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가정·성폭력 방지 보조금 12억→0원…성평등 예산 '홀대’ 지적
[헤럴드경제=배문숙 기자]가정폭력 가해자와 성폭력 가해 아동·청소년의 교정·교육 사업을 지원하는 보조금 예산이 올해 12억원에서 내년 전액 삭감됐다. 가정폭력·성폭력 재발 방지 사업은 가정폭력 가해자 교정 치료 프로그램, 성폭력 가해 아동·청소년 교육, 가정폭력 예방 홍보 등으로 구성된다. 대부분 2003∼2004년부터 꾸준히 진행된 사업들이다.
성 인권 교육 예산도 감액되고 가정폭력·스토킹 피해자 지원 사업 예산도 현장 수요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현장 목소리가 커지면서 성평등 관련 예산이 홀대받고 있다는 지적이다.
10일 기획재정부의 '2023년 국고보조사업 연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2억3천만원이었던 가정폭력·성폭력 재발 방지 사업 예산은 내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됐다.
보조사업 연장 평가단은 "국고지원의 타당성이 있고 정부 지원이 없을 경우 해당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며 가정폭력·성폭력 재발 방지 사업을 내년에도 계속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최종 평가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정부는 일부 사업이 법무부와 중복된다는 등의 이유로 모든 예산을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가족부는 관련 사업 중 하나인 '성폭력 가해 아동·청소년 인지행동 치료 프로그램'은 일반회계로 분류해 내년에도 계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초·중·고교 학생의 성 인권 교육 예산 5억5600만원도 전액 삭감됐다. 성 인권 교육 사업은 성 인권 교육을 희망하는 학교에 교육 강사를 파견하는 사업으로 2013년 시작됐다.
정부는 성 인권 교육이 "학교보건법에 따른 폭력 예방 교육과 구분되지 않는다"며 내년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이미 일부 시·도에서만 시행 중인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 수요가 더 줄어든 점도 감액 근거가 됐다고 설명했다.
가정폭력 피해자에게 상담·보호시설·주거·의료비 등을 지원하는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 사업은 내년 392억원에서 396억원으로 소폭 늘었지만 현장에서는 "사실상 삭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가정폭력 피해자 지원이 이미 태부족인 상황에서 최근 스토킹 피해가 빠르게 늘고 있는 현실까지 고려하면 내년 예산은 더 빠듯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성긴급전화 1366'의 스토킹 피해 상담 건수는 2020년 1175건에서 2022년 6766건으로 6배가량 폭증했다. 줄줄이 삭감된 성평등 예산에는 여성 정책에서 '여성'과 '성평등'을 지우려는 현 정부의 기조가 반영된 결과라는 것이 여성단체들의 반응이다.
한국여성의전화 관계자는 "이미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원받지 못하는 가정폭력 피해자가 많다"라며 "지원 대상을 스토킹 피해자까지 확대하면서 예산은 거의 늘지 않았기 때문에 내년에는 사정이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대폭 줄어든 성인지 예산에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성평등 가치를 후순위로 두려는 현 정부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성인지 예산은 성평등 관점의 재원 배분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별도로 분류·관리하는 예산 항목으로, 성평등 정책의 방향을 가늠하는 기준 중 하나로 인용된다.
내년 성인지 예산은 24조2000억원이다. 약 10조원 규모의 전세·다가구매입임대 융자·대출 사업이 1년 만에 성인지 예산에서 제외되면서 2019년(25조4000억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정부는 지난해 임대주택 거주 대상 중 여성 비율이 높고, 성별 주거 취약 계층의 수혜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며 전세·다가구 매입임대 융자 사업을 성인지 예산으로 분류했지만 1년 만에 '없던 일'이 됐다.
전세·다가구매입임대 융자·대출사업이 내년 성인지 예산에서 빠진 주된 근거 중 하나는 정부가 5년마다 발표하는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이다. 이 사업은 문재인 정부 당시 발표된 2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에 포함됐지만 지난 7월 발표된 3차 기본계획에서는 제외됐다.
정부 관계자는 "3차 양성평등 기본계획에 전세매입임대 등 관련 사업이 제외된 점, 이 사업을 성인지 예산으로 분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국회 예산정책처 지적 등을 고려해 전세·다가구매입임대 융자 사업을 성인지 예산에서 제외한 것"이라고 말했다.
oskymo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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