전직 삼성전자 수석연구원도 미국에 있는 회사에 이직하려고 D램 반도체 관련 기술 100여건을 전송해 불구속 기소됐다.
이 변호사는 "전 세계적으로 해외로 기술을 유출하는 사건이 늘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중국, 유럽 등에서도 단순한 기업 분쟁보다는 국부유출과 관련된 관점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며 "뒤집어 말해서 해외 유출 사례가 늘고 있다는 것은 우리나라 기술이 그만큼 앞서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기술 유출 사건에 관련되는 직군은 직접 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R&D(연구개발) 직군 외에 영업 직군도 적잖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영업 직군의 유출 사례도 많다"며 "엔지니어는 기술적 지식만 있는데 영업직원들은 기술자료에 대한 이해도와 함께 경영 마인드와 영업 노하우까지 갖췄기 때문에 자료를 전부 갖고 나가 새로 회사를 차리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광장 영업비밀·기술유출 분쟁대응팀은 총 120여명으로 구성됐다. 반도체, 2차전지, 화학, 바이오, 항공, 기계, 자동차 등 산업별로 변호사들이 포진했다. 자체 보유한 포렌식 분석장비로 대용량 데이터를 단시간에 분석하는 역량도 업계에 정평이 났다.
김 변호사는 서울고법 지식재산권부 판사와 대법원 지식재산권조 재판연구관을 지낸 지식재산권 분야 전문가로 올해 한국지적재산권변호사회 회장에 선임됐다. 이 변호사는 서울중앙지검,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 부산지검(대검찰청 비상임연구관 겸직)에서 재직하면서 영업비밀과 지식재산권 분야에서 여러 수사를 경험하고 2008년 광장에 합류했다. 국내 기업들의 영업비밀·기술유출 사건에서 자문과 수사 대응, 형사소송 업무 등을 맡는다.
김운호 변호사는 "광장의 강점은 이공계 학위를 가진 변호사들이 많다는 것"이라며 "기술을 제대로 아는 변호사들이 소송에 참여해야 재판부에도 효과적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범위를 정확히 아는 전문가들이 현장에서 대응하고 재판전문가와 수사전문가가 협업해 시너지를 낸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박다영 기자 allzero@mt.co.kr 성시호 기자 shsu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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